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든 꽃을 한 송이 선물하며 [와비사비 라이프]

'와비사비 라이프(줄리 포인트 애덤스, 월북, 2017)'
글 입력 2017.12.20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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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비사비 라이프
(줄리 포인트 애덤스, 월북, 2017)


  부엌은 흔히 안식의 공간이다. 가스불의 온기는 공간을 따뜻하게 덥히고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추억처럼 귀를 메운다. 널브러져 누워버리고 싶을 만큼 지친 날이면 밀린 설거지를 하고 냉장고 구석진 데 말라가는 야채를 다듬으며 마음을 달랜다. 손이 서툴러 한 움큼씩 버려가며 손질하다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도무지 펴지지 않던 얼굴도 흐르는 수돗물과 함께 우울을 씻어버리고 평범하게 되돌아온다. 그릇에 모아둔 재료로 요리를 한다. 주로 볶음이나 탕을 끓인다. 음식이 완성되면 혼자 상을 차리고 식사를 한다.

  혼자만의 식사가 싫어 종종 친구나 이웃을 집으로 부른다. 부를 만한 사람이 적고 그들마저 시간이 맞지 않아 정작 실제로 온 적은 적어도 꾸준히 그들에게 초대장을 돌린다. 남들의 시선이 없는 곳에서 음식을 대접하고, 공간을 나눈다는 것은 상대와 굉장히 가까워진 느낌을 준다. 내가 느끼는 안락을 상대도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 꼭 와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이내 조르곤 한다. 메뉴는 가벼운 떡볶이, 고기가 먹고 싶은 날에는 닭볶음탕, 삼계탕 등으로 선택한다. 평소에는 손이 많이 가 잘 해먹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막상 상대가 초대에 응하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아무렇게나 어질러 놓은 방을 먼저 청소한다. 상대가 편히 쉬다 갈 수 있도록 의자나 상의 위치도 이리저리 바꿔보곤 한다. 혹여 음식이 입에 맞지는 않을까 전날부터 염려하며 준비한다. 저녁 한 끼, 한 두 시간의 짧은 시간을 위해 종일의 수고를 끝내면 상대가 올 즈음 진이 빠져 있다. 힘겹게 웃어 보이며 친구나 이웃을 맞이한다. 나는 언젠가부터 초대의 본질을 놓친 채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초대의 목적이 그것을 ‘준비’하는 것에 있지 않건만 나는 엉뚱한 데 더 큰 비중을 두었던 것이다.

  < 와비사비 라이프 >는 우리에게 초대의 본질이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다. 사람을 초대한다는 것은 곧 그 사람과 전심을 나눈다는 것. 서로 불편해하지 않고 그 순간을 오롯이 즐기며 공유하는 것. 그 마음의 전이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 전부다. 음식의 대접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준비해야 할 것은 환영하는 마음과 여유이다. 진정한 초대를 실현하려면 우리는 와비사비 라이프를 실천해야 한다. 저자는 세계 각국의 가정에 초대받은 경험을 토대로 그 삶이 어떠한 체계로 짜여 있는지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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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의 진심을 방해하는 제1요소는 궁극적으로, 부담이다. 나은 음식을 대접해야 한다는 욕심, 집이 누추하면 안 좋게 보일 것만 같은 걱정, 막상 대면하여 시간을 가질 때 어색하고 불편할 것만 같은 불안…… 부정적인 감정이 곧 부담이 되고 소통보다는 억지와 과시로 이어진다. 손님을 환대하는 마음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결국 이러한 부담은 그 초대의 시간 내내 가시지 않는다. 초대란 곧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를 나누고 시간을 보내는 것. 식탁에 덩그러니 앉혀두고 혼자 분주히 음식을 나르게 되면 마치 식당에 온 듯한 이질감을 주게 될 수 있다.

  재밌게도 성경 말씀에서 이와 관련된 일화를 찾아볼 수 있다. 누가복음 10장 38절에서 44절로 이어지는 내용이 그것인데, 예수의 일행이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방문한 것으로 시작한다. 마르다가 분주히 시중을 들고 있을 때 동생 마리아는 예수의 앞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다. 두고 보던 마르다가 예수께 “마리아더러 저를 좀 거들러주라고 일러주십시오.”라고 화를 내지만 예수는 오히려 그녀를 타이르며 입을 연다.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사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했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보았을 때 초대의 본질은 곧 초대한 사람, 그 자체다. 준비에 열심을 쏟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말에 온전히 귀 기울이고, 공유하는 것에 마음을 다하는 것, 무슨 대화를 나눌 것인지 고민하는 것. 물질로 대접하고 만족을 얻는 것이 아니라, 소통과 여유, 안락으로 접대해야 한다. 필요한 것은 단지 그것뿐이다. 거기서 ‘좋은 몫’을 얻는다. < 킨포크 >사의 편집장 줄리 포인트 애덤스는 지면 전체에 걸쳐 이 이야기를 설파한다. 한 상 가득 진수성찬을 앞에 둔 저녁보다 오히려 기억에 남은 차 한 잔과 바게트 빵 한 조각을 떠올리면서.

  결국 와비사비 라이프는 우리의 부담을 제거해준다. 와비와 사비는 각자 일본어로 단순한 것, 덜 완벽한 것 과 오래된 것, 낡은 것을 의미한다. 두 가지가 더해져 ‘단순하고 겸손하며 알 수 없고 덧없는 것 속에서 조화와 기쁨을 발견하는 정서라는 의미가 된다.(p.18)’ 더 간단하게는, 와비사비란 ‘그저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돋보이거나 나아 보이기 위해 억지로 꾸미지 않고 본연의 모습 그대로 두는 것, 가구를 옮기다 마루에 난 흠집과, 뜨거운 냄비에 까맣게 그을린 흔적을 지우지 않는 것이 와비사비 라이프이다.

  이것은 ‘집’에서 자연스럽게 실천할 수 있다.


집은 보다 사적인 공간이자
의미 있는 곳이며,
완벽하지 않은 곳이고
최신 유행을 따라가려고
기를 쓰지 않아도 되는 곳이며,
타인의 기준에 맞추려 아등바등하지 않는 곳이다.

집은 무엇보다 자신을 위한 공간이어야 한다.(p.25)


  덴마크의 집은 와비사비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오래된 농가 주택에도 최신식 아파트에도, 길모퉁이 카페에도 은은한 촛불, 장작 난로, 나무 벤치, 아담한 식탁이 자리 잡고 있다.(p.76)’ 언제든 사람을 맞을 준비가 된 소박하고 아늑한 공간, ‘휘게hygge’에서 비롯한 생활 방식이다. 편안함과 안온함에 집중하는 휘게 라이프는 우리가 집을 집답게 꾸밀 수 있도록 돕는다.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것, 과장된 장식을 치우고 단순하게 구성해야 한다. 우선 우리 자신이 집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머무를 수 있어야 손님도 편히 마음을 풀어둘 수 있다.

  캘리포니아의 집은 ‘불필요한 것은 두지 말라는 말이 꼭 황량할 정도로 미니멀한 삶을 추구하라는 뜻은 아니(p.136)’라고 말하고 있다. 오히려 그것은 ‘따스하고 편안하며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것들을 추구하란 뜻이다.’ 와비사비의 미학은 사물에 스민 저마다의 이야기에서 온다. 손님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도록 나만의 가치가 담긴 물건을 전시해 보이는 것도 좋다. 처칠은 “사람은 집을 만들고, 집은 사람을 만든다.”고 말했다. 편안하고 따뜻한 집은 곧 다정한 사람을 대변한다.

  화병에 장미를 꽂아두면 얼마 안 가 시들어버린다. 가위로 줄기 끝을 잘라 물을 마시도록 하지만 금세 잎 끄트머리가 쪼그라든다. 보고 있으면 가슴 한 켠에 황량한 기분이 들어 얼른 휴지통에 버린다. 그러나 우리의 와비사비 예찬론자는 시든 꽃조차 아름답다고 말한다. 시든다는 것은 시간은 온몸으로 머금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 시간도 시들어가고 있다. 와비사비의 아름다움을 한껏 피워낼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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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족과 여유는 느긋함을 선물하고, 느긋함은 소통을 향하는 계단이 된다. 이번 주말에는 노을을 쫓아, 어디선가 내리는 흰 눈을 찾아 훌쩍 떠나야겠다. 어깨에는 물과 빵만을 담은 가방을 메고 혼자 길을 열어야겠다.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아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외딴 바위에 걸터앉아야겠다. 누군가 옆을 지나가면 먼저, 인사를 건네야겠다. 시든 꽃을 한 송이 선물하며.





[도서 정보]

도서명: 와비사비 라이프: 없는 대로 잘 살아갑니다
원제: WABI-SABI WELCOME
지은이: 줄리 포인터 애덤스
옮긴이: 박여진
분야: 에세이, 행복론
발행일:2017년 11월 20일
펴낸곳: 윌북
정가: 1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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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범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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