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기억] #도둑맞은일#비오는날사라진나#비밀 일기장#빛의 요정#무서운 이야기

2017.12.12. 14.
글 입력 2017.12.12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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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도둑 맞은 일

내 소유의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은 달가운 경험은 아닙니다.
특히 스스로의 불찰이 아닌 타인의 고의로 물건이 사라진다면
더더욱 달가운 경험이 될 수는 없겠죠.

누군가가 가져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의심을 하게 되고 필연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이 생겨나기 때문에
차리라 나의 실수로 잃어버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더더욱 물건을 가져간 사람이 나의 친구라면,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했던 지인이라면
그 감정은 실망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겠지요.

성인이 되고 난 후에는 한번도 없었지만
유독 어린 시절에 친구들에 의해 물건이 도둑 맞은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물건들을 넣어둔 작은 가방을, 잠시 집에 초대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필기구를, 예쁘다고 칭찬하던 친구가
나보다는 엄마가 좋아했던 핑크색 가디건을, 부러워하며 만지작거렸던 친구가 가져갔었습니다.

이런 일들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일은
미술시간에 그린 그림을 그 시간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누군가가 훔쳐간 것이었습니다.

상황을 곧 알아채신 선생님께서
모두의 사물함을 열어보고는 친구의 사물함에서 나온 저의 그림을 찾아주셨지만
물건이 돌아온다고 해서 도둑 맞은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신뢰도 도둑 맞았기 때문입니다.

언제가 한번 누군가가 저에게
물건에 이름을 잘 써두면 훔쳐갈 일이 없지 않겠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반문할 걸 그랬습니다.
이름을 써두지 않았어도 그들은 그 물건이 나의 소유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고.
왜 이름을 써야 하죠? 이름을 쓴다고 달라졌을까요?





#60  비 오는 날 사라진 나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올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귀가하지 않는 아이 때문에 난리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청소를 한 날이라 조금 늦게 끝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오지 않는 아이는 엄마와 선생님의 불안을 크게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퍼붓는 여름 장마철의 비는
나쁜 생각이 들게 할 정도였으니까요.

학교와 집만 오갔기에 딱히 전화하여 물을 곳도 없지만
묻고 물어 반 친구들의 집에 갔나 수소문 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청소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말뿐.

청소는 길어야 20분, 집에서 학교까지 아이의 걸음으로 15분인데
빗줄기는 더 굵어지고 2시간이 다 되도록 돌아오지 않자
혹시나 길이 엇갈릴까 하여 집에서 기다리던 엄마는
다시 한번 선생님께 전화를 걸며 집을 나서려는 순간,
태연하게 우산을 쓰고 천천히 걸어오는 아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고의는 아니었습니다.
어른들의 눈을 피해 일탈을 하려던 것도 아니고,
일부러 늦게 돌아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핸드폰도 시계도 들고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비가 오느라 깜깜해진 주변 때문에,
나만의 시간만으로 시각을 가늠해야만 했었습니다.

문제는 그 시간이 굉장히 느려서 모두를 걱정시킬 정도로
세상의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이었습니다.

단지 청소를 대강하고 간 아이들 때문에 홀로 마무리를 하느라
늦게 끝났고, 싫어하는 비까지 오니 최대한 비에 젖지 않게 천천히 걸어온 것뿐입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잠시 서서, 잠시 앉아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더 늦어진 것이지요.

그래도 학교에서 집까지의 그 짧은 거리를
2시간이 넘게 걸려왔다는 것은 아직도 신기합니다.





#61 비밀 일기장

줄곧 유년의 기억을 쓰면서
소심하고 말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생각해보면 또래 아이들이 어울려서 하는 일들은 빼먹지 않고 했었던 것 같습니다.

비밀 일기장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 일기는 친하다고 말하는 몇몇 아이들끼리
하나의 일기장을 공유하고, 날마다 돌아가며 각자의 일기 혹은 비밀을 그곳에 적어서
그 친분을 더욱 돈독히 하는 데에 목적을 두었지요.

사실 매일을 함께하는 반 친구들끼리의 일기장 공유였기 때문에
그 날의 일기보다는 비밀이 일기장을 주로 차지 했는데,
대단한 비밀이랄 것도 없고 어떠한 잠금 장치도 없어서
그저 책장만 넘기면 드러난 비밀이라 그 무게는 무겁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일주일에 한번 정도 돌아오는 비밀일기장을
이전 순서의 친구에게서 전해 받을 때면
비교적 인적이 드문 복도 끝에서 만나곤 했지요.

받은 일기장을 옷 속에 잘 숨겨서 가방 안 또 다른 주머니에 넣고는
집에 가서 펼쳐볼 생각에 두근두근 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는 자물쇠가 달려있는 일기장을
친구들과 하나의 열쇠를 돌려가며 함께 썼지만 그 사실만 기억날 뿐,
어떠한 이야기를 썼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납니다.

아마 누군가를 좋아한다거나 받아쓰기의 점수라거나
엄마에게 꾸중을 들었던 일 정도이었겠지요.

그 일기장들은 누구에게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62 빛의 요정

첫 번째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항상 수업이 끝나면 잠시 집에 들렀다가
피아노 학원과 미술 학원이 함께 있었던 상가로 향했습니다.

아주 가까운 거리였지만
혼자 오가는 것은 조금 심심하기도 하고 상가 안이 무서웠기에
그곳에만 가면 빛의 요정을 만나곤 했습니다.

그 요정은 작은 저보다도 더 작고 낮은 곳에 있었고,
아주 가까이에서 쭉 따라와주었기 때문에
상가 건물에 들어설 때부터 고개를 숙이고 찾았고,
보이지 않는 날이면 시무룩하게 학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어쩌다 친구와 함께 학원에 가는 날이면
요정이 보이지만 아는 척은 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비밀친구였기 때문이지요.


사실 빛의 요정은 상가 건물 바닥에 있는
타일과 타일을 구분해주는 얇은 금속 선에 반사되는 천장의 빛이었습니다.
그때도 물론 알고 있었습니다.
빛의 요정은 요정이 아니라 태양의 빛이 거울에 비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한번쯤 어린 시절 가상의 친구가 있었을 테고,
남에게 없는 특별한 비밀의 관계를 갖고 싶었을 나이였으며,
외로운 시간을 외롭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에
빛의 요정은 아직도 가장 애정 하는 기억이자
이 기억이 지금 차마 말 하지 못할 유치한 기억이 아닌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어른의 저가 참 좋습니다.





#63 무서운 이야기

여름, 비 오는 날, 학교
이 세 단어가 만나는 지점엔 언제나
‘무서운 이야기 해주세요!’라는 말이 따라오곤 했습니다.

저는 사실 무서운 것을 굉장히 싫어하며
가위가 눌렸던 밤이면 그 날로부터 일주일 간 맘 편히 잠들지 못하는
겁쟁이이기 때문에 무서운 이야기를 들으면
그 이후에 좋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잠시라도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되는 핑계와
그 핑계에 선생님까지 끌여들여
더운 여름도 서늘해지는 그 분위기와
다 같이 옹기종기 붙어 앉아 한 사람의 말에 최선을 다해 귀를 기울이는 상황이
너무나 즐거워 언제나 '무서운 이야기 해주세요!' 편에 서곤했습니다.

두 번쨰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 유독 무서운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러한 종류의 이야기에서 꼭 등장한다는
세종대왕 상과 과학실의 인체모형, 복도 끝 잠겨진 쓰지 않는 교실 등의
요소를 모두 갖춘 학교였기에 선생님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이때에 들은 이야기는 기억에 남아,
비가 오는 여름날이나 친구들끼리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을 보낼 떄에
유용하게 쓰이곤 합니다.

유년의 기억의 한켠으로 무서운 이야기들을 써볼까 싶었지만,
글로까지 남기는 것은 왠지 모르게 더 무서운 기분이라
무서운 이야기에 대해서만 써보았습니다.
아직은 귀신이 무서운 나이인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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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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