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살아있는 브레히트와의 만남 <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 [공연예술]

글 입력 2017.12.22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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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나는 브레히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런 건방진 생각은 애석하게도 그의 이름을 공연장이 아닌 강의실에서 먼저 접하면서 시작되었다. 연극사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그의 이름은 매 시험마다 나에게 즐거움보다는 고통을 안겨 주었고, 브레히트의 작품은 따분하고 계몽적이기만 할 것이라는 반발심 내지는 편견이 무의식 중에 자리잡았다. 하지만 연희단거리패의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을 보고 나서 이런 선입견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날, 연희단거리패 공연장인 30 스튜디오까지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대학로와는 다소 떨어진 주택가 골목에 위치한 공연장은 ‘이 길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쯤 모습을 보였다. 표를 찾으러 매표소에 가니 분장을 한 배우가 자연스럽게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매표 뿐만 아니라 객석 안내도 별도의 직원없이 배우들이 담당하는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관객들이 자리에 다 앉을 동안 무대에 이미 나와 있던 배우들은 관객에게 장난을 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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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쟁의 연대기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30년 전쟁(1618∼1648)을 배경으로 1939년에 쓴 서사극의 대표 작품이다. 30년 전쟁이란 17세기 독일에서 신교(프로테스탄트)와 구교(가톨릭) 간에 벌어진 종교전쟁으로, 이 작품에 “30년 전쟁의 연대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유이기도 하다.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브레히트는 1920년대, 기존의 아리스토텔레스적인 환상주의 연극 형식과는 구별되는 “서사극”이라는 연극 개념을 창시하였다. 이는 관객의 인물에 대한 감정이입을 기반으로 한 전통적 연극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것이었다. 전통적 연극은 극 속의 사건이 당장 현실적으로 행하여지고 있는 것처럼 관객을 착각케 하는데 중점을 두고, 극 중 인물과의 감정동화를 통해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낸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관객을 수동적인 객체로 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극 밖의 사회에 대한 적극적 생각을 이끌어내는 데 한계를 가진다. 이를 위해 브레히트는 관객으로 하여금 무대로부터 비판적인 거리를 지니게 하여,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연극”에 불과함을 끊임없이 인지시킨다. 이를 통해 관객은 극이 담고 있는 사회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하고, 연극은 무대의 경계를 넘어 사회적 의미로 확장되는 것이다.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이하 ‘억척어멈’)”은 전쟁 덕분에 생계를 유지하던 억척어멈이 결국 전쟁으로 인해 자식을 잃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제 2차 세계대전 후 독일로 돌아온 브레히트가 그의 작품 중 “억척어멈”을 처음으로 상연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억척어멈”이 표현하는 반전(反戰)적 주제의식 때문이었다.

억척어멈은 전쟁 상황에서도 혼자 몸으로 자식 셋을 키우며 말그대로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인물이다. 행상 마차를 끌며 군인들을 상대로 생필품 장사를 하는 그녀는 영원히 전쟁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전쟁의 참상을 직접 몸으로 겪으며 이곳 저곳 떠돌아다니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전쟁이 끝난다는 것은 곧 밥벌이가 끊긴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전쟁으로 인해 세 자식들을 차례로 잃고 만다. 전쟁이 끝나고 홀로 남은 그녀에게 남은 것이라곤 목숨을 걸고 지켜온 마차 하나뿐이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군대의 뒤를 쫓는다.


 
살아있는 브레히트와의 만남


이윤택 연출이 연출한 연희단거리패의 “억척어멈”은 30년 종교전쟁이란 상황을 한국전쟁으로 변용하여 가져왔다. 이는 브레히트가 표현하는 “30년 전쟁”이 꼭 역사 속의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전쟁 상황이라도 적용될 수 있는 참혹한 상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연희단거리패의 “억척어멈”은 그 중에서도 빨치산과 국군 세력이 치열한 주도권 경쟁을 벌였던 지리산 밑 남원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연희단거리패의 이러한 변용은 단지 배경을 한국으로 옮겨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원작의 구성과 주제의식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당대 한국의 역사적 상황을 잘 표현할 뿐만 아니라, 전통적 판소리 양식을 도입하여 새로운 “억척어멈”이라는 극을 창조해내었다.
 
공연이 끝난 후, 얕은 지식으로 가지고 있던 나의 선입견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깨달음과 동시에 배우들의 열연에 마치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으로 극장을 나오게 되었다. 공연을 보는 내내 원래 브레히트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이 작품을 쓴 건 아니었을까 의심하게 될 만큼 진정한 한국적 변용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공연이었다. 그동안 내가 배웠던 브레히트가 죽어 있는 과거의 인물이라면, 이 공연은 살아 있는 브레히트와의 만남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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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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