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올해의 작가상 - 써니킴 [시각예술]

거리
글 입력 2017.11.08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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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조금 쌀쌀했지만 햇볕이 따뜻했던 날, 국립 현대미술관 서울관에 다녀왔다.

국립 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는 두 개가 있는데, 그중 아침부터 내 발길을 이끈 전시는 [올해의 작가상 2017]이다. 우승자 발표가 4주 정도 남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시점에서 4주 동안, 한 주에 하나씩 올해의 작가상 후보에 이름을 올린 써니킴, 백현진, 박경근, 송상희의 전시 리뷰를 작성하려고 한다.

도록의 내용을 빌리자면, 올해의 작가상은 올해 6회째를 맞이하는 수상제도로서, 한국현대미술을 대표할 역량 있는 작가를 전시하고 후원함으로써 한국 현대미술문화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마련되었다. 덧붙여, 오직 발표되지 않은 신작만을 전시할 수 있고, 작가가 기획부터 참여하기 때문에 4명의 작가의 개인전을 보는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선정된 작가는 작가로서의 명예는 물론 4천만 원의 지원금과 ‘올해의 작가상’ 전시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된다.

[거리]
예쁜 공주 옷을 입고 요술봉으로 ‘변신’을 외치고, 얼굴까지 가려지는 한 벌 수트를 입고 악당들을 물리치러 가는 어린 시절의 모습은 무언가 되기 위한 바람이었을까?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무의미하겠지만, 추측건대 그것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하나의 액션에 지나지 않았다. 요술봉에서 별빛이 나오지 않아도, 손목에서 거미줄이 나오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다. 

이렇듯 써니킴이 추구하는 ‘완벽한 이미지’는 오히려 완벽하지 않은 그 나름의 상황과 인식이 뒷받침되는, 안도감에서 비롯된다. 결핍되거나 잃어버린 기억에 대한 내러티브, 이것이 만들어내는 거리감은 과거와 현재, 존재와 허구, 결핍과 완벽함의 사이의 또 하나의 세계로 작가의 회화 소재가 된다. 

[밀고 당기기]
전시는 풍경(landscape), 구조(structure), 소녀들(girls), 총 세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세 곳 모두 조명을 쓰지 않아 햇살이 그대로 비춰 내려오는 공간으로, 작가가 조명을 설치하지 않기를 원했다고 한다. 정오에 들어선 전시장은 무던히 내리쬐는 빛이 무색하게 차분하고, 조금은 탁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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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풍경(landscape) : 소녀, 면 공간

첫 번째는 풍경이 있는 방이다.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눈길을 끄는 것은 등을 돌리고 있는 소녀의 모습(자줏빛 하늘 아래, 2017)이다. 소녀는 자줏빛 하늘 아래에서 교복을 입은 채로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소녀가 등을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소녀’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자 교복을 입고 있기 때문에 짐작할 뿐이다) 때문에 소녀는 생각하기에 따라 누구든 될 수 있는데, 이러한 특징이 관람객 자신의 시선을 소녀의 시선으로 이입하도록 만든다. 소녀의 시선을 따라 풍경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때 우리는 첫 번째 전시실에 들어왔음을 실감한다.

소녀의 시선을 따라 필자의 시선이 흘러간 곳엔, 흔하게 볼 수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한 풍경이 보인다. 익숙한 소재와 풍경이지만 어쩐지 그 속으로 이입되기에는 넘어설 수 없는 선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작품이 의도적으로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가까워지려고 하면 밀어내고 너무 멀리 있으면 당기는, 이 거리감은 써니킴의 작업 전반에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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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공간에서 느껴진 거리감은 작가의 표현 방식에 있다고 생각된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이 풍경은 ‘길을 잃었을 때 마주칠 수 있는 풍경들’이다. 숲속에서 길을 잃었다고 생각해보자. 아무런 기대나 의도 없이 길을 잃고 만나는 공간은 두렵고 무섭다. 거기에 스산하게 안개까지 껴 있다면, 그런 장면은 상상조차 하기가 싫다. 작가가 만들어낸 풍경이 그러했다. 차분했으나 조금은 으슥하고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곳처럼 보였다. 게다가 천장에서부터 내려오는 빛은 유리를 지나 벽을 타고 흐릿하게 번져 안개가 낀 듯 차분했다. 때문에 풍경에 완전하게 몰입하기보다는,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들었다. 그리고 이 거부감은 풍경에 이입되는 것을 방해하기에 이른다. 

한편, 캔버스에는 알 수 없는 일종의 면으로 된 공간이 한쪽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어떤 것은 땅처럼 보이고, 어떤 것은 공책처럼 보이고, 또 어떤 것은 그림이 아예 흰 면으로 잘린 것처럼 보였다. 분명한 것은 이것이 풍경의 일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즉, 풍경에 이질적인 요소를 대입함으로써 거리를 두도록 만드는 것이다. 즉, 풍경화라고 써 놓고, 풍경화가 아니라고 말하는 방식이다. 마치 캔버스 안의 존재를 의심하고 되묻는 듯하다. 이 질문은 작가가 관람객에게 던지는 질문이지만 작가 스스로에게 향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사실을 인식할 때쯤, 소녀의 시선을 따라 들어간 풍경의 세계 속 관람객의 시선은, 어느새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으로 밀려난다. 그리고 이 일련의 경험의 끝에 우리는 두 번째 공간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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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구조(structure) : 공간, 기둥, 회화의 확장, 소녀(영상), 거울

두 번째 공간에서 만난 구조물은 직전까지 본 풍경과 많이 닮았다. 푸른 빛이 감도는 초록 숲의 풍경과 그 아래로 보이는 회색 바위, 왼쪽에는 안쪽으로 꺾인 나무가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서있다. 구조물에도 앞서 나온 ‘소녀’와 같은 역할(끌어들이는)을 하는 것이 있다. 바로 공간 전면에 지나가는 두 개의 회색 기둥이다. 이 기둥들은 작품의 중간과 오른편에 세워져 있는데, 애매하게 관람객의 시선을 세로로 갈라놓는다. 사실 이것이 관람객의 시선에 큰 방해가 된다면 이것 역시 ‘거리 두기’의 일환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매우 일부분이기 때문에 오히려 정반대의 효과를 낳는다. 관람객들이 기둥에 가려진 부분을 상상하거나 몸을 움직임으로써 채워 넣게 되는 것이다. 가령 사각형의 한 변에 사과가 놓여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끊어진 선을 사각형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즉, 지금까지는 단순히 보는 차원의 감상이 이어졌다면, 기둥은 관람객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든다. 앞서 봤던 공간보다 직접적이고 힘있게 작품 속으로 관람객을 끌어당긴다. 그리고 이 때 구조물이 가지는 영역은 사각의 공간 밖으로 확장된다. 관람객이 구조의 일부가 되고, 어느새 회화의 연장선상에 있다. 회화에서 이입하고 탈출하는 과정을 겪었던 우리의 경험이 회색 기둥을 통해 구조물과 상호작용 하는 것이다.

더욱 직접적이고 강렬하게 다가와야 할 풍경은, 어쩐지 이전보다 격렬하게 거리감을 형성하려고 한다. 여기에도 작가의 ‘거리 두기’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영상과 거울이다. 먼저 영상에는 세 명의 소녀와 사각의 면이 나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흐릿하고 신비롭다. 마치 이것을 보여주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는 식이다. 또 직전과 다르게 소녀는 앞모습을 관람객들에게 보여준다. 처음 본 소녀와 반대로, 관람객의 상상을 제한하는 것이다. 이로써 소녀의 역할은 변화를 겪게 되는데, 비유하자면 첫 번째 공간에서의 소녀의 역할이 공간으로 초대하는 익명의 안내자 역할이었다면, 여기서 소녀의 역할은 거리를 두기 위해(정확하게는 이입을 막는) 만들어진 작가가 보낸 문지기가 된 것이다.

영상의 바로 밑에는 사각의 거울 역시 마찬가지로 ‘거리 두기’의 장치다. 거울은 주변의 상황과 어우러져 마치 샘처럼 보였다. 하지만 샘이라고 볼 수 없는 직선의 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자연과는 다소 이질적이다. 이러한 특징으로 미루어 앞서 언급했던 풍경에서 볼 수 있었던 ‘면 공간’의 역할을 구조물에서는 거울이 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정면에서 봤을 때 거울을 통해 비치는 모습 속에는 언제나 영상 속의 소녀가 걸쳐져 있었다. 이 때 거울은 일종의 도상(圖像)처럼 느껴진다. 즉 거울 속에 비치는 모습이 자신이 바라는 이상향의 모습이라는, ‘나르시스(narcissus)’ 적인 동시에, 접촉할 수 없음을 전재로 하는 관음(觀音)적 성격을 가지는 것이다. 그렇게 작품은 관람객과 다시 한 번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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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녀들(girls) : 성상

세 번째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다섯 명의 소녀들이다. 학생이라고 하기엔 조금 나이가 있어 보이는 각각의 인물은 행동이나 소품을 통해 각자의 특성을 드러낸다. 이 모습은 마치, 성경에 나오는 성상(Saint)의 모습 또는 신화 속에 나오는 여신의 모습처럼 묘사되어 성스러운 느낌마저 감돈다. 학생이 성인처럼 묘사되다니,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서 잠시 작가의 이야기를 보태자면, 작가는 중학교 2학년 때 갑작스럽게 이민을 가게 됐다. 적응하고 지냈지만, 작가에게 그 사건은 생각보다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때문에 성인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온 작가에게 한국에서 겪지 못한 고등학생 시절은 일종의 결핍이자 공백으로 남았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자신만 가지지 못하고 심지어 그것이 가질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결핍이나 부재를 넘어 상처나 트라우마로 자리 잡게 된다. 이 때 인간이 그것에 대하여 취하는 태도는 크게 대상을 우러르는 것과 거부하는 것으로 나뉜다. 작가는 전자의 경우로, 겪어보지 못한 고등학생 시절이 다시는 가질 수 없는 일종의 성스러운 경험이 되어버린 것이다. 때문에 5명의 여고생은 성인처럼 묘사되었다. 그리고 나이를 잃은 소녀가 됐다. 작가는 이것으로 자신의 상황과 바람을 표출한다. 그리고 작품과 관람객의 거리는 절정에 다다른다. 어쩌면 거리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멀어진다.

작가는 ‘완벽한 이미지’를 추구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완벽을 추구하는 이유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작가에게 ‘완벽함’은 끊임없이 추구할 수밖에 없으며 아무리 채워도 부족한 것이다. 완벽함과 부족함 사이의 거리감이다. 그렇다고 작가가 절망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하게 현실에 대해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위안이 된다. 회화는 그 거리감에 대한 표현이자 타협점이다. 그것도 아주 현실적인.

그림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것, 어쩌면 그것은 관람객들에게는 이상(理想)이었고 계속해서 그림 밖으로 내쫓기는 것은 현실이었다. 가까워졌다가도 계속해서 끝을 모르고 멀어지는 잔인한 아니, 어쩌면 당연한 거리감은 작가가 관람객에게 던지는 적나라한 현실이다. 누구나 가질 수 있고 또 가지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무조건적인 절망이나 거리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절대로 허무한 것도 아니다. 다만 끊임없이 그 속에 살아야 하고, 살게 되고 살아지는 것이다.

써니킴의 이번 전시는 끊임없는 밀어내기를 통해 현실과 이상 사이, 알 수 없는 거리감 사이를 부유하는 것 같다. 아주 좋지도, 그렇다고 나락으로 떨어지지도 않은 제3의 공간. 그 속에서는 어떠한 목적을 갖는 행위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저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이 공간이 작가가 이야기하는 [어둠에 뛰어들기]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둠은 현실이다. 그 어둠은 이미 뛰어들기 전부터 있었다. 다만 어둠에 뛰어들기는 그것을 좀 더 적나라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후에 비로소 느낀 어둠 속에서 완전한 어둠을 맞이하게 될지, 그 속에서 빛을 찾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빛을 찾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작가는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미 어둠에 뛰어드는 시도만으로도 위안이다. 요술봉에서 별빛이 나오지 않아도, 손목에서 거미줄이 나오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다.

 
[공정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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