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두번째 달이 뜨던 밤

두번째달 콘서트 '판소리 춘향가' 리뷰
글 입력 2018.03.25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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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두번째달 콘서트
판소리춘향가


늘 교과서에서만 배우던 판소리를 실제로 처음 본 건 작년에 정동극장 기자단을 하면서였다. 완창을 들은 건 아니고 시대에 맞게 살짝 변형된 '수궁가'의 일부를 들었는데 생각보다 울림이 크고 여운이 길어서 놀랬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 작은 관심이 생겨 전통 판소리는 무리더라도 조금 변형된 판소리 공연을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다. 그러나 많은 결심이 그렇듯, 시간이 지나 거의 잊어버린 상태였다.

그러던 중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듣게 된 두번째달의 판소리춘향가 공연 소식은 뜻밖이었다. 두번째달의 음악을 몇 곡 알고는 있었지만 김준수, 고영열 소리꾼과 함께 판소리 음반을 낸 줄은 전혀 몰랐다. '두번째달'의 '판소리춘향가' 라니, 머릿속에서 전혀 다른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있던 두 가지가 하나로 합쳐졌다. 좋은 기회는 언제나 이렇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는 걸 실감하며 설레는마음으로 공연을 보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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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은 무척 작아서 무대와 객석 간 거리 차가 별로 없었다. 덕분에 무대에 놓인 악기들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무대 크기에 비해 많은 수의 악기들이 눈에 띄었는데 일반적인 밴드 공연에서 보이는 기타나 드럼 외에도 생소한 악기가 많았다. 평소에 자주 듣던 음악과는 다른, 새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 예상은 판소리 춘향가의 첫 곡인 '적성가'를 들으며 확신으로 바뀌었다. 가사를 읊는 소리꾼의 소리는 너무나 구성진 반면 그 뒤에 깔리는 음악은 굉장히 현대적이고 이국적이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두 소리가 아담한 공간에서 한 데 어우러져 풍부하면서도 조화로운 음악을 만들어냈다.

무대에 선 모두가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연주를 이어 나가는 가운데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었다. 완전한 전통 공연이 아닌 퓨전 공연이었음에도 전통 공연에서 맛볼 수 있는 특유의 '흥'은 살아 있었다. 그 덕에 제법 초반부터 리듬을 타며 공연을 즐기는 관객들을 볼 수 있었다. 자연스레 전통 공연에서 관객들이 '얼씨구'를 외치며 흥을 돋우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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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달 공연의 특징은 연주되는 곡들이 '춘향가'라는 큰 틀 안에 있기 때문에 서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점이었다. 곡과 곡 사이를 뮤지션의 멘트나 이벤트로 채워야 하는 보통 콘서트와 달리 별다른 멘트 없이도 이야기를 따라 흐름을 탈 수 있어서 좋았다. 한국인이라면 모두 알고 있을 춘향전 이야기지만 이렇게 공연으로 만나니 어찌나 새롭던지. 뮤지컬처럼 배우들이 나와 연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소리꾼들의 입담 덕에 눈앞에 춘향가의 한 장면이 펼쳐지는 듯했다. 별다른 소품이나 배경 없이 이야기를 재미나게 꾸려가는 것이야말로 판소리가 가진 힘이라는 걸 느꼈다.

공연을 시작하며 판소리 완창을 듣고 가는 기분을 느꼈으면 좋겠다던 두번째달의 말은 헛되지 않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을 보러 왔다지만 내심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도 있었는데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놀라웠다. 정동극장 기자단으로 활동할 때 봤던 여러 국악 퓨전 뮤지션들의 공연에서 판소리는 중간중간 흥을 돋우기 위해 한 대목에 곡을 붙이거나 개사를 하는 식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아마 그 공연을 보면서 나는 현대식으로 변화된 판소리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판소리 완창만으로 공연 전체를 꾸려나가기에는 무리라는, 또다른 편견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번 공연으로 그 편견을 깰 수 있었다. 공연 내내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공연장을 나오는 길에는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두번째달의 '판소리춘향가' 앨범을 구매했다. 집에 오는 길에는 '김준수', '고영열'이라는 소리꾼의 이름을 검색해 보기도 했다. 전통은 이렇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나름대로 유지되고 또 계승되고 있었다. '두번째달'이라는 이름처럼, 익숙함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옷을 입은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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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다 보고 나오니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떤 음악을 두고 '따뜻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 그 음악의 어떤 요소가 따뜻함을 자아내는지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두번째달의 판소리춘향가를 듣고 나서 다른 느낌보다 따뜻함이 가장 오래 남았다. 춘향이와 몽룡이 만난 계절이 봄이여서, 또는 관객들의 호응이 좋아서였을까. 세상에는 여러 가지 느낌을 품은 음악이 많지만, 봄을 기다리는 요즘은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이런 따뜻한 음악이 힘이 되었을 거라 믿는다.

3월의 두번째달 공연은 이번이 마지막이지만 앞으로 다른 계절에도 공연은 계속될 예정이라 한다. 그때 다시 듣는 두번째달의 음악은 어떤 느낌을 가져다줄지 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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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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