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부부라는 이름으로, 연극 < 아내의 서랍 >

서랍 속 낡은 기억이 끄집어낸 것들
글 입력 2017.12.1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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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소극장의 무대엔, 막이 오르기 전부터 넘실거리는 기운이 있었다. 그 기운을 타고 시작한 연극은 끝나고 나서도 여운을 남겼다. 그래서 이 극이 참 좋았다. 어찌 보면 한국 사회에서 흔하게 드러난 결혼의 이미지를 너무나 낱낱이 그려 놓아서, 오히려 더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알 수 없는 거리감을 유지한 채, 작품과 나는 대치되었다. 보는 이며 인물의 심정을 콕 집어 내는 묘사배우들의 흡입력 있는 연기에 나도 모르게 쑤욱 작품에 빠졌다가도, 인물이 겪는 심란한 마음을 마주하자 어느새 현실로 돌아와 그들을 바라보기도 했다. 결혼과 사랑의 연관성과 경계에 대해 깊은 물음을 남기는 작품이었다.



REVIEW
연극 <아내의 서랍>
작 김태수
연출 신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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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어긋났을까


처음엔 화가 났다. 남편은 아내를 면박 주고 구속하는 것으로 보였다. 주목할 점은 그 자신은 결코 본인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얼마나 자랑스러운 한 나라의 가장인지 모른다. 그의 태도와 말투에서 버젓이 드러나는 당당함에 나도 모르게 기가 차 헛웃음이 나왔다. 그가 대표하는 현실 속 가장의 곁에 있을 수많은 아내가 떠올랐다. 그녀들이 결혼 후 겪은 것이 이처럼 모진 것이었다면, 나는 이제서야 그 서글픔을 제대로 직면한 것이 마음 아팠다.

43년 동안 남편이 자존심을 내세우며 벽을 높게 쌓으면, 아내는 그 벽돌을 하나하나 치운다. 본인의 자존심 따위 어찌되든 중요치 않다. 누가 그에게 오만함을 주었는가. 그 낡은 사고방식을 안고 살아가는 그에게 연민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 정도로밖에 살지 못하는 사람.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두 사람 모두 피해자이다. 그 시대의 꽉 막힌 제도에 꼼짝없이 갇혀버린 피해자. 하지만 그렇다고 둘의 처지가 같아지는 건 결코 아니다. 애초에 그들을 옥죄인 제도가 지나치게 남성중심적이어서, 마음을 다치는 건 늘 여성이었다. 각자의 삶의 끝에서 그 길을 돌아봤을 때, 어느정도 자부하며 “이 정도면 괜찮지”라고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과, 아쉬움과 회한이 덕지덕지 묻어 자꾸만 돌아보게 되는 사람을 어떻게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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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때 잘하지”


아내가 집을 나가고 돌아오기 전까지 안절부절하는 남편을 보며 계속해서 든 생각이다. 곁에 있을 땐 너무나 익숙해서 차마 그 안락함에 대해 따져 볼 생각도 못한 그가 답답했다. 그녀가 다시 돌아온다 한들, 43년 동안 묵은 뼈아픈 기억은 언제나 남아있을 것이다. 만약 아내가 질환이 없었다면, 몇 년 뒤 그가 극의 마지막에서처럼 달라질 수 있을까? 그에게 끝없는 회오를 일으키는 아픈 아내가 곁에 있기에 지극정성으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지, 남편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떠받드는 아내로서 다시 돌아왔다면 그가 과연 전처럼 돌아가지 않을 수 있을까? 본인의 성장부터 결혼 기간 내내 발전된 그의 사고방식이다. 수도 수리공과 은행에서 만난 타인에겐 한없이 예의 바른 그가, 정작 43년간 함께한 아내를 대할 때는 그 반 만도 못하다. 그녀가 사라지고 나서 자신의 무심함을 깨닫는 그지만, 나는 그에게 도무지 바라기가 힘들다.


사랑이 뭐길래


매사 별 것 아닌 걸로 구박받는 아내에게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작품이 진행될 수록 그녀에게도 의문이 갔다. 도대체 그녀가 그에게 갖는 감정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길래 그 많은 사건을 자신의 희생으로 덮으면서 그의 곁을 지키려 안간힘을 썼냐는 말이다. 이 같은 의문이 내가 그들과 다른 시대를 살아와서 인지, 아니면 그녀만큼의 엄청난 사랑을 경험한 적이 없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마음에 그 많은 생채기를 남기는 사람을 언제까지고 보듬어주려 해선 안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의 주체성을 걸고 덤벼야 하는 사랑이라면, 그 과정이며 결과가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자기희생을 당연시하는 사회제도 아래 비틀거리며 위태롭게 서있는 피해자이다. 본인의 희생과 그로 인한 결과를 따졌을 때, 후자에서 오는 만족감으로 전자를 애써 외면한다. 이것이 매번 반복되고, 이제 더 이상 애쓰지 않아도 자신을 버릴 수 있게 된다. 그녀의 희생은 종이조각처럼 날아가버린다. 남는 것은 만신창이가 되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작아진 그녀 뿐이다. 이런 그녀가 아무리 자신의 행동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말하려고 해도, 자신을 잃어가며 지킨 보상받지 못하는 외로움이 과연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지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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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무엇일까? 작품을 보고 나서 생각하면, 사랑만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결혼은 사랑을 이어가는 다른 형태의 시작이고, 그 모양을 만들어가는 데 있어 두 사람의 상호 존중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서로가 피부로 느낄 만큼의 존중 없이는 이후 그 양상이 어떻든 간에 둘의 관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더불어 부부라는 이름으로 어디까지 감내해야하는 가에 대해 생각해 볼 때, 자신을 훼손시키면서까지 그 형태를 지킬 이유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사람마다 사랑으로서 추구하는 것이 같지는 않겠다마는, 상대에게 맞추느라 잘라내고 변한 부분이 너무 많아 나 자신도 알아볼 수 없게 되어 버렸다면, 그 모습으로 사랑을 이해할 최소한의 판단력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작품의 주인공들이 살아온 시대와는 사뭇 다른 사고관을 보이는 현재, <아내의 서랍>은 결혼이 갖는 의미와 이유, 방향성에 대해 다시금 곰곰이 생각하게 만드는 진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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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및 이미지 출처: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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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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