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대책소] Episode6. 언노운 걸, The Unknown girl (2016)

취향대책소 여섯 번째 에피소드
글 입력 2018.04.05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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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대책소 Episode6.


<언노운 걸>
The Unknown girl (2016)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취향대책소
취향 ; 대상을 책임지고 소개함


이번 영화는 죄책감을 주제로, 다르덴 형제 감독의 <언노운 걸>이다. 의사 ‘제니’는 한밤 중 누군가 병원 문을 두드리지만 진료가 끝나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다음 날 병원 문을 두드렸던 소녀가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N은 대담을 시작하기 앞서 주제를 선정할 때부터 죄책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언노운 걸>을 떠올렸으며 한 편의 영화를 가지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아주 많이, 무겁게 떠올랐다. 대담을 시작도 전에 어쩐지 조금 자신 없는 마음이다. 잘 풀어나갈 수 있을까, 막막한 마음으로 대담은 시작된다.
 
*

H 이 영화를 선정한 이유는 뭐야?
 
N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 편의 글을 쓴 적이 있어.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이들이 영화를 만드는 방식이 내가 아주 좋아하는 작가 황정은의 글쓰기와 닮았다고 생각 했어. 둘 사이의 공통점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구체적이고, 도망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풀어낸다는 거야. 그래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화자가 만들어낸 감정, 혹은 사건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출 수 없게 하는 거야. 그런 식으로 나는 도망치지 못하고 <언노운걸>에서 말하는 감정에 대해 곱씹어 보았는데, 그 감정은 ‘죄책감’이었어. 그리고 죄책감 자체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 죄책감이 발생하는 상황에 놓여보는 것 등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런 마음을 누군가와 꼭 다시 한 번 나눠보고 싶었어.
 
H 그 누군가가 바로 내가 되어서 정말 영광이야.
 
N 그렇다면, H는 영화를 어떻게 봤어?
 
H 기억나니? 작년 겨울에 우리 <장화홍련>을 같이 봤잖아. 그 때 느꼈던 죄책감이라는 것에 대한 감정이 다시 불러일으켜졌어. 근데 영화를 보는 감정이 그렇듯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감정이라는 것이 흥미로웠고, 이렇게 또 다른 죄책감에 대한 영화를 보고 같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 더 생각을 넓힐 수 있고 죄채감에 대해서 더 깊게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거라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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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을 가지고 사는 일
 
N 나는 죄책감을 가지고 사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고, 또 그게 매우 중요하다고도 생각해. 일종의 끊임없는 반복적인 죄책감이 있어야 사람들의 삶이 함부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 부채감이라거나 책임감과 비슷하게. 언제나 빚을 지며 살고 있다는 마음을 가지듯이. 제니의 죄책감에 대해서도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 했고, 한 편으로는 그 마음의 무게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이기에 함께 슬프기도 했어. H에게 죄책감이란 무엇이야?
 
H 나는 약간 파도라고 해야 하나? 어떠한 작은 바람이라든지 작은 물결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커다란 파도로 밀려오는 거처럼, 그리고 그걸 막을 수 없는 거처럼. 죄책감이라는 것도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하더라도 막을 수 없는, 밀려들어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어. 실제로도 내가 겪어왔던 죄책감들이 그러했고. <언노운 걸>에서도 제니에게 다들 “너의 잘못이 아니다”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제니는 걷잡을 수 없는 죄책감을 겪잖아. 근데 죄책감이 나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남의 물건을 부러뜨렸어. 근데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어. 그럼 물건의 주인은 화가 나겠지? 그런데 그 사람은 물건의 주인이 화를 내는 것에 대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잖아. 그럼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단절되겠지? 그럼 그 사람은 결국 혼자가 될 거야. 이건 단적인 예로 관계로만 얘기를 한 거지만 사실 죄책감의 필요성은 사람 사는 모든 것에 통용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세상살이 죄책감으로 돌아간다, 이런 속담도 있잖아? 사실 없는데 내가 방금 만들었어. 아무튼 그만큼 중요하다는 거지.

N 사실 제니가 한 소녀의 죽음에 어떠한 책임이 있다고 할 수는 없잖아. 누가 제니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어. 근데 제니는 누군가 보기에 지나치리만큼 그 소녀의 죽음에 관여하고, 또 그로 인해 매우 힘들어하잖아. 바로 그런 ‘지나치리만큼 관여하게 되는 마음’이 죄책감이라고 생각하고, 그게 바로 네가 말한 거처럼 막을 수 없는 파도가 되어 반복되는 거 같아. 제니는 오로지 그 죄책감으로 인해서 더 나은 일자리를 거부하고, 위협을 받기도 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없는 마음, 또 멈춰지지 않는 마음이라는 게 죄책감인가 봐. 그리고 그런 마음을 유지하는 일은 분명 힘든 것이지만, H의 말대로 관계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전반에 분명히 존재해야만 하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 죄책감이 있어야만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다른 누군가가 들어올 여지가 생기는 거 같아. 혼자서 만들어낸 세상이 죄책감으로 인해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길 반복하며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게 될 거야.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든 함께 살아야하는 세상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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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문을 열어주는 일, 윤리
 
N 문을 열어주는 일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데, 단지 물리적인 행동을 말하기도 하지만 좀 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어. 제니는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주는 일을 하는데, 이건 한 편으로는 타인을 받아들이는 일을 계속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 H에게 제니가 계속 해 타인에게 문을 열어준다는 건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어?
 
H 문을 열어주는 것에 대해서 사실 생각이 별로 없었는데.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 보단 그 때마다의 긴장감이 있었어. 어쩔 수 없이 제니는 저 문을 열어줄 거고, 어쩌면 그것이 제니에게 남은 죄책감의 증거라고 생각했거든. 문을 열어주는 것이.
 
N 나는 문을 여는 일이 죄책감에서 비롯한 행동이라고도 생각했지만, 그 너머에 좀 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해야만 하는 무언가 있다고 생각했어. 근데 그게 바로 나에게는 ‘윤리’였어.
 
H 그렇게 해야만 하게 만드는 윤리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거야?
 
N 내가 아는 윤리는 사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다, 라고 말해지기가 매우 어려운 성격의 것이야. 내가 여태 읽어왔던 책들에서 말하는 윤리는 언제나 당위성을 가진 구체적·단편적 행동으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 마치 영화를 보고 어렴풋하지만 잊을 수 없는 감정이 생기는 것과 같이 기저의 층위를 이루고 있는 애매한 것이었어. 뭐랄까. 내가 너를 마주할 때 너의 얼굴을 보면 세상에 단 하나뿐인 고유한 얼굴을 보고, 고유한 감정이나 생각을 은연중에 가지게 되잖아. 그리고 나는 너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을 아마 멈출 수 없을 거고, 절대로 너의 고유성을 외면할 수 없을 거야. 나에게 윤리는 이렇게 누군가의 고유한 얼굴을 보고, 외면할 수 없게 되는 것과 비슷해. 그리고 제니로 하여금 문을 열어주게 만들었던 것도 죄책감 너머에 있는 그런 마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것 앞에 끌려가는 마음과 같지 않을까 싶어. 대답이 되었을까?
 
H 대답이 되었다면 되었겠고, 어렵다면 어려운 거 같아.
 
N 그럼 H에게 윤리는 무엇이야? 또 이 영화를 윤리의 맥락에서 읽고 있는 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H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까. 너무 오랜만에 들은 질문이라 새롭기도 하고. 나에게 윤리란 계속 공부하고 고민하고 토론해야 할 것이야. 살면서 계속 알아나가야 하는 것이고, 또 그 것을 실천하기 위해 체화해야 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N의 말에는 공감하고 이해해. 그 것의 실체는 당위성을 가진 분명한 무언가라고 얘기하기엔 너무 깊고 넓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그 것은 어렵고 배워나가야 하는 것이라 끄덕이지 못할 뿐이야. 그렇다고 윤리가 무섭고 무겁고 부담되는 것은 또 아니라고 생각해. 윤리는 삶의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이니까. 그런 점에서 이 영화를 윤리의 맥락에서 보는 것은 사실 지당해. N의 생각은 죄책감으로 봐왔던 내 관점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해. 사실 죄책감도 윤리의 하나라고 생각을 하거든. 제니는 본인에게 존재했던 ‘윤리’라는 선에서 죄책감을 느꼈고, 문을 열어주는 행동은 그 죄책감과 윤리의식에서 비롯되는, ‘어쩔 수 없이 열어줄 수밖에 없는’ ‘열어줘야만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했지.
 
N 우리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 같아. 다만 내가 윤리의 성격 자체에 대해 그 애매한 지점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H는 윤리에서 비롯한 어떤 행동들과 감정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게 차이점 아닐까? 나는 <언노운 걸>에서의 제니의 모든 행동, 죄책감을 주로한 모든 감정들의 ‘불가피성’에 주목했어. 불가피하다, 그러니까 피할 수 없다는 거지. 결국 본인이 직접 한 행동이지만 그게 정말이지 선택하고 실행 했다기보다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무력감 속에서 행해졌다고 느꼈어. 그리고 그런 무력감, 또는 일종의 폭력이 바로 윤리의 성격이고 <언노운 걸>에서 유지되는 맥락이라고 봤어.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언노운 걸>의 상황이 우리가 충분히 현실 속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윤리의 상황이었다는 것이야. 윤리라는 말이 워낙에 어렵고 명확히 떨어지는 개념이 아니라서 이 얘기를 해야 할지, 할 수 있을지 망설였어. 그래도 한번쯤은 모호하게나마 윤리라는 것이 대체 상황들 속에서 어떻게 발생되는지 이야기 나누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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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노운 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앞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매우 많다고 생각했다. 가령 언노운 걸을 비롯한 다르덴 형제의 다른 작품들의 특징, 영화 속 장면에 대한 세부적이고 기법적인 논의, 감독과 배우 등을 포함하여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외부적 요인들. 그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선택한 이야기는 죄책감과 윤리. 어려운 이야기가 될 줄을 뻔히 알면서도, 복잡하고 어려운, 추상적인 이야기가 이어질 걸 알면서도 우리는 죄책감과 윤리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한다.

한 사람, 다시 한 사람. 차근히 말을 이어나간다. 너무 어려운 이야기를, 다시 너무 난해하게 늘어놓고 있는 건 아닌지 초조한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아주 어려울 줄 알면서도 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 재미없고 지루할 줄 알면서도 기대되는 게 있다. 이번 이야기는 아주 어렵고 재미도 없고 지루했지만 하는 내내 중요한 무언가를 꾹 짚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만으로도 H와 N의 대화가 무의미하지 않음이 서로에게 증명되는 듯 했다. N은 어려운 주제를 가져와 꾸역꾸역 밀고 나가는 게 미안했고, 함께 하는 H에게 고마웠다.

*
  
지금까지 여섯 개의 주제로 여섯 편의 영화에 대해 대화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문학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한다. 좋은 문학 작품을 소개하는 대담으로 돌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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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나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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