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The Devil Wears Prada, 2006 [영화]

순수와 사이다, '잘'하다.
글 입력 2018.04.08 10:2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The Devil Wears Prada, 2006





 영화는 뻔한 구성. 인물이 환골탈태하고 능력을 인정받고 승승장구하다가 뭔가 교훈을 주는 이야기. 그럼에도 영화는 빛난다.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유는 사람들 무의식 속 멋지고 아름답고 예쁘고 온갖 반짝이는 것들에 대한 욕망, 판타지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어느 회사 모두, 신입에게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애초에 입사할 때부터 식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회사라는 울타리에 속하지만 부서가 갈리고 팀이 갈리고 온갖 정치관계와 이해관계 속에서 들어온 신입.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신입에게 친절히 일을 알려주기란 쉽지 않다. 당장 내 일이 급해죽겠는데 어떻게 신입을 가르칠까? 열심히 가르쳐놔도 결코 가족이 될 수 없다. 사회생활의 끝판왕인 직장에서 열심히 가르친 부사수가 일을 잘해도, 못해도 문제다. 일을 잘하는 신입은 내일의 경쟁자로 떠오를 것이고 못하는 신입은 짐 덩어리가 될 것이고. 신입에게 친절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영화에서 앤드리아는 패션 업계에서 최고 권위자인 아만다의 둘째 비서로 취직한다. 비록 그녀가 원하던 직장이 아니었지만 붙여준 직장이 여기 밖에 없으니 꾸역꾸역 버틴다. 인성과 능력은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전형적인 캐릭터 미란다. 미란다에게 수차례 모멸과 조롱에 가까운, 아니 그냥 그 자체인 개소릴 들으면서 말도 안 되는 시녀 짓을 매일 해내야 한다. 패션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편집장의 둘째 비서 자리. 아무리 그 자리가 힘들다 한들 투정 부리고 징징거리는 신입에게 친절한 사람들은 없다. 그 자리를 노리는 수백만 명이 당장 줄 서고 기다리고 있고, 물론 잘림의 연속이었지만. 그 유명한 명장면이다.


크기변환_The.Devil.Wears.Prada.2006.BluRay.720p.x264.AC3-CMCT 0001970429ms.jpg
 
크기변환_The.Devil.Wears.Prada.2006.BluRay.720p.x264.AC3-CMCT 0001974691ms.jpg
 

 안드리아의 감정에 공감하기보단 맥락을 이해하게 된 건 내가 좀 더 성숙해졌다는 이야기인 걸까? 영화 속 '런웨이' 사람들은 결코 친절하다고 볼 수 없지만, 자신의 직장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을 지닌다. 무작정 들어와 패션에 대한 지식이 하나도 없고 관심도 없고 심지어 자기 직장이 무슨 회사인지도 모르면서 하소연하는 신입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게 오히려 웃긴 것 같다. 촌철 살인해주는 직장 선배가 오히려 더 마음 써주고 있는 것 같다. 듣는 입장에선 상처일 수 있으나, 쓴소리 내뱉고 팩 폭하는 건 결국 그 바쁜 시간을 쪼개서 며칠 만나지도 않은 신입에게 조언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가식과 허영이라고 패션을 조롱하기도 하지만 나는 좀 더 순수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화려한 외면, 겉과 속이 다른 게 아니다. 패션은, 아름답고 예쁘고 개성 넘치고 싶다는 욕망을 좇는다는 점에서 순수하다고 생각한다. 잘 팔리는 데 좀 더 거창한 이유 따윈 없다. 예쁘고 아름답고 멋치고 개성 넘치고 소비자들 욕망에 다가서면 되는 것.

 영화가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차가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각자 나름 열정과 순수를 가지고 있다. 친절하지 않고 과장한들 절대 거짓말하지 않는다. 차가워 보일지라도 현실을 말해준다. 주인공을 달래주는 따뜻함이 없지만 오히려 더 현실을 쉽게 깨닫고 방향과 비전을 직시해준다. "정신 차려, 안주하지 말고, 좌절은 사치야." 하고 말해주는 것 같다.

 원래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일수록 도달하며 얻는 쾌감이 짜릿하잖아. 앤디가 결국 악마 같은 미란다의 인정을 받았을 때, 탄성이 나왔다. 결국 해냈구나. 감탄하며 든 생각은 이 영화는 사이다다. 고구마 같은 전개가 있더라도 사이다로 목을 따끔따끔 시원하게 뚫어버린다. 그렇지만 마시면 마실수록 사이다는 더 큰 갈증을 불러일으킨다. 사이다 속 액상과당이 뇌를 속이며 더 당분을 원하게 하며 가랑비 옷 젖는 줄 모르고 중독된다. 사이다 같은 전개가 끝나고 영화가 막을 내릴 때, 사이다는 이미 모조리 마셔버렸는데 몸은 아직도 사이다를 원하고 있다. 영화의 묘미.

 마음에 든 영환데 어휘가 달려 포장하지 못하겠다. 그럼에도 포장하자면, 미란다와 앤디를 볼 때 든 생각이 있다. 전해 들은 나름 명언인데 자기를 브랜드화하라는 뜻의 명언. 어떤 사람이 당신을 선택하길 원한다면 "착하거나 싸거나 잘 해야 한다." 많고 많은 경쟁자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저 세 가지 중 하나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세 가지다 갖추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비현실적이다. 그리고 저 말은 궁극적으로 한 가지를 가리킨다. 자신을 브랜드화하라는 것. "잘 해야 한다" 앞 두 가지 '착하거나 싸거나'라는 그냥 잘 해야 한다를 수식해주는 말이나 다름없다.

 최고의 작품과 성과를 내려고 하는 게 사람 마음이다. 현실적으로 타협하는 게 인성과 값을 고려하는 거지, 누가 잘하는 사람이랑 하고 싶지 않겠는가? 미란다의 경우도 마찬가지, 악마라고 붙을 정도로 인성이 개차반인데 사람들이 그녀를 원하는 이유는 뭘까? 답은 간단하다. 잘해서-

 각설하고, 아무리 못 만든 영화라도 각자 내포하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 코미디 영화도 풍자와 해학한다. 얼마나 자연스럽게, 시청자에게 큰 감동을 불러일으키느냐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잘' 한다.


[오세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