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잊을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코코' [영화]

글 입력 2018.01.21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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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영화 ’코코’



아마 잊지 못할걸

다른 강아지를 데려오는 것이 어떠냐는 내 물음에, 친구는 늘 같은 대답이었다.


“쪼리를 잊게 될까 무서워.
그래서 안 돼.”


나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사람이란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는 할 말이 없어지는 법이니까. 다섯 달쯤 지났을까? 친구의 집에 새로운 강아지가 왔다. 이름은 제리, 쪼리와 다르게 푸들이었다.

얼마 뒤 친구는 내게 말했다. 이제 집에 가면 반겨줄 가족이 있어 좋다고, 같이 산책을 나갈 친구가 있어 행복하고, 같이 잘 수 있는 동생이 생겨서 포근하다고. 그래서 나는 묻지 않았다. 괜한 물음으로 친구의 행복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친구가 말했다. “여기가 쪼리가 제일 좋아하는 길이야.” 나는 눈치도 없이 “그럼 이 길을 걸으면 슬프겠네?”라고 물었다.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입술을 연 그때 친구가 대답했다. “이제 슬프지는 않아. 그런데 기억하고 있어. 아마 잊지 못할걸”



영화 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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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미구엘은 구두장이 집안의 자식이다. 이 집안은 음악을 극도로 혐오하는데 그 이유는 미구엘의 고조할머니인 ‘코코’의 아버지가 음악을 위해 가족을 버리고 떠났기 때문이다. 코코의 어머니 ‘이멜다’는 돈을 벌기 위해 악착같이 구두 만드는 기술을 배웠고, 자식들에게도 가르쳐주었다. 물론 ‘No music’이라는 그녀의 방식도 함께 전했다. 그렇게 그녀는 구두로 집안을 일으켰고 자손들은 그녀의 노력을 이어받아 지금의 삶을 일궈냈다. 자손들은 그들의 노력을 기억하기 위해 제단을 만들고, 사진을 올리고, 생전에 그들이 좋아했던 물건을 함께 둔다. 물론 코코의 아버지의 얼굴을 찢는 것으로 ‘No music’이라는 그들의 방식도 함께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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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구엘은 음악을 사랑한다. 멕시코의 유명한 음악가 델 라 쿠르즈는 그가 가장 동경하는 인물로 그를 보며 음악에 대한 꿈을 키웠다. 물론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만 키워온 꿈이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구엘은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가족들에게 들켜버린다. 가족들은 그를 질타하고 화를 이기지 못한 할머니는 미구엘의 기타를 부숴버린다. 이에 미구엘은 막 나가자는(?) 식으로 집을 나와 그 길로 동네에서 열리는 음악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달린다. 미구엘 역시 음악을 위해 가족을 떠난 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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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미구엘이 집을 나온 그 날은 멕시코의 국경일 ‘죽은 자의 날’이다. 이 날은 일 년에 한 번 죽은 자들이 살아있는 사람의 세계에 올 수 있는 날로, 거리에는 노란 국화꽃이 날리고 사람들은 형형색색으로 제작된 해골을 장식하고 죽은 사람들이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으로 상을 차린다. 이름은 조금 무서운 감이 있지만, 사실 멕시코 사람들에게 이날은 축제다. 미구엘은 바로 그 축제의 당일, 집을 뛰쳐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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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구엘은 한참을 달려 광장에 도착한다. 하지만 관계자로부터 기타가 있어야 음악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미구엘은 기타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살피지만 기타는 구할 수 없었다. 결국 미구엘은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한다. 바로 공동묘지에 가서 델 라 크루즈의 무덤에 있는 기타를 훔치는 것. 이전에 미구엘은 집안에 모셔둔 조상님의 사진 속에서 코코와 아멜다, 그리고 감춰진 아버지가 함께 나온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그 때 얼굴은 찢어지고 몸통만 남은 아버지가 들고 있던 기타가 바로 델 라 크루즈의 기타였다. 때문에 미구엘은 자신이 델 라 크루즈의 손주의 손주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래서 더욱 대담하게 기타를 훔쳤던 것. 기타를 훔치고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기쁜 마음에 기타 줄을 튕기는 순간 미구엘은 죽은 자들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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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구엘은 그곳에서 죽은 가족들을 만난다.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죽은 가족들 역시 미구엘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나무란다. 한편 미구엘이 현실로 돌아갈 방법은 아멜다 또는 그녀의 남편이 축복을 해주는 것이다. 그 축복 뒤에는 몇 가지 조건을 붙일 수 있는데, 아멜다가 미구엘에게 요구하는 것은 역시나 음악을 하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미구엘은 가족들로부터 도망쳐 델 라 크루즈를 만나기 위해 달린다. 그는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으며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미구엘은 ‘헥터’라는 델 라 크루즈의 친구라고 주장하는 해골(?)을 만난다. 헥터는 미구엘을 델 라 크루즈에게 데려다주는 조건으로 미구엘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다. 그렇게 죽은 자들의 세상에서의 모험이 시작된다.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학교에 다닐 때, 나는 ‘기억’에 관심이 많았다. 때문에 도서관에 틀어박혀 3달 정도 기억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 발견한 여러 가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기억은 영원하다. 그렇다면 왜 나는 작년 이맘때 먹은 점심을 기억하지 못할까? 그것은 떠올리는 것(인출)의 문제다. 쉽게 말하면 어떤 기억이 나중에 떠올려야 할 만큼 강렬하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만약 10년 전의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썩은 생선을 먹었다면 쉽게 기억할 수 있지만, 늘 먹던 음식을 당연하게 먹었다면 어제저녁 메뉴가 무엇이었는지도 쉽게 기억할 수 없다. 요컨대, 우리는 많은 것을 기억하지만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익숙하다고 생각한 모든 것을 다시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은, 이러한 까닭이다. 그 익숙함과 당연함 속에 소중한 뭔가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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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코코’는 등장인물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익숙함과 당연함을 보여준다. 당연하게 있을 것만 같은 ‘내일’, 항상 내 옆에 있는 ‘가족’, 무조건 지켜야 하는 ‘관습’,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엄청난 ‘부와 명예’까지. 이 당연한 것들은 너무나 일상적이라 그것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기 쉽지 않다. 그저 역사를 잊은 채로 받아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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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의식하지 못한 기억을 꺼내는 것으로 이 당연함을 무너뜨린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가족을 떠난 미구엘은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그 가족들과 꿈을 위해 그에게는 내일이 필요하다. ‘No music’을 외치는 아멜다는 음악과 남편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델 라 크루즈는 부정한 방법으로 부와 명예를 쌓았음을 기억하고 자멸한다. 즉, 내일과 가족이 없을 수도 있으며, 관습은 깨져버릴 수 있고, 죽은 뒤라고 하더라도 부와 명예는 무너질 수 있다. 마침내 영화의 마지막, ‘코코’가 자신의 아버지를 기억하는 것으로 영화는 모든 것이 무너진 폐허의 아름다움 속에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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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유로 나는 영화가 이야기하는 ‘영원한 기억’을 ‘잊을 수 없는 기억’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기억이 영원한 것은 기억의 속성이지만, 잊을 수 없는 것은 ‘개인’에 대한 것인 동시에 어쩔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각자 소중한 것 하나쯤 마음에 품고 사는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다. 어쩐지 ‘Remember me(나를 기억해 주세요)’가 ‘Remember, me(나를 기억하다)’로 들리는 것은 이러한 까닭이다.


P.S.
솔직히 말하자면, 영화 ‘코코’는 다양한 메시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충실하게 운반한다. 짜임새 있는 구성은 맞물려야만 움직이는 톱니바퀴처럼 빈틈없이 움직인다. 그 와중에도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 역시 강력하게 유지한다. 게다가 이 모든 과정이 환상적인 동시에 보편적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아쉽다. 내 그릇이 작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많은 것을 담으려다 보니 조금은 흘러 넘친 느낌이다.


[공정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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