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기억] #목마 #갑작스런 수영장 #밥 #매트리스

2017.10.10 8.
글 입력 2017.10.10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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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목마

방학을 제외하면 1년도 채 다니지 못했던
두 번째 초등학교의 마지막 날의 일이었습니다.

아빠처럼 엄하면서도
아이들을 마음으로 대해주셨던
우리의 담임 선생님께서는
언제나 청소를 일찍 마치고 오는 아이에게
특별히 목마를 태워주시곤 했습니다.

사실 청소를 하지 않은 누구라도
선생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태워달라 애교를 부리면
그의 목마를 타고
복도 한 바퀴를 위풍당당 돌 수 있었지만,
저는 언제나 그 모습만을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무섭다는 핑계로
선생님을 어려워하는 살갑지 못한
소심한 성격을 숨기는 것이었지요.

그날은 학교에서의 마지막 날이기에
더더욱 평소처럼 녹아 들고 싶어,
여느 때처럼 청소를 시작하기 위해
빗자루를 들고
막 복도를 나왔을 때였습니다.

청소시간이 시작되자마자
목마를 태워달라며 달려온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그는
오늘의 목마는 한 명뿐이라며
저를 번쩍 들어 목마를 태워주셨습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여기로 가달라, 저기로 가달라는 요청도
신이 나서 웃으며 발을 동동 구르는 일도 하지 않았지만,
헤어짐이 아쉬워
따스하게 건네는 말들을 경청하고 있었답니다.

그 동안 작은 부분들에서
아껴주셨다는 걸 잘 알았지요.

하지만 어리석은 어린 아이는
헤어짐의 순간에
감사의 말도, 다짐의 말도 없이
그저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네 네
뿐이었습니다.

선생님을 어려워하는
살갑지 못한 소심한 성격이라는 핑계로
눈물을 숨기는 것이었지요.





#34 갑작스런 수영장

아주 어렸을 적에
비가 많이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많이’의 기준이 무어냐 묻는다면
집에 물이 참방거릴 정도였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사실 어른들은
다 젖어버린 집안 살림에
한숨을 쉬며
물을 퍼내기 바빴지만,
아이는 혼자 신이 났지요.

집 안이 수영장이 된다는 것은
줄곧 상상만 해오던 일인데
하룻밤 사이에 진짜로 일어나다니!
반가울 따름이었습니다.

고작 발목을 조금 넘는 물이었지만
신나게 여기저기 튀기며 참방대던
그 순간이 다시 온다면
철 없이 다시금 참방 될 수 있을까요?
한숨 쉬며 물을 퍼내는 어른처럼 행동할까요?





#35 밥

저는 줄곧
밥 먹는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특히나 어릴 때에는
열심히 씹어 삼켜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귀찮고 번거롭게 느껴져
밥을 한 숟갈 먹으면
씹지 않고 입에 문채로 있곤 했답니다.

한 그릇을 먹는다면,
대부분의 밥들은 억지로 억지로 삼켜 넘긴 후
마지막으로 먹은 밥 한 숟갈은
꼭 입에 물고 있었어요.

어느 날은 아침밥을 물고
점심 때에 뱉어내곤 했으니까
참 지독하리만치 먹기 싫었던 듯 합니다.

모든 먹는 것이 싫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먹고 싶다며
달라고 했던 것은 뻥튀기로,
크게 한입 베어 물고 몇 번 씹지 않아도
금세 사라지는 것이 꽤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지요.

밥 대신 뻥튀기만 계속 먹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고집쟁이였던 저는
밥을 참 지독하리만치 먹지 않았고,
그때만 떠올리면 입안에 물고 있던
밥의 단맛이 느껴지곤 합니다.
앙 다문 입의 감각이 느껴지곤 합니다.





#36 매트리스

이 일도 밥을 먹기 싫어하던
그 나이 즈음에 있었던 일입니다.

수시로 집안의 가구를 옮겨
구조를 바꾸기를 좋아했던
저의 엄마는 그날은 침대를 옮기고자 하셨나 봅니다.

아주 커다란 매트리스를 세워,
방에서 밀고 나오던 그녀는
방을 벗어나자 마자 팔에 힘이 빠졌는지
무거운 매트리스에 깔리고 말았습니다.

폴짝 폴짝 뛰던 침대였기에
가벼울 줄 알았던 매트리스에
엄마가 깔린 상황이 너무나 당황스러워
어린 아이답게 으앙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지요.

하지만 아무리 슬프게 울어도
엄마는 매트리스 밑에서 나오지 못했어요.

이내 눈물을 그치고
그녀의 말에 따라서
전화기를 가져와서,
불러주는 번호를 누르고,
상황을 이야기하고 어른을 불러,
엄마를 빼내었습니다.

그 상황만이 만들어낸 결과는 아니겠지만,
이후로는 당황스러운 일이 생겨도 울지 않았습니다.
울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지요.







이미지 출처: 신지훈-정글짐 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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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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