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삶의 쉼표] 십구 문 반의 신발

십구 문 반의 신발
글 입력 2018.03.1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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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家庭)

- 박목월


지상에는
아홉 컬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 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컬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 문 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 문 삼(六文三)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壁)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과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十九文半).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 문 반( 十九文半)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부모님이 걸었던 길.

그 흔적 옆에
살폿 내 흔적을 남겨본다.

가족의 흔적이 다 모여있다며
마냥 즐겁게 바라보다
문득 떠오른 시 하나.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강아지 같은 것의 신발 옆에 벗어놓은
십구 문 반의 신발.

내 발자국 옆에 찍혀있는 신발의 자국들은
십구 문 반의 신발과 닮아있다.
아니 십구 문 반의 신발과 다르지 않다.

이렇게 나는 그들의 흔적을 보고
다른 이의 시를 떠올리며
그들의 삶을 되돌아본다.


[곽미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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