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회의 어른 - 老人 [문화전반]

글 입력 2018.04.2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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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작은 항상 이른 편이다. 선잠을 자는 경우도 많아 새벽 세 시나 네 시 정도면 자리에서 일어난다. 집안을 서성이며 정신을 깨우고 텔레비전을 튼다. 내가 항상 보는 건강프로그램이나 ‘나는 자연인이다’프로를 튼다. 텔레비전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볼륨을 높이면 텔레비전소리가 적막한 새벽을 채운다. 간단하게 호박죽이나 전으로 배를 채우고 어제 밭을 갈다 만 게 생각나 옷을 챙겨 입고 장화를 신고 밭으로 나간다. 시원한 공기를 맡으며 일을 시작하다 땀으로 범벅이 된다.

점심시간이 조금 넘어서야 집으로 들어와 샤워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커피로 정신을 깨우고 점심으로 반찬 몇 개와 잡곡밥으로 밥을 챙겨 먹는다. 다 먹은 후 설거지를 하고 자리에 누워 잠깐 눈을 붙인다. 그러면 저녁 시간이 훌쩍 다가오고 배가 고프면 저녁을 먹고 그렇지 않으면 거른다. 전원일기를 재방송해주는 채널을 틀어놓고 기다리다 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음날 새벽 세시 어김없이 눈을 뜬다.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 이렇지 않을까 생각하고 쓴 글이다. 쓸쓸하고 참담한 기분일까. 아니면 즐거울까. 하나의 감정으로 정의할 수 없겠지만 내가바라는 시간은 아니다. 지금의 내 모습도 정확하게 상상할 수 없는 시점에서 내가 늙었을 때를 생각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노인들의 모습을 보면 나의 노후가 긍정적이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된다.



공동체에서 소외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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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혼자 사는 어르신이 돌아가셨는데 아무도 알지 못했다는 기사를 심심찮게 봐왔다. 그때만 해도 한국의 개인주의와 무관심이 낳은 충격적인 사건이라 생각했지만, 오늘날 더욱더 심각해진 노인자살은 누구나 인식하는 사회문제가 되었다. 청년과 노인 문제의 심각함은 극에 달했고 좁혀지지 않는 세대 차이처럼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채 가속화되었다. 딱 집어서 누군가의 문제라기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거나 배려하지 않아 일어나는 현상이 아닐까.

나이를 불문하고 모두가 힘들고 아픈 시대에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고 각자 살아가기에 바쁘다. 세대 간의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노인은 점점 고립되어 간다. 고립된 노인은 결국 해결방법을 모른 채 극단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각자의 나이에서 모두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 제도적인 해결도 있어야 하겠지만 노인에 대해 청년들이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상하관계를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어른을 ‘꼰대’라는 단어 하나로 정의하고 그들을 불편한 존재,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으로 취급한다.

청년들은 여유 있는 삶과는 멀어진지 오래다. 세상을 각박하고 하루하루 견뎌야 하는 존재로 보는 만큼 삶에서 여유가 사라져간다. 그래서 어른들이 하는 지혜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오히려 불편한 상황으로 받아들인다. 일화 중에 지하철 안에서 어떤 할머니가 자꾸 쳐다보는 시선이 불편해 속으로 불만을 표하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환하게 웃으면서 ‘아가씨 너무 예쁘다.’라는 말을 듣고 할머니를 오해한 자신이 부끄러웠다는 말과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유가 참 없었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그만큼 청춘에게도 퍽퍽한 삶은 노인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노인 빈곤 문제가 높아지면서 노인의 자살률도 높아지고 있다. 나에게 청년들과 학생들의 자살도 가슴 아프지만, 노인의 자살은 더 강하게 다가온다. 악착같이 하루를 보내고 경험을 쌓아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어 여유롭게 사는 걸 생각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사는 게 더 힘들어지고 무시당하고 늙은이 취급받으며 자식들에게 짐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70세에 유튜브를 운영해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아가는 박막례 할머니, 실버밴드로 활동하는 할아버지, 은퇴 후 자신의 이야기나 독서모임에 있는 일을 기록해 기자 활동을 하시는 할아버지의 사연도 존재한다. 몇 달 전에 텔레비전에서 할머니들끼리 같은 집에서 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혼자 남은 사람들끼리 같은 집에서 살면서 같이 밥 먹고 이야기하고 잠자고 서로 어려운 것을 도와준다. 그들에게도 관계는 중요한 것이다. 어르신에게도 사람과의 소통, 시간 공유가 필요하다. 나이가 든다고 홀로서기가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노인들에게도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마련되면 좋겠다.



청년이 말하는 사회의 어른-노인


내 옆의 가족을 시작으로 아침 운동을 가시는 할아버지, 지하철에 타시는 할머니 등 노인의 존재는 어디서든 볼 수 있지만 그 모습은 나의 기억 속에 없다. 소통의 단절이 그들의 존재까지도 희미해지게 만들었다. 무의식적으로 노인의 존재를 지운 것이다. 노인에 대한 우리나라 속담을 봐도 ‘어른들의 말은 지혜다’ ‘웃어른이 눕거나 앉은 곳은 눕거나 앉지 말라’ 는 내용이다. 어렸을 때부터 받은 주입식 교육에 무조건적인 반사로 노인공경을 실천한다. 오히려 이런 주입식 교육이 만든 거리가 노인에 대한 불편함을 만든건 아닐까. 어쩌면 불편하다는 말로 멀리하고 못 본척한 걸지도 모르겠다. 노인을 위한 노약자석은 그저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오면 비켜줘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노인공경은 그저 웃으며 자리를 빨리 벗어나는 것으로 해결했을지도 모른다.

노인들이 자살하면서까지 두려워한 감정은 무엇일까. 나 혼자 밖에 없다는 쓸쓸함?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아 하루하루 불안한 맘? 끝나지 않을 삶에 대한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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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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