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다섯 명의 오필리어로 그들이 보여주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연극]

경고와 충고를 넘어선 자극과 혼잡의 이야기
글 입력 2018.03.0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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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중간지대, 죽었던 오필리어가 차례로 깨어난다. 다섯 오필리어들은 서로를 처음 보지만, 단번에 서로가 누구인지를 알아본다. 다섯 오필리어들은 하나같이 무언가 미처 못다한 말과 전하지 못한 마음이 있어 보인다. 언뜻 미쳐 보이지만 각각의 오필리어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생각할 수 있도록. 다시 기억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자신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모든 억압과 폭력의 흔적들을 정화하는 의식을 치른다. 의식을 마친 오필리어들은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무언가’를 주고 사라져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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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필리어>에는 다섯의 인물들이 나온다.
각 인물들은 돌아가며 서로의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엔 하나의 목소리를 낸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다.
죽는 것은 잠드는 것. 그 뿐인 것을’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인물들 별로 특정한 키워드가 떠오른다.

억압된 가정환경
데이트폭력
세월호
문단계 성폭행
연예계 성폭행

중간에 뜬금없는 단어가 있는 것 같지 않나?


공연사진 (13).JPG


세월호를 연상케하는 학생. 안가도 괜찮다는 딸의 말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그녀를 그 배에 태워 보낸다. 누가 알았으리 그 끝에 감당 못할 슬픔이 자리 잡고 있을 줄을. 보고 있을 때는 그저 슬펐다. 그 누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슬퍼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극이 완전히 끝나고 그 의미를 되짚어보면서 이 부분은 마치 늘어진 테이프의 음악이 튀듯 튈 수밖에 없었다. <5필리어>는 현 시대 대한민국에 여성으로 살아감으로써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과 존재 상황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이 에피소드에서는 다른 넷의 오필리어들과는 다르게 여성이라는 특수성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왜’라는 생각과 ‘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여전히 필자에게 미지수이다. 차라리 과감히 그 이야기를 지웠더라면 극의 일관성에 좀 더 힘을 실어줄 수 있지 않았을까싶다.



‘The #MeToo Camapaign’


미투운동은 SNS에 '나도 그렇다'라는 듯의 'Me Too'에 해시태그를 달아 자신이 겪었던 성범죄를 고백함으로써 그 심각성을 알리는 캠페인이다. 이에 연장선상으로 사람들은 'With You'캠페인을 통해 피해자들의 지지와 연대를 보내고 있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가 안태근 전 법무부 국장의 성추행을 폭로한 것을 시작으로 문단계, 연극계 등 문화예술계에서까지 그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연극 <5필리어>에 나오는 다섯 명의 오필리어 중 두 명의 오필리어가 그들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한 명은 문학계에서, 한 명은 연예계에서 고통을 받으며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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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자극적인 묘사’

오필리어들이 성폭행당하는 과정을 극에서는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오필리어가 음악에 맞춰 몸짓으로 그 고통스런 과정을 표현한다. 이는 직접적인 묘사가 아니다라고 할 수도, 맞다고 할 수도 없지만 너무 자극적인 움직임이었다. 자칫하다가는 누군가의 트리거가 당겨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수위가 우려스러웠다. 극을 보기 전 관객 측에서 사전에 알아낼 수 있는 정보만으로는 그러한 장면들이 있다고 예측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관객들이 사전에 본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만한 어느 정도의 힌트를 제공했으면 하고 바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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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다.
죽는 것은 잠드는 것. 그 뿐인 것을’


다섯 명의 오필리어들이 두려워한 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그녀들은 어떻게든 살아냈을 것이다. 그들이 두려워했던 것은 권력을 가진 이들의 추악함이, 힘없는 자들의 고통이 계속해서 이어져나가는 것이었다. 더 이상의 오필리어들을 막기 위해 극의 마지막까지 그들은 외친다. 외면하지 말고 보라고. 피해자들의 목소리와 가해자들의 잔인함을. 외침은 절규에 가까웠으며 그 목소리를 그저 받아들이기에는 힘이 들 정도였다. 마치 관객들에게 외치는 그 말은 가해자들에게 전하는 말과 같아 그걸 듣고 있노라면 내가 가해자가 된 듯 한 느낌을 받아 아이러니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격양된 어조를 한 단계 낮췄더라면, 조금만 더 힘을 빼고 담담히 전했더라면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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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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