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잘못된 과정을 단죄하는 < 이브의 모든 것 >(All About Eve, 1950) [영화]

여전히 유효하는 고전영화 속 세상을 다루는 방식
글 입력 2017.11.06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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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정당하다면 과정이 불합리해도 옹호받을 수 있는가?
 
최근 <알쓸신잡>에서 유시민 작가가 단종과 세조를 언급하며 던진 질문이다. 우리는 평소 단종에 감정 이입한 역사를 배워왔다. 어린 나이에 즉위하고 삼촌에게 숙청을 당한 것 말고 아무런 공적 없는 단종은 후대에게 지나간 귀양길까지 기억된다. 하지만 세조는 그가 세운 상당 수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저 조카를 죽인 왕으로만 기억된다. 세조의 입장에서는 외척과 온갖 세력에 휘둘릴 어린 왕이 나라를 이끌게 놔두느니 정당한 왕권을 회복하고자 했을 것이고, 실제로 즉위 이후 그러한 목적의식에 맞는 정치를 펼쳤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여러 신하들과 일가족, 단종까지 사지로 내모는 부정한 방식을 취한 게 문제였다. 후대는 그의 업적보다 '조카를 죽인 권력에 눈이 먼 왕', '정당하지 않은 왕'으로 더욱 크게 기억함으로서 잘못된 과정에 대한 일종의 단죄를 내렸다. 그가 아무리 합리적인 목적을 갖고 있었다 해도 말이다.


영화 <이브의 모든 것>(All About Eve, 1950)에서도 비슷한 결론을 내린다. 극작가의 아내이자 유명한 연극배우 마고의 절친한 친구인 카렌은 마고의 공연이 있던 저녁, 무대 뒤편에서 이브라는 여인을 만난다. 이브의 참한 용모와 진솔한 태도에 감명받은 카렌은 이브를 마고에게 소개해주고 이브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지나온 일들을 털어놓는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양조장에서의 생활, 남편이 전쟁터에서 전사한 얘기, 그리고 우연히 들른 샌프란시스코 극장에서 마고의 연극을 보고 뉴욕까지 쫓아온 얘기들. 이에 감명을 받은 마고는 그녀를 자신의 비서로 채용한다. 이브는 마고의 스케줄 관리부터 음식까지 그녀의 손발이 되어 열심히 일한다.(줄거리 출처: 네이버 영화) 마고의 곁에서 신뢰를 쌓으며 연극계의 주요 인사들과 친분을 맺은 이브는 마고의 대역을 맡는 기회를 얻어낸다. 이후 평론가 에디슨을 이용해 마고의 평판을 떨어뜨리고, 대역을 넘어 극작가 로이드의 새 연극의 주연까지 꿰찬다. 이 역할로 결국 연극계 최고의 상 ‘사라 시든 상’을 거머쥐며 그녀가 가장 원하던 스타의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난 관객은 그녀의 삶을 부러워하지도, 진정한 성공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게 된다. 스타라는 꿈 이외에는 그녀가 잃은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잘못된 방법을 선택한 이브를 영화는 간접적이고 우아하게 단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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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전지적 이브 시점

만약 이브의 모든 것이 이브의 입장에서 전개되었다면 우리가 그녀에게 갖는 감정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억척스러운 환경에서 연기에 대한 열정을 빛내고, 각종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끝내 연극계 최고의 상을 받는 클라이맥스에서는 울음을 터뜨리며 감동받지 않았을까. 이브의 시점에서 따라갔다면 관객은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며 응원해주지 않고는 못 배겼을 것이다. 그녀는 그만큼 치밀했으니까. 하지만 영화는 단 한 컷도 이브의 시선을 허락하지 않는다. 첫 장면부터 마지막까지 평론가 에디슨, 스타 배우 마고, 극작가의 아내인 카렌의 시선으로만 내레이션이 전개된다. 가장 옆에서 이브를 지켜보는 이들의 시점을 통해 착하고 순수한 줄만 알았던 이브의 껍질이 하나씩 벗겨진다. 우리가 처음 인식했던 이브의 선한 이미지와 괴리가 강해져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브의 모든 것은 알아도 이브의 모든 옹호는 철저히 배제되는 장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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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의 모든 거짓

반감의 장치는 또 있다. 이브의 입을 빌어 나왔던 이브의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점이다. 처음 마고 일행과의 만남에서 털어놓았던 과거사와 샌프란시스코에서 연극을 봤다던 얘기의 진실이 에디슨의 입을 빌어 드러난다. (내레이션의 시점들처럼 이브 본인이 아닌 철저히 타인을 통해 진실이 드러난다.) 그녀가 유부남과 불륜을 일삼다가 쫓겨난 미혼이라는 '진짜' 과거에 이르면 첫 장면의 순진한 얼굴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제멋대로지만 인간적인 매력의 마고와의 대비도 이브의 거짓된 삶을 부각시킨다. 히스테릭하고 거만한 스타 마고는 최소한 사랑 앞에서는 진심이었다. 그녀의 애인인 빌에게만큼은 배우가 아닌 올곧이 마고라는 여자 그 자체였다. 무대 밖에서도 연기가 필요한 연극계에서 그녀는 빌 덕분에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었고, 사랑을 통해 온화해지고 철든 인물로 거듭난다. 하지만 이브에게 사랑은 명성을 위한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마고의 애인 빌과 카렌의 남편인 로이드를 유혹했던 것도 그들이 연극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연출자와 극작가였기 때문이었지, 일말의 진심이나 낭만은 이브에게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이브가 마고 대신 무대에 오른 이후 마고를 저무는 해로 신랄하게 깎아내리는 에디슨의 비평이 나온다. 이브는 이때 마고의 비난에 동조하는 뉘앙스의 인터뷰를 한다. 이 사태에 가장 분노하고 있는 마고의 절친한 친구들, 로이스와 카렌을 찾아가 이브는 압박 질문에 당했을 뿐이라며 변명을 늘어놓는다. 그녀가 이미 척을 진 그들에게 고개를 숙인 이유는 오직 하나, 로이스의 새 연극 주연을 따내기 위해서다. 이처럼 가련함을 가장한 이브의 거짓말은 극 중반을 넘어 그녀의 실체를 알게 될수록 통하지 않는다. 가증스럽게만 보일 뿐이다. 그런 우리의 시선을 모를 이브는 가식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시상식에서 자신이 배신한 모든 인물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대범함을 보인다. 이렇게 마지막 카운트까지 맞고 나면 도저히 이 여자를 옹호할 구석을 찾을 수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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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가 되기 위해 교묘한 술수로 사람들을 짓밟고 끝내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브는 그것이 전부였다. 그 자리만이 남았다. 스타의 위치마저도 수많은 미래의 이브들과 싸우며 버텨야 할 것이다. 친구들도 떠나고, 에디슨에게 발목이 잡혀 진정한 사랑도 할 수 없는 공허한 인생이 되어버렸다. 연기와 명성에 대한 열정만큼은 순수하고 뜨거웠을지언정, 비겁한 방식으로 성취한 자리에 대한 죗값을 반쪽만 완성된 인생으로 되받는다. 서두에 던졌던 맨 첫 질문을 영화는 “No”라고 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브를 옹호하는 관객이 있다면 세조의 환생은 아닐까. 그 정도로 영화는 여지를 주지 않는다.



(이미지출처: Pinterest)


[윤단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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