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클래식의 위대한 도전,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내한 공연 [공연]

글 입력 2017.11.17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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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2주 전 프리뷰를 쓰던 때부터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 막상 공연장에 도착하니 모든 좌석에서 최적화된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과학적으로 설계된 롯데 콘서트 홀에 처음 방문했다는 사실이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러시아 피아니스트의 공연을 본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성인이 된 후 네 번째로 관람하는 클래식 공연, 이 곳에서 나는 어떤 연주를 듣게 될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만이 있었다. 

 그리고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인 도입부가 시작되는 순간, 매번 들을 때마다 느꼈듯 무대 위에 하나의 세계가 창조되는 감동이 밀려들었다. 가브릴로프의 연주는 오케스트라의 흐름에 섞여 들어갈 때에는 부드럽다가도, 피아노가 강조되며 한 음씩 끊어 칠 때에는 피아노를 부술 듯 격렬하면서 절도가 있었다. 손을 크게 휘두를 뿐만 아니라 몸 전체를 들썩이며 연주하는 모습에서 연주에 대한 몰입과 열정이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흐트러지지 않고 미묘하게 박자를 약간 당겨 치는 듯한 곡의 느낌을 굉장히 잘 살려내었고, 음정은 얼마나 정확한지 그 날카로움에 감탄했다. 약간 고집스럽게 보이기도 했지만, 장인의 아우라를 내뿜는 안드레이 가브릴로프의 연주에 저절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공연을 보면서 느꼈던 가장 놀랐던 부분은 무엇보다 지휘와 연주를 동시에 한다는 점이었다. 그의 이번 내한 공연 소개마다 빠짐 없이 들어간 어구이기는 했지만, 생각만 하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굉장히 달랐다. 지휘자는 단원들이 연주하는 파트를 빠짐 없이 파악하고 있어야 하기에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중요하고 힘든 역할인데, 자신의 연주를 진행하며 그 사이로 지휘를 하는 것이다. 왜 ‘클래식의 위대한 도전’이라고 명명했는지 알 것 같았다. 확실히 강단과 자신의 연주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케스트라를 협연자에 맞추도록 이끄는 지휘자와, 협연자 그 자체.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가브릴로프는 그야말로 완벽한 지휘자이자 협연자라고 할 수 있었다. 그가 연주를 마치고 바로 지휘를 시작하는 것을 보자 전율이 일었다. 그야말로 천재적이라고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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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케스트라 또한 몇 년 만에 제대로 보는 실내악 오케스트라였는데, 그래서인지 더욱 감명 깊었다. 올해 클래식 공연을 두 번 보긴 했지만 모두 솔로이스츠 무대들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단원들이 동시에 연주하는 무대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각자 다른 소리가 모여 조화를 이루어 내는 모습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처음에는 가브릴로프의 페이스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었지만, 연주가 계속될수록 맞춰 가는 모습이 보였다. 솔로이스츠 무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악기들의 소리를 듣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음원을 들을 때는 잘 몰랐는데, 실제로 보니 팀파니라는 타악기가 굉장히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어느 악기든 그렇겠지만 특히 팀파니가 빠지면 절대로 이런 긴장감을 줄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를 체감한 것은 차이코프스키 연주곡 3악장에서였다. 사실 3악장은 처음에 기대했던 1악장보다도 인상 깊었다. 우선 저음에서 고음으로 갔다가 순식간에 다시 저음으로 빠르게 돌아오는 피아노 선율의 중독적인 패턴이 매력적이었지만, 이 뿐만이 아니었다. 관현악이 한꺼번에 몰아치며 만들어 낸 에너지 넘치는 선율과 긴장감 넘치는 피아노 선율과의 조화, 여기에 무엇보다도 팀파니의 강한 파동이 얹어져 비로소 곡 전체의 강약이 완성되는 느낌이었다. 모든 파트가 몰아치며 끝나는 마지막 부분에서는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졌다.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은 상대적으로 차이코프스키 협주곡보다는 덜 친숙했던 곡이었지만, 대가의 연주를 통해 이전에 몰랐던 매력을 알게 되었다. 1악장의 테마는 처음에 작은 원을 그리고, 다음에 더 큰 원을 그리듯이 여정을 거치고 돌아와 반복되었고, 그 여정을 이끄는 가브릴로프는 갈수록 화려해지는 테크닉으로 신비감을 더했다. 홀로 연주할 때의 그는 몇 십 명이 함께 연주할 때의 긴장감을 자신만의 존재감으로 이끌어 갔다. 끝까지 온 몸을 움직이는 열정적인 태도로 연주했고, 건반을 부술 것 같다고 느꼈던 힘을 유지하면서도 빠른 템포로 정확한 음정을 두드렸다.

 지휘와 연주를 번갈아 하는 그는 마치 주술사 같았다.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에서는 천지 창조의 힘을 받드는 샤먼과 같았고,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에서는 관객들을 환상으로 이끌며 자신도 곡의 정서에 빠져드는 것처럼 보였다. 두 곡 모두 훌륭했지만 개인적으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이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운’ 그의 세계에 더 잘 들어맞는 느낌이었다. 말로 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는 점에서,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감정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던 것 같다. 각자 받은 느낌이 다르겠지만 어떤 것이든, 서른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한 무대에서 아름다운 세계를 만드는 광경은 그 자체로 감동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꼭 다시 보고 싶은, 여운이 남는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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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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