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자연스럽게 버무려진 퓨전_판소리 춘향가

글 입력 2018.03.24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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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장은 넓지 않았다. 하지만 객석은 사람으로, 무대는 악기로 가득했다. 에스닉 퓨전밴드 ‘두 번째 달’과 소리꾼의 협업으로 선보이는 <판소리 춘향가> 공연의 마지막 날이었다. 나는 처음이었지만, 그들에겐 이미 익숙할 터였다. 익숙함과 편안함, 그 속에 은근히 떠다니는 긴장감과 기대감이 뒤섞인 채 공연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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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소리를 본 적이 있던가.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봐도 실제 판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었다. 중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자료 화면으로 몇 번 접한 적이 있을 뿐. <춘향가>에서도 아는 곡이라고는 ‘사랑가’ 뿐이었다. ‘이리 오너라 엎고 놀자’로 시작하는 그 노래 있지 않은가. 중간에 강릉 백청을 ‘따르르르르’ 붓는다며 선명하고도 익살스러운 소리를 내는. 친구들과 함께 그 부분을 따라 부르며 웃었던 일이 떠오른다. 이렇듯 잠깐의 기억을 제외하면 춘향가와 판소리는 내게 전통이었고, 예술이었고, 과거라는 말도 짧게 느껴질 만큼 과거의 것이었다.

 판소리가 얼마나 ‘올드’한 이미지로 뇌리에 자리 잡았는가 하는 것을 스스로 절감했던 건 무대 위로 소리꾼 ‘고영열’과 ‘김준수’가 등장할 때였다. 의식했던 건 아니었지만 판소리니까 당연히 연세 지긋한 소리꾼을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저 ‘젊다’는 이유만으로 신선함을 느낄 지경이라니. 무대를 채우고도 남을 것 같은 그들의 크고 시원시원한 목소리 때문에,  스스로에게 내재되어있던 고리타분함때문에 <판소리 춘향가>의 시작은 강렬함이었다.


 어릴 때부터 노래만 들으면 잘 타지도 못하는 박자를 타곤 했다. 음악이 조금만 신나거나 조금만 부드러워지면 거기에 맞춰 몸을 둥실둥실했다가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관객들은 마치 목각인형처럼 몸을 의자에 박아둔 채 무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는데 있다. 주변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나 역시 거기에 맞춰야 할 것만 같았고 가만히 손뼉을 치거나 손을 조금 흔드는 일 외에는 즐거움과 호응을 표할 길이 없어 늘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이들의 <춘향가> 공연은 달랐다. 물론 두 번째 달과 소리꾼들도 공연 내내 관객들의 흥을 북돋아 주기 위해 노력하긴 했지만 그들이 유도해서가 아니라 공연 그 자체 때문에 관객들은 즐거워보였다. 자발적으로 박수를 치고, 자발적으로 흥얼거렸으며, 자발적으로 몸을 흔들었다. 그들의 ‘흥겨움’에는 무대위에 선 이들의 얼굴에 시종일관 웃음이 만발했던 것도 한 몫 하지 않았나 싶다. 소리꾼과 연주자들은 눈을 맞추고 장난을 치기도 했으며, 연주자들끼리도 서로가 연주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기도 했다. 행복해보였다. 음악을 만드는 이들이 즐거운데 그것을 듣는 이들이 즐겁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공연의 목적은 <춘향가> ‘완창’이었다. '적성가', '사랑가', '이별가', '어사상봉', '더질더질' 등 총 14곡을 듣는 것 자체만으로도 사실 의미가 있다. 내 또래 중 판소리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본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뿐만 아니라 이들의 음악이 퓨전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그건 ‘김치햄버거’처럼 어설프고 어색한 퓨전이 아니라 전통과 현재가 한 몸인 듯 자연스레 버무려진 퓨전이었다. 클래식에나 등장할 법한 피아노, 아코디언, 드럼, 바이올린, 비올라, 기타 및 각종 피리들이 만들어내는 선율에 간드러지는 소리꾼의 목소리가 처음 얹어졌을 때의 이질감이란 대단했을 것이다. 이를 최대한 줄이고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조정이 필요했을까.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한 최적의 소리와 최적의 타협점을 찾아 자신들뿐만 아니라 관객들까지 만족시키는 음악을 만드는 일은 절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달과 소리꾼들은 해냈다. 판소리와 악기 모두를 살리면서 동시에 자연스럽고 독창적인 퓨전에도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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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 중간에 두 번째 달의 한 연주자는 우리는 사실 유럽 악기를 연주하는 밴드였는데 어느 샌가부터 퓨전국악밴드가 되어있더라며 웃었다. 사실 이런 불분명함, 모호함, 그리고 다양함이 두 번째 달의 매력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그러면서 그들을 대표하는 명칭이 바뀌기도 하겠지만 아무렴 어떤가. 어쨋든 '두 번째 달'인데! 아직도 너무 많은 변형과 재창작의 가능성이 있는 '국악'과 이들 밴드의 조합은 단연 최고가 아닐까. <춘향가>에 이어 앞으로 또 어떤 '국악 프로젝트'를 선보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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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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