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 주체성을 향한 투쟁의 역사 < 새로운 예술을 꿈꾸는 사람들 > [도서]

새로운 예술을 꿈꾸는 사람들
글 입력 2018.04.18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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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예술이란 실존적 싸움의 연장


예술은 무엇인가? 책을 읽기 전 던졌던 질문이다. 결론은 알 수 없으며, 예술을 접하고 감상을 나누고 배움으로써 조금이나마 앎의 영역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이런 점에서, <새로운 예술을 꿈꾸는 사람들>은 적합한 배움의 수단이다. 이 책의 필자 또한 나와 비슷한 관점으로 책을 썼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에서 그는 끊임없이 바뀌는 시대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히 시야가 좁아지게 되고, 학문적인 영역에서는 더 하다며 이렇게 말한다.

“날로 쪼그라드는 개인의 영역을 넓히는 것, 실존적 싸움의 연장이다.”

자신의 세계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외부를 향하는 투쟁을 반복해야 한다는 말이다. 저자 또한 자신이 아는 것에 머물러 있지 않기 위해 “새로운” 예술을 꿈꾸는 사람들에 대해 조사하고 의미를 반추하며 책을 썼을 것이다. 실제로 책은 한 번에 받아들이기 벅찰 정도로 많은 양의 작품들을 다루고 있어서, 며칠에 걸쳐 읽어야 했다.

사실 281쪽의 페이지에 꽉 채워 담긴 이 작품들도 세상에 존재하는 예술의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것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뜻하는 바이다. 책은 기존의 체제에 저항하고 도전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묵묵하게 관철시킨 많은 예술가들을 언급한다. 지금은 과거의 것이 되어버린 예술도 자기 발전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끝없이 새로움을 추구한 결과였다. 인위적으로 우리를 규정하고 옥죄는 억압의 틀을 벗어나 진정한 자연스러움을 찾는 것. 이 같은 끊임없는 투쟁의 반복은 나에게 주체성을 위한 몸부림으로 다가왔다. ‘불규정성’으로 규정되는 현대 예술도 변화하는 세상에서 자기 인식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 결과인 것이다.



다양한 예술을 보는 눈


‘종이책’이라는 매체의 한계 때문에 책은 주로 시각 예술을 다루고 있지만, 작품을 최대한 다양한 관점에서 보여주려고 한다. 예를 들어 1부 ‘억압으로부터의 시크한 탈주’ 장을 보면, 마돈나의 공연과 퍼포먼스, 의상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여성’의 주체성에 그 시대가 얼마나 폐쇄적이었는지, 그래서 마돈나의 의상과 퍼포먼스가 얼마나 충격적인 것이었는지 등 작품을 둘러싼 맥락에 대한 설명도 충실하다. 여성 속박의 상징이었던 코르셋을 해방의 아이콘으로 둔갑시킬 수 있었던 장 폴 고티에의 어린시절부터 ‘앙팡 테리블’로 불렸던 그의 패션 세계까지도 간결하게 담겨 있다. 시대상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했더라도 꼭 필요한 만큼의 설명을 통해 시야를 확장하고 작품이 지니는 사회적 의미를 스스로 반추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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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폴 고티에가 디자인한 의상, 모델 나오미 켐벨)


2부 ‘전위적 현대 예술의 낭만, 새로운 예술을 꿈꾼 친구들’ 에서는 50년 전 예술을 선도했던 <신부 주위에서 춤추기: 케이지, 커닝햄, 존스, 라우셴버그, 뒤샹> 전을 소개한다. 시대적으로 작품들뿐만 아니라 작가들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영감을 얻어 하나의 전시로 엮은 것이다. 인위적인 음의 배열을 제거한 케이지의 음악, 몸짓 자체의 순수함을 추구했던 커닝햄의 안무, 회화와 조각을 결합한 라우셴버그의 작품 등이 뒤샹의 작품들과 조합되어 당시의 아방가르드를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다. 작가는 친분이 깊었던 이들 사이의 공통점을 삶의 마지막까지 예술을 놓지 않았다는 것에서 찾는다.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지만, 거장들이 남긴 고민의 흔적에서 그들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에너지의 출처를 찾을 수 있었다.



정체성을 향한 투쟁


수많은 작품들, 작가들에 대해 읽으면서 생각의 흐름이 결국 한 곳으로 모이는 것을 느꼈다. 지금 시대의 ‘새로운’ 예술은 이전까지 당연했던 것, 관습적으로 억압받았던 것, 터부시되었던 것들을 세상 밖으로 꺼내어 그 당연하지 않음을 깨우치려는 시도들이다. 마돈나가 그랬고 백남준이 그랬듯 과거의 예술 또한 그 흔적들이라고 할 수 있다. 쇼스타비치 또한 저항적 죽음과 억압적 생존 사이에서 이중적인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지만, 오페라 ‘코’를 통해 자신을 표출하고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과거의 예술은 ‘예술의 소통, 전시의 유통’에서 드러나듯 도전적인 방식으로 큐레이팅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기도 한다.

뉴욕 현대미술관 MoMA에서 열린 특별 기획전 < EXPO 1: New York >이 담고 있는 환경에 대한 고민도 정체성에 대한 집단적인 탐구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전시된 작품들은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자연의 변화를 보여주며 충격을 유발한다. 결국 새로움이라는 것은 기존에 당연하게 생각되던 것들을 되돌아보게 하는 장치이다. 하지만 ‘새롭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라이프는 자연의 가장 본질적인 상태를 보여주기 위해 30년 이상 꽃가루를 모아 왔고, 마사 로슬러는 일상의 삶을 일깨우기 위해 40년 이상 낡은 물건들을 꾸준히 수집해 왔다. 새로움이란 어디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끝없이 돌아 보고 자신의 신념을 지속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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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웨이웨이, '곧바름Straight')


예술가 ‘아이웨이웨이’의 삶을 보면 이러한 곧은 신념에서 나오는 힘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정부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작품 활동을 계속한다. 뇌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다치면서도, 살아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신념을 고수하려는 듯 보인다. 그의 신념만큼 작품 세계도 직관적이고 강력하다. 사천 대지진의 희생자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적고, 낭독하며, 지진 현장의 구부러진 철근들을 몇 트럭이나 사들여 일일이 두들겨 펴서 만든 그의 작품들을 보면 어떤 부정의에도 굴복하지 않는 강인한 힘이 느껴진다. 이러한 태도는 변화하는 세상에 휩쓸려 외부의 압력에 취약해진 사람들에게 시사점을 준다. 도구나 기계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의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것. 그리고 수많은 예술가들의 삶에서 드러나듯, 무엇보다 적극적으로 이를 지키는 것은 바로 예술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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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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