[Opinion] Call Me by Your Name - 늦은 후기 [영화]

글 입력 2018.04.28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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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리고 이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꽃」


  이름,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붙여서 부르는 말.

  우리는 항상 각자가 가진 이름으로 불리고 또 누군가를 이름으로 부른다. 이름은 사전적 의미와 같이 다른 사람과 나를 구별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나를 드러내는 가장 표면적이면서도 우선적인 상징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름은 다른 단어들과 달리 우리에게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김춘수 시인의 유명한 시, "꽃"을 보면 이름이 가지는 의미가 특별한 만큼 사랑과도 큰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구절이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름과 사랑하는 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구절에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름과 사랑. 그 특별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또 다른 작품이 등장하였다. "그 해, 여름 손님"이라는 책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Call Me by Your Name"이다. 개봉 전부터 소니픽처스에서 공개한 아름다운 영상미를 뽐내는 예고편과 예쁜 일러스트의 포스터가 마음을 사로잡아 큰 기대를 한 작품이다. 그러나 중간고사로 인해 차일피일 미루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영화관을 찾았다. 개봉 9일 만에 관객 수 10만을 돌파하고 N 차 관람을 하는 관객들까지 생겨났다는 이야기를 통해 영화의 작품성에 대해서는 익히 들었지만 직접 보니 이 영화.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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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17살 엘리오의 첫사랑 이야기

  부모님과 함께 여름이면 이탈리아 크레마에서 휴가를 보내는 17살 소년 엘리오. 그리고 연구 학생으로 엘리오의 집에서 머물게 된 24살 올리버. 엘리오는 매일 느끼한 발음으로 "Later"이라며 인사를 하는 올리버를 처음에는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깃이 물들 듯 엘리오의 마음은 관심으로 변하고 영화 속 엘리오의 시선은 어느 순간부터 계속 올리버를 쫓고 있다. 이렇게 영화는 17살 소년 엘리오가 느끼는 첫사랑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이미 퀴어 영화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기에 알고 계셨겠지만 영화의 주인공, 엘리오와 올리버는 둘 다 남자다. 필자는 퀴어 영화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기존의 퀴어 영화가 가진 스토리 라인을 예상하며 영화를 보러 갔었다. 자신이 조금은 다른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는 주인공. 그에 대한 혼란과 주인공이 겪어야만 하는 사회적 갈등과 고통. 그리고 마침내 그를 인정해주는 사람들과 행복한 엔딩. 그런 것이 필자가 예상한 퀴어 영화의 스토리였다. 하지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조금 달랐다. 필자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첫 번째 이유는 이 영화가 주인공이 퀴어이기에 겪어야 하는 아픔과 갈등의 극복, 해소에 초점을 맞추었다기보단 주인공이 첫사랑을 하며 겪는 감정들에 집중하였기 때문이다.

  그 소년이 느꼈던 떨림. 수줍음. 두근거림. 자연스럽게 이 감정들을 전달하는 영화의 표현이 오히려 동성애가 다른 사랑과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를  더욱 잘 전달해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를 본 이후, 영화와 영화감독인 루카 구아다니노에 대해 궁금해져 여러 인터뷰들을 찾아보았었다. 영화의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는 직접적인 메시지 전달 방식보다는 그의 표현대로라면 "엣지 있는", 조금은 유연하고도 수용 가능한 방식을 통해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존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이 원작을 각색하고 그만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녹아났기에 이렇게 아름다운 소년의 첫사랑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절제되어 더 아름다운, 더 아릿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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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사랑이 그러하듯 엘리오의 사랑도 아름답지만 아프다. 그러나 사랑의 아픔을 극적으로 표현하여 관객들의 눈물을 짜내는 여느 영화들과는 달리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관객들에게 극적인 감정의 경험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관객들이 감정에 서서히 물들게 만든다. 이것이 필자가 이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두 번째 이유였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연출과 연기는 참 절제되어 있다. 영화는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이지만 성적인 장면은 영화의 어느 부분에서도 노골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또한, 엘리오가 가진 올리버에 대한 감정과 올리버가 가진 엘리오에 대한 감정 표현도 매우 절제되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한 연출들이 있었기에 오히려 서로를 좋아하면서도 갈등하는 두 주인공의 혼란스러운 마음과 첫사랑의 서투름이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절제의 미학은 특히 엘리오의 마지막 신에서 폭발한다. 올리버는 정말 여름 손님이었기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올리버와 엘리오에게는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사랑을 하고 마지막으로 함께 여행을 가 시간을 보내지만 결국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겨울이 되고 엘리오는 올리버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그가 곧 결혼을 할 것이라는.

  물론,  영화를 보는 내내 왠지 올리버는 결국 그의 성적 취향을 숨기고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올리버에게는 엘리오의 부모님처럼 그를 이해해줄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올리버로부터 전화를 받았을 때 엘리오의 반가운 얼굴. 그러나 곧 올리버의 결혼 소식에 침울해진 표정. 마지막으로 벽난로 앞에서 클로즈업한 화면을 가득 메운 채 감정 변화를 보여주는 엘리오의 연기를 보았을 땐 예상한 결말이었음에도 가슴이 너무 아릿하였다.

  엘리오는 올리버의 결혼 소식을 알고 벽난로 앞에 앉아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그는 소리내어 울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슬펐고 가슴 아팠다. 꽤 긴 시간 동안 마지막 장면에서 엘리오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어 나오는데 이때 사랑을 한 사람이라면 느껴보았을 다양하고도 복잡한 감정들이 엘리오의 얼굴에 스쳐 지나간다. 슬픔. 분노. 회의. 축복. 그 감정의 동요를 보다 보니 엔딩 신이 길다는 생각도 못했고 결국 여운을 이기지 못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도 멍을 때리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실제로 영화를 촬영할 때, 감독은 엘리오를 연기한 티모시에게 한 번은 감정을 매우 절제해서, 또 한 번은 적당히 표현하고, 마지막으로는 감정을 폭발시키도록 요구하며 세 번의 촬영을 했다고 한다. 실제 영화에서 쓰인 부분은 적당히 절제하고 표현하도록 요구했던 두 번째 부분이었다고 하는데 이렇게 절제한 감정을 연기하도록 연출을 한 감독도 대단하고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다양한 감정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티모시의 연기력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엘리오를 연기한 티모시가 할리우드의 신예 스타로 떠올랐다고 하는데 필자 또한 그의 앞날이 더욱 기대된다.



Call me by your name. Then, I'll call you by m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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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이름으로 날 불러줘. 그럼, 난 내 이름으로 널 부를게.

  영화의 제목이자 이 영화의 가장 인상 깊은 명대사라고 할 수 있겠다. 엘리오와 올리버. 그들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날 본인의 이름으로 상대방을 부르기로 한다. '나'라는 존재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상대를 부른다는 것. 이름이 이렇게 로맨틱하고도 아련한 것이었는지 필자는 이 영화를 통해 처음 느꼈다. 한여름 이탈리아 크레마의 아름다운 풍경과 그 속에서 피어난 여름 감기 같던 어린 소년의 첫사랑 이야기는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오랫동안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 아름답고도 아릿한 이 영화가 세상의 수많은 엘리오와 올리버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해줄 수 있기를. 그리고 수많은 엘리오와 올리버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서서히 물들 듯 변화를 일으킬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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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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