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꽃에 의한 누구들 [공연]

연극 '누구의 꽃밭' 리뷰
글 입력 2018.01.29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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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의 위대함을 깨달은 게 불과 얼마 전이다. 그 연극은 정말 현실적인 내용이었으니 이번엔 가상 속 인간의 끝을 보자는 생각에 보게 되었다. 입구에 빨간 ‘welcome’ 발 매트를 밟고 들어가 세트의 구성에 신기해하며 자리를 골라 앉았다. 아침을 알리는 소리가 끝난 후, 그날은 먹지 않는다던 아저씨를 제외한 가족이 식탁에 모여 앉아 옥수수(뽁뽁이)를 먹는다. 그리고 엄마가 식사를 하다 딸과의 대화 중, 사소한 것임에도 역정을 내며 먹던 옥수수로 사정없이 딸의 머리를 내리찍는다. 엄청난 성량의 욕설과 함께. 연극 시작 5분 만에 일어난 일이라 약간은 어수선하던 주의를 한 번에 모두 집중시켰다. 소리에 자극을 많이 받는 나는 생각이 들었고 끝까지 지속되었다. ‘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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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때까지 연극이나 영화를 볼 때 배우들의 대사, 동작 등 가시적이며 직접적인 것들에 이끌리며 봤었다. 그러나 이번을 기점으로 소품들의 의미, 무대 구조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봤다. 그 고민에 대한 힌트를 대사나 동작에서 찾았던 것 같다. 즉, 그만큼 무대와 소품의 구성이 너무나도 풍부하면서도 위트 있었다. 뽁뽁이(옥수수), 고추장(블러셔), 마요네즈(베이스 화장품), 종(남성의 성기), 곰인형(라디오), 바나나(총), 케찹(칼) 등. 그러나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디스플레이 화면 속의 양귀비였다. 극 중에서는 창밖의 풍경을 표현하는 수단이었지만, 초원에서 양귀비가 생겨나고 자라고 개화까지 연극의 진행과 같이 어우러졌다. 그리고 마지막에 전쟁이 끝남을 알려진 후 사라진 것까지. 소품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인물들과의 연관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바깥 상황 때문에 반강제적으로 집안에 묶인 가족 구성원들이 살아가는 목표는 양귀비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양귀비가 가져다 줄 돈 때문이다. 그 돈을 위해 모녀간에 칼을 휘두르고, 식사 중 어머니 앞에서 아버지를 당연하다는 듯 받아내는 딸은 그를 사랑한다. 징집을 피하기 위해 여장을 하고 도망치다 같이 살게 된 아이는 이들 각자의 해소 대상이 되었다가 결국 모든 이들에게 외면당한다. 전쟁 상황의 종료를 알리는 정치수장의 영혼 없는 위로와 그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을 내려놓는다는 무책임함이, 여태껏 이 모든 사람들을 묶어놓았다는 데 참, 인간과 권력구조의 덧없음까지 느꼈다. 양귀비가 사라지고 난 후 누군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누군가는 망연자실하게 앉아있었으며, 누군가는 아이를 가진 몸으로 짐을 챙겨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고, 누군가는 양귀비가 있던 시절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쇠사슬에 묶였다 결국 그 상태로 버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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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우리 주변에서 살아가고 있을 법한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연령대, 성격 등 다각적인 면에서 같은 상황을 입체적으로 체험시켜준다. 집의 가장인 아저씨는 전쟁 중 한 쪽다리를 못 쓰게 되어 병가제대를 한 뒤 양귀비를 누군가에게 팔아가며 연명해왔다. 병가제대가 적군을 상대하다 다친 게 아닌 스스로 허벅지를 칼로 여러 번 찔러 흰 뼈가 보일만큼 휘저어서 다친 거라는 말이 있다. 양귀비를 팔아 돈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가장 권력자이기도 하다. 그 권력을 잃었을 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아줌마는 피신하다 밤에 잠깐 잠든 사이 아들이 적군에 끌려가며 어둠 속에서 애타게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정신병에 걸렸다. 서른 살이 다되어가는 딸은 시작은 어땠을지 몰라도 당연하게 아저씨를 받아내고 그를 위해 치장을 하며 사랑에 빠진다. 집안 식구들에게 외부소식을 전해주고 탈출을 꿈꾼다. 살기 위해 사랑을 택했고 애정을 갈구했지만 살 수 있는 방법이 생기자 모든 것을 내팽개쳤다. 징집을 피하기 위해 여장을 하며 다닌 18살의 아이는 빠르게 집에 적응해나갔다. 잠을 자지 못하는 아주머니에겐 아들과 같은 말동무가 되어 잠을 자게 해주고, 딸에겐 친구가 되고 마음 붙일 곳이 되었다가 남자임을 알게 된 후에는 둘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아저씨에겐 욕정의 대상이 되었다 남자임이 밝혀진 후 쇠사슬에 묶여 지내다 끝내 풀어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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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지금 서있는 이곳에서 누군가는 처절하게 겪었을 전쟁에 처한 기분을 조금이나마 느껴보려 이 연극을 봤다. 목적은 달성했지만 보는 내내 너무 힘이 들어 끝나고 공연장을 ‘탈출’하는 기분이 들었다. 배우들의 뛰어난 역량에 잡아먹혀 내가 집 중앙에 있는 그 식탁이 되어 연극 속에 있는 듯 했다. 연극을 본 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속해 있는 주변 상황을 어느정도 만들어 갈 수 있지만, 어느 날 그 상황에 지배되어야 한다면 어떨까. 원래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상황이 바꿔 논 사람들의 모습들과 공존해나갈 수 있을까. 그 상황 맞춰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본다면,,, 그 상황이 끝나면 원래의 나를 찾을 수 있을까. 원래의 나를 찾더라도 견딜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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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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