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텅 빈 자리를 채우는 비 – 연극 ‘스테디 레인’ [공연]

글 입력 2017.11.2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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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야, 아빠는 너를 지키기 위해 복수를 택했단다. 너를, 내 가족을 상처 입힌 악마를 잡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단다. 다른 아이보다는 네가 먼저였단다. 다른 사건들보다는 이 사건이 먼저였단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사건들을 크게 느꼈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아빠에게는 네가 우선이었단다. 그래서 아빠는 그렇게 행동했단다. 비를 맞으며 계속 움직였단다.
 
아이야, 아빠는 너를 지키기 위해 안정을 택했단다. 네가, 내 친구의 가족이 상처입었기에 그 상처를 보듬어주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단다. 나에게는 어느 것 하나 먼저였던 게 없었단다. 경찰로서 주목해야 할 사건이 있었고, 인간으로서 주목해야 할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그 때에는 아빠에게 네가 우선이었단다. 그래서 아빠는 그렇게 행동했단다. 비를 맞으며 잠시 멈춰있었단다.
 


내 마누라, 내 자식, 내 가족이야! – 대니
 
대니는 집착이 강한 남자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애착이라는 말보다는 집착이 어울리는 남자다. 그에게 ‘내 것’의 가치는 ‘내 것을 지킬 수 있는 나’로 승화된다. 자신의 소유를 지키는 것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으로 느꼈다. 진급이 계속 좌절되는 경찰로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는 약간의 범법을 용인하는 길을 택했다. 그 길이 가족의 안정과 가장으로서의 지위를 지켜줄 거라 생각했다.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자신의 삶을 ‘근사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이 비가 그쳤으면 좋겠어! – 조이
 
조이는 열의가 없는 남자다. 그에게는 지켜야할 것이 없었고, 어떤 것에도 집착을 보인 적이 없었다. 동시에 그것은 감정적으로 치우치지 않게 했기 때문에 원칙을 지키는 것, 수단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에 능했다. 불같이 화내며 사건에 매달리는 대니가 그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자, 이해하고 싶은 존재였는지 모르겠다. 범인 체포에 매달리는 친구 대신 친구의 가정을 돌보는 데 열중했다. 그 과정자체가 조이에게는 폭우와 같았을 것이다. 한 번도 느껴보지 않은 감정이 한 순간에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것 같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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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극 ‘스테디 레인’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두 친구 대니와 조이의 이야기다. 갑작스레 날아든 총알로 인해 아수라장이 된 대니의 가족을 대하는 두 가지 다른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같은 위협에 대해 대니는 분노했고, 조이는 슬퍼했다. 대니가 범인을 잡기 위해 악마를 닮아가는 동안, 조이는 대니의 가족을 안심시키며 과거의 대니를 닮아갔다. 대니가 조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근사한 삶’은 결국 조이의 삶으로 실현된다.
 
시나리오 자체가 워낙 좋았던 것도 있지만 2인극은 어김없이 그 매력 자체를 뽐냈다. 대니와 조이 자체만으로 흘러가는 연극은 두 남자의 대화만으로 수많은 배경, 인물, 사건을 오갔다. 눈 앞에는 두 남자 뿐이지만 머릿속에는 여러 장면들이 스쳤다. 관객에게 진술하는 듯한 화법은 그 효과를 더했다. 같은 장면의 두 시선, 같은 장소의 두 감정이 얽혀가며 많은 감상을 만들어냈다. 세찬 비가 그쳤을 때 무대에 남아있던 것은 텅 빈 의자 두 개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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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마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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