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리틀 포레스트(2014-2015) 일본 원작 영화 리뷰 [영화]

삶에는 정답이 없다. 태도만 남을 뿐이다.
글 입력 2018.03.19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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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2014-2015) 
일본 원작 영화 리뷰

삶에는 정답이 없다. 태도만 남을 뿐이다.


*결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리틀 포레스트 한국판이 개봉하기 전에 원작을 보고 싶었다. "원작 그대로가 아니면 안돼!"라는 생각은 아니지만 일본의 감성은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냈는지, 원래는 어떤 내용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여름과 가을, 겨울과 봄을 모두 봤다.




정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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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치코는 참 정성이다. 농사는 전부 정성이다. 매일매일 논밭에 나가 농작물을 가꾸고 하나하나 수확해서 각기 다른 방법으로 보관해야 오래 보존할 수 있다. 때론 망칠 때도 있지만 요리에 소질도 정성도 있는 이치코는 양파를 냉장고에 보관하기보다는 말려서 처마 밑에 보존하고 고구마는 신문지에 싸서 집안 가장 따뜻한 곳에서 월동을 준비시킨다.

 그런 이치코의 정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요리다. 이치코는 키운 농작물을 판다기 보다는 본인이 수확해서 먹고 사는 자급자족의 생활을 하고 있다. 팥을 한 알 한 알 말려서 유리병에 보존하고 갓 수확한 양배추를 튀겨 먹고 습기차는 날이면 화덕에 빵을 굽는다. 일본 가정식의 특징처럼 간소하지만 정갈하고 아름답게 꾸민다. 내게 요리는 생활의 일부였고 조금은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는데 이치코에게는 삶을 경영해나가는 방법 중 하나였다. (물론 영화에는 요리의 가장 힘든 파트인 설거지, 음식물쓰레기 처리 관련 내용이 나오지 않기는 한다.)




요리, 삼시세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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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요리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7-8 dish로 진행되는 영화는 마치 요리 프로그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조금의 배경과 함께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이치코가 요리를 시작한다. 잔잔하지만 꽤 통통 튀는 밝은 음악과 함께 나른하고 편안하게 들려오는 이치코의 나레이션. 작은 나무 테이블에 무릎을 앉아 '이타다끼마스(잘 먹겠습니다)'를 외치며 손을 모으면 요리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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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리는 곧 삶이다. 삼시세끼를 손수 챙겨먹어 본 사람은 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짓고 반찬을 해 먹고 설거지를 하면 곧 점심 때가 돌아온다. 점심을 먹으며 저녁을 고민하고 장을 보러 다녀온다. 다녀와서 저녁을 해 먹고 조금의 일과를 보내다보면 다시 하루가 저문다. 삼시세끼를 스스로 해먹는 것은 그만큼 고된 일이다. 영화는 별개의 스토리라인보다 각각의 요리에 중심을 두는 듯 하다. 하지만 결국 그 요리가 지탱하는 것은 누군가의 인생이다.

 영화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치코가 요리에 보이는 정성스러운 태도를 보여준다. 이치코는 시골에 있는 자신이 싫지 않지만 스스로 납득하지 못한다. 자신이 코모리에 있어야 할 이유가 '이 곳이 익숙한 도피처이기 때문'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민 속에서도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던 이치코는 순간 결단을 내리고 다시 코모리를 떠난다. 하루하루 삶을 채워나가다가 내린 결단과 과감한 실행. 이는 이치코가 자신의 삶에 대해 보인 애정이자 열정인 것이다.




이치코의 확신, 그리고 결국 남는 것은


 나의 예상과는 반대로 이치코는 다시 코모리로 돌아온다. 나는 이치코가 대도시에서 다시 그럴듯한 직업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왠지 사람이 성공하려면 도시에 있어야만 할 것 같고 돈을 많이 벌어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치코에게 중요한 것은 다시 삶에 대한 태도가 아니었을까. 코모리 밖에서의 이치코는 많이 묘사되지 않았지만 농사를 짓고 요리를 하던 이치코에게서 느껴지던 생기나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이치코는 도시에서 살아가면서 자신이 정성을 들일 수 있는 삶의 장소가 코모리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삶에 결국 정답은 없다. 삶을 대하는 태도만 남을 뿐이다. 이치코는 도시에서 살 수도 있었고 대형 마트에 가기 위해서는 하루가 꼬박 걸리는 코모리에 살 수도 있었다. 나는 이치코가 시골에서 다시 에너지를 얻고 도시에서 성공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성공'이라는 것은 물질적인 의미였다. 번듯한 직장, 멋진 옷, 존경받는 직책 언저리의 누군가. 어쩌면 나의 희망을 투영한 것일지도.

 이치코가 코모리에서 체험한 것은 정성스러운 삶의 태도였다. 눈을 치우지 않으면 밖에 나갈 수 없고 모를 심지 않으면 밥을 먹을 수 없는 생활 속에서 이치코는 하루하루를 채워갔지만 거대한 프로세스의 한 부품처럼 사는 도시에서 실증을 느꼈을 지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누군가는 농사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도시에서 숨가쁜 일상을 헤쳐나가며 성장과 보람을 느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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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내가 이 삶에 얼마나 정성일 수 있는가, 나의 삶에 얼마나 애정을 가질 수 있는지가 삶을 결정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쁜 정성이 아닌 투박한 정성이어도 좋다. 나는 매번 이치코처럼 정갈하게 밥을 차려 먹을 자신이 없다. 당장 방부터 치워야 한다. 그보다 나는 내가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중이다. 나의 삶에 애정이 생길 수 있는 무언가, 그리고 나의 애정을 부담없이 풀어놓을 수 있는 어딘가. 리틀 포레스트를 찾아가는 길 위에서 글을 마친다.



사진 리틀 포레스트 - 겨울과 봄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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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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