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한 봄 밤의 꿈 [공연]

글 입력 2018.04.06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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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과 집시앤피쉬오케스트라의
<집시의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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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모르게 도망가고 싶은 시기였다.

해보고 싶은 일들이 많지만, 해야만 하는 일들도 많았다. 우스갯소리로 친구들과 했던 중도 휴학 이야기는 사실 농담 40%, 진담 60%였으며 꿀 같은 시간을 즐기고 있는 휴학러들을 보며 떠나고 싶은 마음은 더욱 강렬해졌다. 그러나 이미 학기는 시작되었고 휴학을 신청하기엔 늦었기에 현실과의 타협점으로 찾은 것이 하림과 집시앤피쉬오케스트라의 <집시의 테이블> 공연이었다. 문화 초대를 신청하기 전 보았던 "의무를 버리고 의미를 찾아 떠나는 집시들"이라는 문구가 마음에 콕 박혔다.

잠시나마, 자유로운 집시들과 함께 현실의 짐들을 버리고 여행을 다녀올 수 있기를 기대하며 대학로로 향하였다.



집시들의 파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자욱한 연기, 파란 불빛, 가운데에 놓인 테이블, 그리고 처음 보는 악기들.

공연 시간에 임박하여 입장을 하자마자 설렘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며 마음을 다스렸다. 이어, 하림과 집시앤피쉬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능숙한 솜씨로 악기를 조율하고 이번 공연의 첫 노래 <연어의 노래>로 공연을 시작하였다.


어디로 가야 하나
왜 떠나야만 하나

모르던 나의 시작을
이제야 난 이해해
이제야 난 이해해

하림, <연어의 노래> 中


독일의 민속 악기라는 '드렐라이어'와 울림이 독특한 하림의 목소리가 잘 어울리는 노래였다. 긴 여정의 시작을 알리며 여행길로 이어지는 문을 열어주는 기분이었다. 노래에 맞추어 근육 하나하나를 움직이던 마이미스트의 섬세한 움직임도, 하림의 목소리에 맞추어 연주되던 악기들의 소리도 마음을 참 편하게 해주었다. 덕분에 경직된 마음을 풀고 이후의 공연을 더욱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집시 = 자유로움


집시라는 민족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자유로움이었다.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않고 흘러가며 사는 집시들. 비록, 장소는 대한민국의 대학로 공연장이었으나 이 집시들도 마찬가지였다. 연주자를 제외하고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던 연주, 연주 중에도 음료를 마시거나 조는 마이미스트의 모습, 공연장 좌석 밑에 숨겨져 있던 술병들. 분명, 기획된 것들이겠지만 공연을 통해 하림과 연주자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기획된 자유로움보다도 더욱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던 건 연주자들의 표정이었다. 연주를 하는 내내 미소를 짓고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보던 연주자들의 모습을 통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인 서로에 대한 신뢰, 공연을 즐기는 능숙함, 그리고 음악에 대한 그들의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꽉 찬 공연


하림과 집시앤피쉬오케스트라의 음악 외에도 공연은 다양한 요소들로 꽉 차있었다. 음악에 맞추어 연기를 하고 심지어 음악이 없을 때에도 작은 동작들로 공간을 채운 마이미스트, 그리스에서 온 집시 여인 호란의 매력적인 보이스, 그리고 실제로는 접하기 힘들었던 아이리시 댄스와 스윙댄스. 중간중간 이어진 이들의 몸짓과 목소리는 공연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으며 집시 음악과 어우러져 공연을 한층 풍부하게 만들어주었다.

음악뿐만 아니라 각자만의 매력으로, 그리고 하림과의 호흡으로 이어진 개그(?)들 때문에 공연 내내 웃느라 나중에는 광대가 아플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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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들은 신나는 연주로, 관객들은 이에 대해 박수로 화답하며 호흡을 이어간 공연이 끝에 가까워졌다. 길고 긴 여행은 다시 프랑스로 돌아간다며 하림이 공연의 끝을 알릴 땐 "벌써?"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공연이 시작된 지, 30분 정도 밖에 안된 것 같은데 시계를 보니 정말 2시간이 지나 있었다. 벌써 끝나나 싶은 마음과 함께 공연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한 적은 없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집시들의 음악에 푹 빠져 공연을 즐겼기에 아쉬움도 컸던 것 같다.

10년을 이어져 온 공연답게 그들은 기획의도에 맞는 탄탄한 스토리를 풀어내었고 덕분에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한봄 밤의 꿈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좋은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아트인사이트와 멋진 공연을 보여주신 하림과 집시앤피쉬오케스트라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이번 후기를 마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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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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