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메이징한 에이미의 자아발견, 영화 < 나를 찾아줘 > [영화]

글 입력 2017.11.29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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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one Girl > 이라는 원제보다 < 나를 찾아줘 >라는 한글판 제목이 마음에 드는 영화. 소녀는 사라진 게 아니라 숨바꼭질을 한 것뿐이다. 그녀와의 숨바꼭질은 뒷통수를 후려 맞는 얼얼하고 살벌한 게임이다. 우아하고 아름답고 닮고 싶은 에이미. 뽀로로가 아이들의 대통령이라면 에이미는 아이들의 여왕이다. 그녀를 롤모델로 한 동화 속 캐릭터 ‘에이미’는 흠 잡을 것 없이 완벽하다. 실제 에이미는 실수도 하고 불행할 때도 있지만 동화 속 에이미는 늘 행복하고 당당하다. 에이미는 자기 자신과 늘 비교당하고 싸워야 하는 기구한 숙명의 소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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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던 그녀가 만난 남편 닉. 처음에는 우린 다를 거라는 환상을 안고 시작한 결혼 생활은 5년 만에 파국이다. 그녀는 그때문에 아무도 모르는 동네로 이사와 혼자 내동댕이쳐졌다. 남편은 자신을 유혹하던 똑같은 방법으로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고 백수가 되었다. 거짓말쟁이. 게으른 욕망덩어리. 그녀는 실망스러운 남편을 보고 결심한다. 자신을 이렇게 불행하게 만든 남편에게 복수하겠다고. 그냥 이혼에 합의하는 건 시시하다. 에이미는 숨어버린다. 닉을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할 계획을 움켜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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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쾌한 복수냐 묻는다면 물론이다. 지나치게 통쾌해서 말을 잃을 수도. 그녀는 타고난 연기자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진정한 에이미만의 모습은 찾기 어렵다.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 알고 상대에 맞춰서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닉에겐 우아하고 쿨한 여자로, 옆집 사람에겐 외롭고 불쌍한 여자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제자와 한눈을 판 남편이 한심해 그녀에게 연민이 생겼던 건 쓸데없는 사족같이 느껴진다. 그마저도 그녀의 계획인 것 같아서 혼란스럽고 심리적 거리가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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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종부터 귀환까지 치밀하다. 대충 지운 핏자국. 뭔가 어설픈 사건현장과 진실과 허구가 고루 섞인 일기장. 내용은 볼 수 있게 미디엄 레어로 태운다. 임신한 것으로 속이고 심지어 자신이 자살함하는 엔딩까지. 남편을 범죄자로 몰아가고 사형시키려는 담대한 계획이었다. 모든 것이 그녀의 남편을 폭력적이며 부도덕한 살인자라고 믿게 만들기 충분했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유연하게 계획은 바뀐다. 예상외로 들고 온 돈을 잃게 되자 자신을 믿고 있는 남자와 만난다. 놀랍게도 그 남자를 납치·강간범으로 보이게 만들고 죽인다. 아마도 닉 대신 그와 함께 하는 걸 생각해보긴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그가 좋아하는 건 '그의 에이미'이다. 날씬하고 탄탄한 몸에 예의와 격식을 차리며 지루한 이야기를 교양있게 이야기하는 살아있는 환상. 은근히 그녀를 구속하고 집착하는 골치아픈 사람. 그녀를 구해준 대가는 그녀의 몸과 마음을 모두 얻는 것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는 그녀의 남자보다는 긴 실종을 합리화할 범인 역으로 더 적합하다. 수정된 계획대로 그녀는 피해자로 성공적으로 귀환하고 수많은 환호를 받는다. 그녀의 실체를 알게 된 소수의 사람들은 입도 뻥끗할 수가 없다. 남편은 그녀에게서 벗어나려 하고 형사는 맹점을 지적하려고 하지만 쉽게 제지당한다. 그녀는 자신을 버리는 이들을 나락으로 끌고 내려갈 패 정도는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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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제목은 이제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사라진 건 소녀가 아니라 소녀가 필요한 타인의 관심. 찾아달라고 한 건 그녀의 몸이 아니라 날 것 그대로의 그녀의 모습이다. 아, 이제야 그녀가 보인다. 그녀는 늘 사람에 목마른 순수하고 전략적인 존재다. 타인이 있어야 그녀가 빛나 보인다. 실제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이 믿는 것이 곧 그녀가 살아있는 세상이다. 사실은 그녀는 다른 이들에게 맞춰 주는게 질렸을지도 모른다. 쿨한 아내, 착하고 예쁜 딸 같은 역할도 하루 이틀이다. 왜 아무도 자신이 남들에게 해주는 것을 자신을 위해 해주지 않는가? 의뭉스러운 불만이 터져버린 것이다. 이제는 자신에게 맞춰줄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녀는 그래서 남편에게 돌아왔다. 자신이 모자란 것을 반성하고 ‘그녀가 원하는 남자가 되겠다’는 그의 거짓말 한 마디에.
     
  행복해 보인다. 실종된 줄 알았던 에이미는 그녀를 기다리는 남편의 품으로 돌아왔다. 감동스럽다. 이런 드라마같은 일이! 그러나 서로 다 아는 아는 마당에 피차 거짓말은 하지 말자. 현실은 불행한 쇼윈도 부부에 불과하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째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나아졌다. 에이미는 생기가 넘치는 ‘어메이징 에이미’로 재도약했다. 닉은 백수를 벗어나 돈방석에 올랐다. 진실은 상관없이 그를 잘근잘근 씹고 뭉크러뜨린 언론을 보고 자신도 몰랐던 연기력과 재기를 발견했으며, 적자에 고전하던 그의 바(어린 내연녀도 드나들던 문제의 술집)는 체인점까지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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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꿀떨어지는 표정 좀 지어봐
 

  돌아가는 걸 보니 세상 참 재밌다. 에이미가 왜 이러는지도 이해가 갈 정도다. 그러니까 적어도 이쪽은 손해 보는 게 없다. 사람들은 늘 재미있고 자극적이고, 자신들은 할 수 없는 이야깃거리가 필요하다. 현실 속의 환상. 그녀에겐 오랜만의 실력발휘. 예전엔 사람을 성폭행범으로 매장시키고 이번엔 어쩌다보니 죽이긴 했지만 뭐 어떤가? 그녀도 처음부터 죽이려던 건 아니었고 이야기를 아귀가 맞게 만들다 보니 이게 최선이었을 뿐이다. 그녀는 개연성과 설득력, 작품성을 놓치지 않는 스토리텔러이자 배우, 감독, 연출가니까. 어쨌든 그녀는 돌아왔고 그는 반성했다. 재밌었잖나. 에이미는 자유로워 보인다. 혼자선 우위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판을 흔들고 뒤집어도 재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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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앤 애프터
 

  그러나 그건 헛웃음을 지으며 하는 해석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고 나면 세 장면이 도통 지워지지 않는다. 처음 닉 위에 누운 채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에이미. 마지막에 똑같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는 에이미. 그녀가 피해자로 무사히 돌아오기 위해 다른 남자의 몸에 올라타 피칠갑을 한 모습. 정당방위라 하기엔 너무나 철두철미하게 급소를 그은 커터칼과 처음부터 와인색인 것마냥 피로 깊게 젖어 달라붙은 흰 슬립. 그녀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던 그 남자에겐 황홀함과 함께 찾아오는 숨 막히는 충격적인 순간. 에이미가 두 번 닉을 살인자로 만들지 못하리란 법이 없다. 이제 신뢰는 0인 셈인데, 이쯤되면 역시 묻고 싶어진다. 흔하지 않은 부부 사이의 질문. 에이미, 무슨 생각해? 우리 어쩌다 이렇게 됐지? 우문이다. 에이미는 이제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생각한다. '나'를 찾았기 때문이다.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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