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경복궁 : 과거와 현재, 그 사이를 걷다 [전통예술]

경복궁에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의 흔적을 찾아서
글 입력 2018.04.11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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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광화문


경복궁,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궁궐이자 관광 명소로 유명한 문화재입니다.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 위해 경복궁을 찾는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실제로 경복궁에 가면 한복을 입고 경복궁을 배경으로 예쁜 사진을 남기는 사람들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경복궁이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 있기까지 참으로 아픈 역사를 거쳐왔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사실 저는 경복궁 자체에 큰 관심이 있었던 편은 아니었습니다. 경복궁이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경복궁을 직접 찾아가서 그 역사와 전통을 눈에 담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역사 시간에 배우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경복궁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비교해놓은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고종 당시 경복궁.jpg
고종 당시 경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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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경복궁


두 사진의 차이가 한눈에 보이시나요? 저는 지금의 경복궁이 원래 모습에 비해 이렇게나 많이 훼손되고 사라졌다는 사실이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동안 경복궁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이를 알아보기 위해 경복궁을 직접 찾아가 보았습니다. 경복궁을 걸으면서, 경복궁의 역사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선물산공진회

경복궁을 둘러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사건이 있습니다. 경복궁이 원래의 모습을 잃게 된 가장 큰 사건, 바로 조선물산공진회입니다. 조선물산공진회는 1915년 한일병합 5주년을 기념하여 일제가 전국의 물품을 수집하고 전시한 대대적인 박람회입니다. 이 박람회가 개최된 곳이 바로 경복궁입니다!

일본은 강제병합의 정당성을 합리화하고 조선의 진보와 발전을 조선인에게 전시하려는 의도에서, 시정(施政) 5년을 기념한다는 명분으로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하여 전국의 농민들까지 강제동원하며 관람하게 하였습니다.

이 전시장을 마련해야 한다는 핑계로 궁궐의 수많은 전각을 뜯어내는 등 경복궁을 심각하게 훼손한 것입니다. 조선물산공진회와 총독부청사 공사를 진행하는 2년 동안 경복궁의 절반 이상이 헐렸습니다. 일부는 창경궁으로 옮겼다지만 민간인에게 팔려나간 건물들은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민간인에게 팔린 건물들은 당시 요릿집, 기생집, 미술관 등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 흔적이 지금 경복궁에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 함께 알아봅시다.


경복궁 관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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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관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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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관리실 건물 윗부분


이 건물은 현재 경복궁 관리실로 사용되고 있지만, 예전에는 조선물산공진회의 창고로 쓰였던 곳입니다. 건물의 윗부분에 일본의 건축물을 상징하는 네모난 조각이 버젓이 남아 있습니다.


동십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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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한복판에 놓여 있는 동십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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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과 경복궁을 연결하는 통로가 있던 흔적
(일제강점기에 훼손되어 없어짐)


동십자각은 경복궁 동남쪽 모서리에 설치했던 망루입니다. 일제강점기 조선물산공진회 당시 경복궁의 동쪽으로 옮겨진 광화문이 박람회장의 입구가 되고, 이 방향으로 수십만 명의 관람객을 실어나르기 위해 동십자각 앞을 경유하는 새로운 전차 선로가 부설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경복궁과 동십자각을 연결하는 통로가 훼손되고 끊어지게 됩니다. 언뜻 보면 상당히 생뚱맞은(?) 자리에 놓여있는 것 같았지만, 아픈 역사를 생각하니 동십자각이 참 쓸쓸해 보입니다.


자선당

자선당은 1999년 경복궁 재건사업이 진행되면서 새로운 건물로 복원되었습니다. 역시 자선당에게도 아픈 역사가 담겨 있는데요, 그 내막이 참으로 황당합니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조선 총독 데라우치의 하수인이었던 오쿠라 기하치로는 경복궁, 창경궁, 덕수궁 등 궁궐 건물들을 마음 놓고 손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선당 건물을 일본에 있는 자기 집으로 옮길 수 있도록 데라우치에게 부탁하였습니다.

1916년 데라우치의 승낙 아래 해체된 자선당은 오쿠라의 저택으로 옮겨졌습니다. 이후 오쿠라는 오쿠라슈코칸이라는 사설 박물관을 만들면서 자선당에 ‘조선관’이라는 이름을 붙여 박물관 일부로 사용하였습니다.

게다가 1923년 간토대지진이 발생하면서 자선당은 불타버리고 건물의 석조 잔해만 남게 됩니다. 1993년 여름, 목원대 건축학과 교수 김정동은 오쿠라 호텔에서 버려져 있는 자선당 주춧돌을 발견합니다. 이후 자선당 유구(기단과 주춧돌)가 반환될 수 있도록 노력한 끝에 자선당 유구는 1996년 80년 만에 고국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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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당 유구


현재 자선당 유구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났던, 경복궁 내 건청궁 부근에 놓여 있습니다. 자선당 복원 시 환수된 유구로 재건하고자 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손상이 너무 심해 건물 복원에는 사용하지 못한 것입니다. 자선당 유구의 검게 그을린 자국을 보니 당시 상황이 얼마나 참담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어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행각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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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각 기둥


경복궁의 기둥에는 무언가가 끼워져 있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 흔적을 통해 이곳에 행각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물은 못질이 아니라 건축 자재를 조립하고 끼워 넣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행각도 이 기둥에 조립해 세워졌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의해 훼손되고 사라졌다고 합니다.


수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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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전


수정전의 옆모습입니다. 원래 이 부분에 수정전의 복도가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훼손되었다고 합니다. 복도가 놓여 있던 자리가 보이시나요?

이밖에도 경복궁 곳곳에서 일제강점기의 상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 생각보다 훨씬 많은 곳에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책이나 인터넷으로만 봤던 자료들을 경복궁 현장에서 직접 만나보니 그 역사가 더욱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경복궁이 단지 전통 건축물이 아닌, 살아 있는 역사이자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들도 경복궁에 찾아가 살아 있는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는 건 어떠신가요? 생각보다 더 아름답고, 생각보다 더 충격적인 역사가 여러분의 눈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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