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해크니의 사람들과 사당동의 사람들 [시각예술]

글 입력 2017.10.07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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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낮,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서 열린 줄리안 오피의 개인전에 다녀왔다. '줄리안 오피'의 이름은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의 작품들은 낯설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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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안 오피 개인전,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사람들의 모습을 단순하게 표현하여 아이콘처럼 나타낸 것은 그의 시그니쳐이다. 위 포스터 속 작품처럼, 이목구비도 그려져 있지 않은 얼굴의 사람들이 걷고 있는 모습의 작품은 도심에서 생각보다 흔하게 볼 수 있다. 그 특유의 단순성과 단색의 색채는 도심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음악 덕에 줄리안 오피를 알게 되었다. 바로 내가 좋아하는 밴드인 "blur"의 베스트 앨범 커버가 줄리안 오피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때는 줄리안 오피를 몰랐지만, 각각의 멤버들의 이목구비를 특징만 살린 채 단순화한 것, 그리고 각 멤버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배경 색깔이 들어간 앨범 커버는 참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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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브릿 팝 밴드 blur의 베스트 앨범 커버)





기대를 안고 갔던 전시회는 매우 좋았다. 전시회 요금은 어른 4000원, 청소년 2000원으로 저렴하지만, 5개의 전시실을 사용할 정도로 풍부한 전시회이다. 때때로 도슨트의 설명을 따라 전시를 훑을수도 있기에, 기회가 된다면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전시회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작품이 두 개 있다. 바로 '워킹 인 해크니(Walking in Hackney)'와 '워킹 인 사당동 인 더 레인(Walking in Sadangdong in the Rai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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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ing in Hackney, Julian Opie, 2017)


우선 '워킹 인 해크니'는 줄리안 오피가 사는 동네인 영국 '해크니'의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길을 걷는 사람들의 패션은 튀는 부분 없이 일반적이고, 핸드폰을 들거나 이어폰을 꽂은 사람도 없다.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도슨트의 설명대로, 이것이 점심시간에 잠시 휴식을 취하러 나온 사람들의 모습인지, 아니면 도심이 아닌 한적한 마을에서의 모습인지는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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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ing in Sadangdong in the Rain, Julian Opie, 2014)


'워킹 인 사당동 인 더 레인'은 비 오는 날, 사당동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이 또한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에서의 모습인지는 알 수 없지만, 위 해크니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사람들의 패션은 화려하고 개성 넘치며, 핸드폰을 들고 있거나 이어폰을 꽂고 있는 사람도 있다.

줄리안 오피는 '역동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역동적인 모습이 담겨 있는 이 작품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왠지 사당동의 모습보다 해크니의 모습이 더 좋아보였다.

얼핏 보면 지나갈 수 있는 점은, 바로 사당동의 모습은 비가 올 때라는 것이다. 물론 저 때의 비가 소나기인지, 아니면 장마와 같이 예고된 비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비가 오는 날씨임에도 사람들은 아름답고 화려한 모습을 하고 다닌다. 비 때문에 남들의 외모나 시선을 잘 신경 쓸 수 없는 데도, 사람들은 외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한편 해크니에서는, 사당동에 비해서 사람들의 패션이 별로 특별할 것 없다. 물론 외모에 대해 생각하겠지만, 사당동에 비해서 남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를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한 모습들이다.

또한 분위기에서도 차이가 있다. 사당동의 모습에서 몇몇은 전화를 하면서 걸어가고 있고, 비교적 보폭이 넓다. 다들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 느낌이며, 대체로 바쁜 분위기이다. 반면 해크니에서는 비교적 보폭이 넓지 않고, 무언가를 하면서 걸어가는 사람도 없다. 사당동에 비해서 덜 분주하고, 여유 있는 느낌이다.





아티스트가 이 두 작품을 같은 공간에 놓으면서, 무엇을 의도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해크니의 모습과 사당동의 모습을 같이 보면서, 우리에게도 해크니의 모습이 조금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에는 남들을 신경쓰지 않는 '마이페이스' 혹은 '마이웨이' 같은 단어들이 유행하고 있고, '여유'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2014년 사당동의 모습과 현재 도심 속 모습은 거의 차이가 없다. 여전히 분주하고 여유가 없으며, 그러면서도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라는 외관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실 사당동의 모습을 먼저 볼 때는, 분주하다던가 여유가 없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저 익숙한 모습이었고, 모두들 당연히 그렇게 살고 있다. 그렇지만 해크니의 모습을 본 후 사당동의 모습을 보니, 새삼 느껴지는 것이 달랐다. 익숙했던 모습이 순간 달라 보이는 것에 흠칫 놀랐을 정도이다. 우리도 그러한 바쁜 분위기 속에 살기에, 우리가 그런 모습인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도 그 분위기에 동화되어서, 우리에게 여유가 없는 지도 어느새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더 넓게 봐서,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남의 시선을 덜 신경 쓴다면 반대로 우리가 얼마나 바쁜 분위기 속에 있고 남을 신경 쓰는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해크니의 모습처럼, 그런 분위기가 필요하진 않을까.


[이현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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