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꾸짖음은 없었지만, 패배하진 않은 : 연극 < 트로이의 여인들 >

글 입력 2017.08.20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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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홍은영 작)을 기억하는가? 지금 20대 중반 정도의 나이라면, 흐릿하게나마 떠오를 것이다. (아, 19권부터 달라진 그림체의 충격 또한 같이 기억하고 있을지도) <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의 중추를 담당했던 에피소드는 단연 '트로이 전쟁'이었다. 약 8~9권 분량으로 그려진 트로이 전쟁은 그리스 군의 여정에서 시작해, 트로이 몰락 후 그리스 군의 귀환으로 끝맺는다. 파리스와 헬레네, 트로이 왕족들의 이야기도 중간 중간 에피소드화되지만, 트로이 전쟁 서사의 큰 골격은 그리스 군의 입장에서 침략-함락-귀환으로 이루어져있다. 아마 그리스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귀환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기억해도, 트로이 왕족들이 패전 이후 어떻게 살아갔는지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주지하다시피, 많은 대서사시들의 주인공은 트로이 전쟁의 승자였으니 말이다.

연극 < 트로이의 여인들 >은 2017년 이 시대에, 패전국 트로이의, 그것도 ‘전리품’으로 취급되었던 여인들을 무대 위로 불러 모은다. 솔직한 말로, 여성 수난사로 전쟁의 참혹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다지 특별한 스토리텔링은 아니다. 그러나 “침탈하고 능멸하라, 선 채로 꾸짖으리라!!”라는 작품 소개는, ‘피억압자의 신음’‘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의 존엄을 지켜나가려는 여성들의 단말마적 외침’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주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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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의 여인들, 2017년 무대에 오르다

 
몇 천 년 전 트로이로 관객을 이끌고 가기 위해 작품은 ‘해설자’를 먼저 내세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남자가 유머러스하게 트로이 전쟁의 배경과 경과를 설명하며, 자기 자신이 누군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퇴장한다. 관객은 이 남자의 이름은 모를지라도, 남자의 역할은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해설자’. 본격적인 극이 시작되기 전에 천여 년 전의 상황을 관객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장치로, 마치 변사(辯士)와 같다. 그러나 분명히 극에 포함되는 인물은 아니다. 자신의 정체도 모른다는 이 남자는 사전작업의 장치로서는 충분했을지언정, 연극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 되지 못한 채, 극 밖에서 표류한다. 효과적인 장치였냐고 묻는다면, 글쎄? 오히려 해설자의 속된 대사와, 이어지는 트로이 여인들의 비장한 정서 간의 괴리가 극의 몰입도를 떨어뜨렸다고 대답하겠다. 과유불급. 과한 친절이 극의 완성도를 저해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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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하게 친절한 남자의 동행으로, 트로이의 여인들은 무대 위로 오른다. 비슷한 연령대, 비슷한 의상의 여인들이 포복하여 신음한다. 패전국 트로이의 여인들은 이제 ‘어디로’ 가냐고 끊임없이 묻고, 이들이 ‘어디로’ 가는가가 차례로 밝혀지면서, 여인들은 비극을 노래한다. 다수의 여인들은 누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으나, 곧이어 트로이 왕족들의 이름이 호명되고 차례로 그들이 무대 앞으로 나선다. 무대 위로 올라온 트로이 여인들 중 트로이 왕족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춘다. 비극은 헤카베, 카산드라, 안드로마케라는 트로이 왕족을 중심으로 노래된다. 헤카베, 카산드라, 안드로마케의 비극은 뚜렷한 기승전결 없이, 이들의 찬란했던 과거와 가족을 잃은 슬픔, 전리품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통탄이 차례로 이어진다. 물론 코러스로 등장하는 평범한 트로이 여인들도 후에 이름이 읊어지며, 한 명씩 어디로 가게 되는지가 밝혀지지만, 이는 극 후반부에 등장하며 서사 속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는다.

 
 
피억압자의 목소리로 비극을 노래하다

 
트로이의 왕비 헤카베, 트로이의 공주 카산드라, 트로이의 왕자비 안드로마케의 비극은 조금씩 변주되며 이어진다. 왕비 헤카베는 조국을 망하게 한 오디세우스의 종이 되어야 하고, 진실을 말하는 공주 카산드라는 아가멤논의 첩이되어야 하며,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는 아들 아스티아낙스의 죽음을 수용하고 아킬레우스 아들의 첩이 되어야 한다. 이 비극을 감싸는 한 대의 콘트라베이스, 기타의 선율. 그리고 이 선율 위에서 이어지는 반복적인 노래와 멜로디는 비극적 정서를 더욱 고양시킨다.
     
왕비 헤카베는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다. 헤카베는 자신의 불행, 딸의 불행, 며느리와 손자의 불행, 불길에 타 없어지는 조국 트로이의 비극을 체념하고 또, 울부짖는다. 극은 헤카베를 중심으로 피억압자의 피 끓는 울분의 목소리로 비극을 노래한다. 연극 < 킬 미 나우 >에서 로빈 역으로 만났던 배우 이지현은 모든 것을 상실한 헤카베의 비극을 탁월하게 표현해낸다. 세련미가 넘쳤던 로빈과는 전혀 다른, 거칠고 파열된 목소리로 극의 중심에 배우 이지현의 헤카베가 꼿꼿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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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카베와 결부된 비극의 이야기 중, 카산드라 시퀀스의 연출은 특히 탁월하다. 카산드라는 미래를 예견하지만, 아무도 카산드라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는 캐릭터의 특이성을 연출은 극대화시킨다. 카산드라는 방언과 같이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내뱉고 동시에 그녀의 속마음은 코러스가 진술함으로써, 카산드라의 비극을 극적으로 표현해낸다.

 
 
꾸짖음은 없었지만, 패배하진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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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로이의 여인들 >은 비극적일 수밖에 없는 소재를 무겁고 엄중하게, 또 한편으론 유머러스하게, 긴장과 이완을 활용하여 완급조절을 한다. 여인들에게 행선지를 알리는 두 그리스 군은 어딘지 코믹하며, 숨 막히는 슬픔 속에 숨구멍을 틔어준다. 또한 비극의 시초로 지목되는 헬레네와 그의 전 남편 메넬라오스의 만남은 앞선 헤카베, 카산드라, 안드로마케와는 전혀 다른 정서로 이어진다. 마이크 앞에 선 헬레네와 메넬라오스의 대화는 엄중하다기보다는 어딘지 속되고, 하찮게 이어져 많은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앞선 세 여인의 비극에 익숙해져있던 관객은 어쩐지 결이 다른 헬레네 이야기에 낯섦을 느낀다. 슬픔이라는 하나의 정서로 매몰되지 않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완급 조절은 상당히 거칠다.
 
또한 헤카베, 카산드라, 안드로마케로 이어지는 비극 속 ‘꾸짖음’은 어디에 존재했는지 의문이다. 필자의 기대와 극의 방향성이 달랐던 것일까. ‘선 채로 꾸짖는’ 실존적인 트로이의 여인들은 만나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의 정서와 행동 양상은 체념에 가까웠다. 과거의 영광을 노래하고, 전쟁의 상처에 울부짖고, 적들에 의해 정해진 미래에 체념했다. ‘피억압자의 꾸짖음’으로 전쟁의 상처와 여성들의 실존적 대응을 표현해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보기 좋게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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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 비극에도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 실존적 인물을 보여주겠다는 목표를 일부라도 달성하게 했다. ‘어디로’는 그리스 군에 의해 정해졌지만, 타의에 의해 이끌려가는 액션이 아닌, 스스로 걸음을 옮기는 여인들의 모습. 특히 안드로마케는 자신의 아들을 직접 그리스 군에게 바치는데, 그녀 스스로의 판단과 선택에 의해 행동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문학 평론가 신형철이 “몰락은 패배이지만, 몰락의 선택은 패배가 아니다.”라고 말했듯이, 비록 세계가 종용한 선택일지라도, 스스로 몰락의 길로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은 패배라 부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트로이 여인들은 몰락을 선택하고 패배하지 않았다.

대서사시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던 트로이의 여인들은 2017년 무대 위로 주인공이 되어 올라왔다. '전리품'으로, 전쟁의 '잔여물'로 승자에 의해서 이야기되었던 트로이의 여인들은 스스로의 비극을 목놓아 노래하기 시작했다. 비록 목소리의 이음새가 다소 거칠고, 그 목소리 또한 꾸짖음 보다는 체념 조에 가깝긴 하지만, 결국 패배하진 않은 비극의 재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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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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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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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슬
    • 안녕하세요 전문 필진 박이슬입니다. 아트인사이트 문화초대로 다녀오셨나보군요! 시간이 안맞아서 가지 못했는데 에디터님 글로 조금이나마 접해서 좋습니다 :) 저도 어린시절 그리스로마신화(물론 바뀌기 전 그림체)를 엄청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여자보다는 언제나 신, 여자중에서는 여신 또는 남신과 연애관계를 맺는 여성들만 등장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던것 같습니다. 특히 트로이 전쟁에서 '여성'을 재조명했다는게 매우 흥미로운 연극이네요. '몰락을 선택하고 패배하지 않았다.'는 말이 와닿습니다. 이것 말고 그 당시 피해입은 여성들을 잘 표현하는 말이 없을 것 같네요. 최근 북서울 시립미술관에 <아시아 디바: 진심을 그대에게>라는 전시가 진행중인데, 이것도 비슷하게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여성들의 목소리를 재조명한 전시였습니다! 에디터님이 관심이 있으시면 이 연극의 연장선상으로 같이 관람해도 좋을 것 같아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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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깥
    • 2017.09.07 19: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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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슬피드백 감사합니다. 추천해주신 전시는 저도 관심이 가던 전시였는데, 말씀 들어보니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요새 특히나 역사 속 여성의 목소리를 재조명하고 재현하는 문화 컨텐츠들에 목마르던 차였는데 추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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