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도서 큐레이터 기획02 - <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 > [문학]

*주의 : 면접을 앞둔 이들은 읽지 마세요.
글 입력 2018.04.03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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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공채가 시작되었고, 이제 곧 있으면 면접의 시간이 다가온다. 오늘 소개할 책은 면접에 관한 책이다. 면접의 tip이 담긴 책이라면 면접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더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니다. 그래서 혹시 그런 책을 생각하고 이 글을 골랐다면 지금 뒤로 가기를 눌러도 괜찮다.

이 책은 오히려 면접과 연수의 씁쓸한 단면들을 보여주어 기분을 우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내가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우리가 회사에 들어가는 것보다도 한 번쯤 생각해볼 문제들을 소설에 담아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상반기 면접 준비하는 사람들보다는 하반기 면접을 준비하는 사람들 혹은 면접이 끝난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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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
박지리, 사계절

 

이야기의 시작
 
이야기는 주인공의 마흔아홉 번째 면접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떨어질 것으로 생각했던 면접에 붙어 연수원에 들어가게 된다. 연수원에서 그는 기업의 규모에 놀라고, 그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에 감탄한다.
 
‘주차장에는 우리를 태우고 갈 회사 버스 세 대가 시동을 걸어 놓았다. 사수들까지 포함해 백 명 가까이에 이르는 사람들이 일제히 운동장을 지나 주차장으로 향한다. 전체 교육을 제외하고는 주로 반이나 조 단위로 활동하기 때문에 전원이 함께 이동하는 이런 순간에는 새삼 내가 속한 조직의 규모와 실체를 실감하게 된다. 고작 영업 8부의 신입 사원만 해도 이 정도인데 회사의 모든 직원이 한 자리에 다 모인다면, 가능이나 할까.

엄격한 관문을 통과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하나의 조직이 구성되고 그 조직이 다시 더 큰 조직의 하부 조직으로 편성되어, 최상위 조직에서 고도의 전략에 따라 수립한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굉장히 감동적인 구석이 있다.’


 
불안감의 시작

하지만 이것도 잠시, 어떤 사건을 계기로 그는 이 연수원의 모든 것에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회사가 대단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에게 생긴 조그마한 틈새, 불안감이 끊임없이 반복되며 그 불안감은 자신이 낙오자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마흔아홉 번의 불합격을 통해 자신의 가치 자체를 의심하게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의로 시작한 새벽 체조모임에도 강박을 가지고 아무도 나오지 않은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도 운동장에 나가 홀로 체조를 하며 나오지 않은 다른 사람들을 비난한다. 누군가의 평가표에 알 수 없는 X표로 시작된 책임감의 압박이 자신을 끈질기게 붙들고 늘어지며 깎아 먹는 불안감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부품. 알고 있다. 어딜 가나 한 개의 부품일 뿐이다. 그 자체만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보면 어떤 목적의 기계를 움직이기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아주 작은 부품 한 개. 자동차 바퀴를 조이는 데 들어갈 것인지, 전화기 칩에 쓰일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뇌를 열어 볼 때 쓰는 의료 로봇 팔의 나사인지, 전체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까지 신경 쓸 것 없다. 제자리에서 잘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순정 부품 마크를 받을 수 있다. 그것이 작은 부품의 생산성, 대수롭지 않은 운명이다. 그 대수롭지 않은 운명을 위해 마흔여덟 번의 면접을 봤다. 마흔일곱 번의 거절을 당하면서. 서른 번이 넘었을 땐 눈물이 났지만 마흔 번이 넘었을 땐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긴장감의 시작

계속해서 진행되는 미묘한 긴장감은 끊임없이 몰입하게 하는 긴장감과는 결을 달리한다. 아주 사소하게 붙들고 늘어지는 이 긴장감은 마치 히치콕의 영화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영화 현기증이나 사이코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작가는 긴장감을 완성도 있게 끝까지 유지하는 데 성공한다.
 
‘나도 이제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이곳에서 중요한 건 과자의 미래를 상상하는게 아니라 눈을 감으랄 때 순순히 눈을 감는 행위 그 자체라는 걸. 우리가 눈을 감았는지 안 감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사수들이 앞을 왔다 갓다 하고 있다. 왜 저렇게 믿지 못하는 걸까. 한 사수가 내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한번 버텨 볼까. 자기들 지시에 불응하는 자에게 과연 어떤 벌을 내릴지. 사수가 점점 다가온다. 발소리가 군화라도 신은 듯 묵직하다. 내 마음속까지 꿰뚫어 보면서 심리적으로 나를 압박하려는 속셈이다.

두렵다. 솔직히 두렵다. 이게 과연 저항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일까. 이제 겨우 1미터. 고개를 살짝만 돌려도 내가 눈을 뜨고 있다는 것을 알아챌 것이다. 팔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 안으로 사수의 발이 들어왔다. 그런데 이게 과연 저항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일까’


 
연극, 그것은 삶인가.
 
이 소설은 하나의 소설이지만 연극 대본의 형태를 띤다. 작가는 무대에 올라가 배우들이 연극을 하는 것처럼 소설을 써내려갔는데 이것이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연극이라는 설정들을 통해 우리는 그에게 과몰입되는 것을 막는다.
 
'왜 다들 나를 피하는거야? 혹시 얼른 불이 들어오기만 바라고 있는거야? 당신이 서 있는 곳에 불이 켜지는 순간 내가 사라지는 존재라고 생각해서? 웃기지 마. 난 사라지지 않아. 나는 인간이야. 불이 켜진다고 해서 한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간단히 사라질 수 있겠어? 당신은, 당신은 불이 켜지면 사라지는 존재인가?'
 
또한, 이것이 한 편의 연극이라는 설정으로 우리에게 안도감을 준다. 하지만 여전히 찜찜한 구석은 남아있다. 아무리 연극이라 하더라도 현실적인 대사들과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마냥 연극으로만 보이지지 않기 때문이다. 삶과 소설의 연극적 경계, 그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우리는 삶을 연극으로, 연극을 삶으로 보게 되는 가능성이 생기며 그 연극 안에서 우리의 MAN은 묻는다. 이것이 과연 연극일까? 삶일까? 그대에게 이 소설은 연극처럼 보이는가? 삶처럼 보이는가? 면접을 통해 현실을 보여준 우리의 MAN의 이해하기 어려운 그의 생각과 돌발 행동들은 과연 ‘그’만의 이야기일까. 아니면 우리 모두가 가지는 이야기일까.
 
곧 면접이다. 우리가 단순히 하나의 부품이 되더라도 그 안에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우리는 알고,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신승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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