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구질구질한 식사 만세, 킨포크 테이블

글 입력 2018.01.24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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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구질구질한 식사 만세
킨포크 테이블


 자, 우선 내가 이 책을 읽고 리뷰하기까지의 구질구질한 과정을 조금 설명하려 한다. 대체 왜, 무엇 때문에, 어떤 의미로 구질구질하냐고?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구질구질하다는 의미는 상태나 하는 짓이 깨끗하지 못하고 지저분한 모양이라고 한다. 필자가 그랬다. 처음 도착 한 책의 내용을 보고 눈이 크게 뜨였고, 우와 이건 꼭 해봐야 해! 했다. 리뷰는 책을 감상하는 거고, 이 책을 정말 완벽하게 감상하기 위해서는 꼭 사랑하는 사람과 식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부터 구질구질함이 시작된다. 나는 완벽한 날짜, 완벽한 요리를 골랐다. 요리 재료도 알아놨었다. 책의 저자는 '너무 완벽해지지 말고 소담한 식사를 하세용~'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책을 막상 읽은 내가 그러지 못했으니 참 우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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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스위트 비스킷과 버터밀크
그걸 나눠 먹을 가족. 달콤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


 <킨포크 테이블>에는 도파민을 마구 자극하는 스파이스가 책에 이곳 저곳 뿌려져 있다. 나는 책을 왠지 읽으면서 계속 사형수의 급식판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아티스트의 작품이 생각났다. 이 아름다운 책을 범죄와 죽음을 연결시키려는 게 아니라, 그냥 식탁에 오른 사진들 하나하나에 찰나의 메시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만든 다양한 식탁, 얼마나 멋진가! 나눠 먹기도 좋고 한 번에 여러 개 만들어 나눠 먹기도 좋은 스위트 비스킷과 버터밀크는 너무 이다와 라세 레어케 가족들을 닮았고,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애플 크리스프는 샘과 애쉴리를 닮았다. 그냥 사진 몇 장 볼 뿐인데 왜 내 코는 향긋하고, 내 입에는 달콤한 설탕이 떨어지는 것 같은지. 신경심리학자들은 우리의 뇌는 음식을 보면 먹지 않아도 기분이 좋게 설계되었다고 주장한다. 책을 뒤질 때마다 흐뭇한 웃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요리레시피와 개성을 조금씩 소개하는 이 책만큼 사람들을 쉽게 행복하게 할 수 있는게 있을까? 조금만 노력하면 그들의 식탁을 재현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이 주는 작은 행복 중 하나다. 음식은 사람을 배부르게 하고, 연결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사진과 각 가정의 개성이 돋보이는 요리 레시피는 그들의 행복을 조금이나마 간접으로 경험하게 했다.

 하지만 그래, 솔직히 한국인 독자로서 고백하자면, 재료를 구하기 어렵고 낯설어서 따라 하기 어려운 요리 레시피였다. 사실 이 책을 단순히 요리레시피라고 생각하니 요리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나의 어깨가 무거워진다.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은 남자친구에게 '킨포크 테이블'의 정신을 보여주겠다 하며 레시피를 고르고 고른지 한 시간, 가정적인 나를 어필하고 싶어서 수젠 푸오코씨의 할머니가 남긴 레시피가 나를 이끌었다. 그리고 <구운 돼지고기 안심과 사과 처드니>라는 메뉴의 준비과정에 들어간 순간 깨달았다. 당장 매운 사과 처트니를 위해 올스파이스 가루 1스푼과 노란 건포도와 말린 크렌베리 142g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사실 처트니가 뭔지도 모르지만 노란 건포도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이 책으로 처음 알았다. 애당초 건포도와 크렌베리는 142g씩 잘라서 팔지 않았다. 할머니의 레시피라는 무언가 가벼운 마음으로 임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도전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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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그래서 같이 잘 해 먹었냐고? 당연히 아니다. 돈도 없고 의욕도 바닥나버린 나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남자친구랑 팔짱 끼고 마트에 가서 소 불고기랑 쌈 채소, 쌈장을 사왔다. 그리고 그냥 구워 먹었다. 남자친구의 마음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조금은 실망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뭐, 어차피 식사는 짧았고 솔직히 소 불고기는 맛있었다. 같이 가정에서 오붓하게 먹는 음식이 맛있었다. 불고기를 그릇에 담다가 문득 이것도 킨포크 테이블의 정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같이 요리를 만들어서 먹었다. 둘밖에 없는 식탁에, 별다른 준비도 없고, 정말 요리라고 할 것없는 과정이었지만, 뭐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그냥 같이한 것이 중요했다. 이런 것들이 조금씩 모이고 모여서, 뭔가 맛있는 걸 먹어보자 해서 만들어진 게 저들의 식탁이 이었던 것 같다.

 <킨포크 테이블>은 그렇게 쉬운 요리책은 아니다. 최소한 요리 허접에 주변에 동원참치 시리즈 정도를 파는 마트가 있는 평균 한국인으로서 그렇다. 하지만 이 책의 정신과 마음은 생각보다 그렇게 무겁지 않다. 나한테는 식탁으로 돌아와서 함께 요리해서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여기서 소개된 사람들의 식탁을 한 번쯤 꿈꿔보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었다. 레시피는 요리라는 행동의 계기가 된다. 하지만 이 책의 핵심은 함께 뭔가를 부담없이 해가고 기대한다는 데 있다. 결국 뭣도 안된 구질구질한 식사였을지도 모르지만, 왠지 무언가 뿌듯하게 해냈다는 기분이 있다. 그 출발점에는 킨포크 테이블이 있었다. 급한 시간 때문에 결국 불고기로 노선을 바꿨지만, 언젠가는 꼭 '사과 처드니와 구운 돼지고기 안심'을 남자친구에게 먹여보고 싶다. 건포도가 노랗고 빨갛고가 문제인가, 내가 누군가에게 식탁을 주는 것이 중요하지. 대신 책의 말대로 식탁에서 부담감을 조금 덜고 도전할 것이다. 자, 당신도 그 정신을 수행할 때가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먹고 놀자! 구질구질한 식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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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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