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어. 수능 성적표를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영화]

글 입력 2017.11.22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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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추천하는 영화들은 단지 수능 끝난 고3들만을 위한 영화가 아니다. ‘고3’과 ‘수능’이라는 단어 속에서 삶의 민낯을 마주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청소년들을 위해서 뽑아온 영화들이다. 수능이 주는 점수와 그 점수가 주는 대학이, 그 결과가 두렵고 이러한 제도에 반항심이 생기는, 하지만 어찌할 줄은 모르겠는 사람들을 위해서 생각해 본 영화들이다. 이불 속에서 숨어서 봐도 좋다. 내일 눈이 빨개진 채 일어나도 공부가 안 될 생각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잠시나마 웃었으면 좋겠고, 실컷 울었으면 좋겠고, 아니면 새벽 내내 뜬눈이어도 좋겠다. 어른들이 정한 기준을 자기도 모르게 넘어 설 정도로, 자기가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1.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나는 개를 훔쳤다. 완벽한 방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인생은 목표를 이룬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전세 500짜리 집에 사는 걸 목표로, 혹은 그 집에 생일파티를 하는 걸 목표로 산다는 게 어쩌면 끔찍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 대사 속 개가 이상하게 수능 점수로 들렸다. 주인공 소녀는 개를 훔쳐서 받은 사례금으로 전세 500짜리 집을 사서 성대한 생일파티를 열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완벽하다. 하지만 결말에 이를 즈음, 소녀는 그 삶을 ‘끔찍하다’라고 표현한다. 그 말 속에, 수능 점수를 최대한 잘 받기 위해 최대한 완벽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겹쳐졌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욕망으로 다른 사람의 소중한 무언가를 빼앗고도, 부끄러움을 깨닫기에 너무 멀리 와버린 건 아닐까, 발을 동동 굴렀던 것 같다.

 

2. 꿈의 제인

    


“저는 태어날 때부터 진실하지 않았어요.
그거 아세요? 저가 처음 배운 말은 거짓말이었대요. 
저는 영원히, 사랑받지 못할 거에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영화만으로는 치유되지 않는, 외로운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다. 주인공이 팸 몰래 페레로 로쉐 두 덩이를 입 속에 가득 넣고 오도독 오물 먹는 장면이 있다. ‘제인’은 꿈처럼 반짝이는 미러볼을 들고 가다 그 모습을 본다. 그리고 말한다. ‘너 그거 혼자 먹으려고 나와 있었던 거구나. 디게 치사한 얘네.’ 마치 우리의 생존방식에 대한 판단 같았다.
 
누가 그랬다. “너는 나 이외에는 사랑받는 데에 실패할 거야.” 하지만 틀렸다.
모두는 잠시동안이라도, 원래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받고 있다. 
놀랍게도. 당신의 생각은 틀렸어. 당신은 불행이야. 물론, 밤이 올 건 알고 있어. 하지만,
“뭐 그래도 괜찮아요. 오늘처럼 여러분들과 즐거운 날도 있으니까 말이에요.
어쩌다 이렇게 한 번 행복하면 됐죠.”
 
보고 나서 많은 생각들로 잠이 오지 않았던 것 같다. 노래가, 제인이 미러볼로 보여주는 색감이 좋았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속 주인공이 지은 잘못은 잘못을 빌어서 용서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아이의 주위에는 잘못을 사랑으로 감싸 안아 줄 수 있는 좋은 어른들이 있었다. 여유도 충분했다. 하지만 ‘꿈의 제인’ 속 주인공이 지은 잘못은 여유로운 동화가 아니다. 자기가 살기 위한 몸부림이자, 그 몸부림으로 인한 칼부림으로 소중한 사람이 죽어버린 것이다. 이런 사람은 어디로 가야 용서받을 수 있을까? 이런 사람도 행복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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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잘려 불행밖에 남지 않은 사람의 행복에 대한 가려움은, 수식받는 모든 형용사들이 거짓이었던 여자에게 왜 위로받을 수 있었을까? 왜 카라멜은 입 속에서 점점 녹아 사라질까. 왜 죄의식은 이렇게 달콤하며, 결국 그 앞에서는 위로도 없이, 덩그러니 홀로 남겨져 꿈을 꿀까?
    
 
 
3.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


   

“우리는 이 세계에서 살아가야만 하니까”

 
주제를 좀 바꿔보자. 학교는 작은 사회다. 그 속에서 벌어지는 권력 암투들은 지긋지긋하다. 그 속에서 각자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 이 것을 ‘일상’이라고 부른다. 이 때, 학교 최고로 군림하던 ‘키리시마’가 일주일 간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 일상이 깨진다. 깨진 일상 속에서, 각자는 스스로가 누구인지 모습을 나타나게 된다. 영화 속에서, “이왕이면 찍고 싶은 거 찍고 떨어지자. 그럼 후회도 안하겠지”라고 말하던 영화 동아리 부장(마에다 료야)의 모습에도, “이제 그만해”라고 하면서 울먹거리던 히로키의 모습에도,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괜히 얼쩡거리고 숨기던 관악부 동아리 부장(사와지마 아야)의 모습에도 공감할 수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이 내 모습을 조금씩 닮고 있었다. 이 말은 이 영화에는 나타나지 않은 키리시마였던 적은 없다는 말과 동의어일 것이다. 고도는 약속이라도 했지, 키리시마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진로계획서에 키리시마를 적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너도 누군가에게는 키리시마였을거야'라는 말이 위안되는 건 이 때문이다. 스스로도 모르게 인간이라는 이유로 이미 스스로의 욕망에 도착해 있었던 것처럼 꾸민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 마냥. 인간의 지위로서, 재능의 부족과 같은 조건들을 마법처럼 초월한다. 하지만 그건 인간의 본위에 대한 값싼 동정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을 보면, 채워지지 못할 욕망 같은 것을 좋게 생각하기에 우리는 욕심이 가득하지 않는가. 그런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싸워가는 것.' 뿐이라고 이 영화는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 세계에서 살 수 밖에 없'으므로.
 

 
4. 디태치먼트




“우린 실패했어요. 자신을 포함해 모두가
우울해지고 결국 실패한 거죠.”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는 마치 왕이냐, 하인이냐, 즉 ‘배역’에 따라 달라지는 ‘배우들’ 같은 모습을 보여 준다. 그 배역이 얼마나 공허하고, 외로운지에 대해 말하면서, 인간의 민낯을 보여준다. ‘디태치먼트’는 조금 다르다. 자신의 감정은 그들이 타인에게 행하는 애정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이는 사회 속의 우리가 배역을 넘어서서, 민낯인 채,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하더라도, 넘어야 할 산이 있음을 알려주는 듯하다. ‘디태치먼트’ 속 선생님인 헨리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하려 노력한다. 이를 통해 치유될 것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의 삶에 대한 처사는 실패한다.
 
실존은 손바닥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각자의 무기를 들어야 한다. ‘키리시마가 동아리 그만둔대’라는 영화는 그 무기에 따라 달라지는 사람들의 모습과, 무기를 손에서 놓을 경우 보이는 공허한 얼굴을 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나가야 하므로, 싸워나가야 한다, 라는 게 그 영화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디테치먼트에서는 조금 달라진다. 매일 벌어지는 싸움과도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그 손으로 무기가 아닌 타인의 몸을 안기로 결심할 경우, 그렇게 조금 다른 일상을 선택할 경우 우리는 행복해지고, 천국으로 가는가에 대한 물음을 이 영화는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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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라고 많은 철학자들은 물음을 던져 왔다. 그리고 여러 결론에 따르면 ‘사람들을 사랑하며 진정한 행복을 곱씹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결론에 따라간다고 천국에 갈 수 있을까? 만약 우리 모두가 무기를 내려놓고 평화 협정을 맺는다면, 그래서 서로를 안아주는 길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천국에 갈 수 있을까?

이 영화 속 주인공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불안한 인간은 그저 사랑할 수만 있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확정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화려하게 절망한다.
이는 자신의 한계에 부딪힌 인간의 모습이기도 한 것 같다. 그 절망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선택하는 모습까지도 말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는 한 인간의 얼굴로서 등장하는 배우들이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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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적인 절망에 놓인 사람들을 영원히 사랑하려 했던 한 여학생의 모습도 자꾸 생각났다. 그 여학생은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당신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요. 행복 말이에요. 나쁜 건 제가 다 먹을게요. 죽음, 불행 같은 거 말야.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영화들은 수능 끝난 기념 킬링타임용이 아니다. 삶을 단순하고 즐겁게만 억지로 봄으로써 잃어버리고 소외된 모든 소중한 것들을 쓰다듬을 시간이 사람마다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쓰다듬고 나서, 그 이후의 선택은 내가 책임져 줄 수 없다. 당신이 선택해야 한다.

영화가 무슨 힘이 있냐고 당신은 반문할지 모르겠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당신이 말하는 그 ‘선택’에 따라 산다고 해서, 무슨 영광을 얻고 무슨 행복을 얻겠는가? 나는 차라리 당신을 비웃고 다른 곳에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살련다, 하고.” 그것도 당신의 선택이다. 나는 그냥 안아주고 싶었을 뿐이다. 죄의식과 실존에 숨막혀 하고 있는 사람들을 안아주는 사람은 몇 없으니까.
왜 이걸 하냐고? 나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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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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