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토록 격정적인 애증의 산물이, < 아마데우스 > [영화]

그는 귀를 흔드는 소리 대신 소리없는 쓴웃음만 남겼다
글 입력 2017.08.2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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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인정하기는 민망하지만 질투가 많다. 대단한 삶을 살아온 것도 아닌데 나에겐 종종 라이벌이 있었다. 원해서 생긴 대결의 구도는 아니었다. 돌아보니 이미 구도가 잡혀있었고 우리는 좀 고상한 투전판처럼 티 나지 않게 신경 쓰고 있었다. 어차피 나의 실력을 키우고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았는데도 쉽지가 않았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순간을 돌이켜보면 주변 사람들도 꽤나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조각난 순간들이 기억나곤 한다. 때로 나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존재에게 바로 앞에 내가 있는데도 그 둘 중 내가 뒤로 밀렸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나는 너가 말하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 차마 말하지 않았다. 씁쓸하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여야만 했다. 때로는 라이벌인 당사자가 나에게 물어보러 오기도 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이 경쟁에서 내가 이겼는지, 본인이 이겼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과정이 어쨌든 어차피 1인자가 되지 않고서야 그 과정을 기억해주는 이는 거의 없을 테니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심정이었다. 지겨웠다. 어차피 나는 늘 2인자였으니까. 늘 바뀌는 라이벌 구도의 대상 말고도, 나는 언니들에게도 늘 2인자였다. 글쎄, 예를 들어볼까. 누가 그 기분을 겪어보지 않고 알 수 있을까.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100점 소식을 들고 집에 가며 나는 들떠있었다. 어떻게 100점을 받았다고 말할까. 잘 못 본 척하고 말할까, 아니면 들어갈 때부터 신나서 바로 이야기할까. 그런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100점을 맞았다고 이야기했을 때 내가 들은 말은 '언니들도 그 정도는 했어'였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나의 멋지고 아름다운 언니들. 덜렁거리는 실수가 많은 나에 비해 꼼꼼하게 실수가 없는 언니들. 내가 뭔가를 잘 해도 그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만들어버리는 언니들. 늘 벗어날 수 없는 2인자 같은 모습에 나는 내가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다. 불안했다. 있는 놈들이 더하다고 할까 봐 말을 못했지만 그 감질맛나는 순간에, 당락이 결정될 중요한 순간에 빈틈을 보여버린 나를, 그 실수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펑펑 울어버리고도 태연하게 또 금방 잊어버리고 또 실수를 해버리는 것 같아서. 한심했다. 책을 거의 머리 속에서 그림처럼 떠올릴 수 있을 만큼 공부했는데도 내가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나는 어떤 라이벌 구도에서도 완전히 압도하는 1인자는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배우는 것 자체가 즐거웠던 순간이 있었던 걸로 충분하다며 받아들일 뿐이었다.

  대학에 합격하는 순간에도 나는 그리 축하받지는 못했다. 언니들이 둘 다 같은 대학에 들어갔기에 나도 내심 그 대학을 가길 무척 바라고 있었지만 나는 다른 대학을 가게 되었다. 지금은 그 대학이 훨씬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초반엔 우울하기도 했다. 19년의 공부가 학벌로 정해진다는 건 참 씁쓸한 일이다. 실제로는 정말 좋은 곳임에도 부모님은 그 학교를 농담삼아 '똥통 학교'라고 놀리곤 했었다. 내 마음은 어떤지도 모르고. 그래, 언니들은 농담 삼아 자기는 그래도 상위 1%라고 말하곤 했었다. 그럼 난 한 5%쯤 되는 걸까, 하고 그냥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도 고등학교와는 다른 대학이라 좋았다. 웃기게도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첫 학기를 훨씬 불안한 2인자의 마음으로 보냈다. 좋은 고등학교를 나오고, 집안은 부유하고, 예쁘고 멋지고, 능력이 넘치는 친구들이 많았다. 아무도 라이벌 구도를 만들지 않는 시점이 되어서야 나는 이번만큼은 적어도 여태까지처럼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과정은 어리둥절하고 불안했지만 결과는 한 번도 받아보지 않았던 만큼 좋았다. 그때서야 나는 조금 2인자의 공포를 벗어버린 기분이었다. 그러나 허망하기도 했다. 결과가 나오고 보니 그렇게까지 전전긍긍할만한 것이었을까 의문이 들었다. 덕분에 대학까지 와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싶어 내려두었다. 1등이 아님에, A+가 아님에 연연하지 않도록. 20년 묵은 피곤함과 불안감은 좋은 채찍질도 아니었고 만성피로 같은 후유증만 남겼다. 더 이상 2인자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지 위한 또 다른 노력이었다. 그놈의 2인자. 나는 나를 왜 나 자신으로 더 아끼지 못했던 걸까. 알면서도 쉽지 않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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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장황한 이야기를 하냐고 묻는다면, 놀랍게도 그래서 나는 완전하진 않더라도 영화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르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실소가 터져 나온대도 그러려니 한다. 서울에 작은 우물에서 2인자같이 살았던 내가 음악의 본 고장인 비엔나에서 궁정악장까지 하고 모차르트와 함께 이름이 오르내리는 그를 이해할 수 있다니. 웃기는 이야기다. 그러나 실력이나 조건이 같지 않아도 마음속에 이글거리는 욕심과 질투는 비슷할 수 있다. 어쩌면 내가 능력에 비해 너무나 많은 것을 부러워하고 질투했다고 보면 이해가 빠를 수도 있겠다. 사실 아직도 나는 2인자라는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요즘의 나는 너무 평범의 극치인 것만 같다. 나는 차라리 멋진 2인자인 살리에리가 새롭게 부러울 때도 있다. 그는 적어도 이름을 남긴 자다. 아니다, 그깟 이름이 무에 대수냐. 아니, 아니다. 아무렴 대수고 말고.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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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등장부터 살리에리는 불안감을 조성하더니 대뜸 자해를 해서 병원에 실려갔다. 모차르트를 죽인 살인자라며 피투성이로 울부짖던 그였다. 맛이 간 사람처럼 앉아있더니 정신병동에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놓기 시작한다. 안타깝고 처연하기 짝이 없다. 자신의 음악은 전혀 알지 못하던 신부가 그의 인생의 라이벌인 모차르트의 곡은 기억하는 것을 보고. 잔인한 증명이다. 음악만큼 무엇보다 감각적으로, 육체적으로 느끼는 것이 없다. 혹자는 히트곡은 서두만 들어도 다르다고 하던데 부정할 수 없다. 그 한 끝이 없어서 그는 평생을 몸부림쳤다. 어쩌면 그는 실패한 음악가라는 걸 받아들이는 게 어려웠을지 모른다. 준수한 여러 곡을 쓴 음악가 대신 수많은 졸작에도 불구하고 한 곡만 사람들의 뇌리에 박히게 했다면 그는 지금처럼 괴로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살리에리가 질투가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음악을 시작하지도 못할 뻔했기에 음악을 하게 도와주신 신에게 무한히 감사를 보냈다. 정말 그는 재능과 노력을 겸비한 인재였고 궁정악장에 올라서 평온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왕에게선 이 시대 최고의 음악가라는 말도 들었다. 그러나 그토록 원하던 한 끝이 없었다. 예의 바른 그에 비해 너무나 제멋대로에 거만한 모차르트라는 작자에게서 그는 그가 한 번이라도 갖고 싶었던 신의 목소리, 신의 음악을 보고야 말았다. 그는 차라리 그걸 모르길 바랐던 것이다. 모르면 좋았을 걸, 갖지도 못할 걸 굳이 알게 해줘서 마음을 찢어놓은 신도, 그 신이 오롯이 재능을 준 모차르트도 함께 저주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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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신당한 기분이었다고 했다. 늘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안고 이따금 미지근한 물을 한 모금씩 먹으며 살던 이가 바로 옆에서 누군가 정말 맑고 시원한 물을 한 아름씩 안고 사는 걸 보면 열이 받지 않을까. 정말 내가 갖고 싶었던 모습, 능력을 보면 겉으로는 너무나 축하해주면서도 의문이 피어오를 때가 있지 않은가. 이 세상에서 나의 역할이나 위치가 있다면 무엇일까. 우리는 막상 노력으로 운명조차도 바꿀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굴레를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으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혹시 나의 역할은 스스로 빛나는 역할이 아니라 빛나는 누군가를 곁에서 축복만 해주는 역할은 아닌가. 또 결국은 정말 잘 하는 한 가지를 찾기 위해 우리는 일평생을 고민하고 헤매고 있진 않은가. 두루두루 어느 정도 잘 하는 것으론 성공할 수가 없다. 그냥 좋은 사람인 것은 부족하다. <위플래쉬>의 플레처 교수의 말은 인정하기 싫지만 부정할 수만은 없다. 어딘가는 한 가지 정말 특별한 것이 있지 않은 이상 우리는 모든 면에서 잊혀지기 십상이다. 고루고루 좋은 사람이고, 하나에 뛰어나지 않아도 모든 걸 열심히 하려고 했던 게 잘 사는 것인 줄 알았던 옛날 생각이 헛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왜 나를 둥글게 만드려고 했을까. 차라리 뾰족하게 두지. 사기당한 기분이다. 세상은 이따금 나오는 1인자와 동시다발적인 2인자들로 이뤄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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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리에리는 자신의 권력을 적극 활용해 모차르트의 앞길을 사사건건 방해했다. 안 좋은 소문을 흘려 제자도 받지 못하게 했고 그가 만든 수많은 작품을 몇 번 상연도 하지 못하게 했다. 앞에서는 그를 돕는 척, 자비로운 척하고 뒤에서는 그가 망해가는 모습을 즐겼다. 한쪽 구석자리에서 그의 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살리에리 본인이 쳐놓은 거미줄로 돈을 빌리러 다니고 몸이 상한 그를 방관했다. 어차피 내가 없는 말을 한 것도 아닌데, 모차르트는 원래 건방지고, 여자를 좋아하는 바람둥이에, 충분히 벌어도 씀씀이가 너무 커서 힘든 것이라 합리화하면서.

  신기한 점은 살리에리가 익명을 자처하면서 그의 집에 하녀로 가사도우미를 준 부분부터였다. 그는 모차르트를 죽이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지만 거짓말이다. 상황을 염탐하기 위해서라곤 해도 자기 돈과 시간을 쓰긴 쉽지 않다. 직접 익명으로 작곡을 부탁하기도 하고 역설적이게도 그는 본인이 망쳐놓은 모차르트를 다시 활동할 수 있게 돕고 있다. 그는 병 주고 약 주는 사람이다. 모차르트를, 신을 저주하고 증오하지만 역설적이게 그만큼 좋아하고 사랑한다. 그는 모차르트에게 수많은 거짓말을 했지만 작품에 대한 평가만큼은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정말 훌륭한 작품이라고 누차 말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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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모차르트는 어땠는가. 모차르트를 환영하려고 살리에르가 작곡한 곡을 바로 그 앞에서 마무리가 별로라면서 여러 사람 앞에서 변주해서 바꿨다. 또 그는 술집에서 파티를 하면서 살리에리의 흉내를 내면서 조롱했고 살리에리는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 철딱서니 없지만 독특한 웃음소리를 가진 모차르트라는 양반. 분명 모든 면이 인상 깊다. 음악도, 웃음소리도, 거만함도. 만약 모차르트가 상처 많고 열등감에 빠진, 누구보다 부러움 많은 살리에리를 조금 더 이해했다면 그 둘, 생각보다 좋은 벗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영화와는 달리 실제로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는 돈독한 사이었다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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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쯤 되면 왜 영화 제목이 <아마데우스>인지를 알 수 있다. 이 말은 모차르트의 풀 네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이름의 일부이자 필명이라고 한다. 동시에 본래 뜻은 '신의 은총'. 영화의 주인공이 살리에리인지, 모차르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느 시대나 라이벌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결국은 주인공은 신과 인간이다. 신이 내렸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음악, 그 은총을 온전히 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의 갈등이다. 살리에리조차 이제는 황당한 얼굴로 그의 이야기를 듣던 신부에게 자신은 '모든 평범한 자'의 대변인이며 그중에서 챔피언이라며, 평범한 자들의 죄를 사한다고 말한다. 정신병동에서 울려 퍼지는 평범한 자들의 챔피언 소리라니, 전혀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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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왜 그는 평범한 이들의 챔피언이면서 적인 신의 대변인에 가까운, 모차르트를 불행하게 만들고 기뻐하지 않는가? 애증이다. 사실은 그는 신을, 모차르트를 죽이고 싶던 게 아니라 그들의 사랑을 누구보다도 원하던 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가 정말 기뻤던 순간은 모차르트가 작업 중이던 < 레퀴엠 >을 아픈 그 대신 악보를 받아 적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모차르트는 그가 주장한 대로 머릿속에 모든 게 들어있었고, 아주 빠르게 살리에리에게 설명해주었다. 이따금 살리에리는 이해가 가지 않아서 멈칫했고 이해가 되었을 때는 그가 어떤 음악을 만들려 하는지 너무나 기뻐하면서 작성했다. 아픈 이를 두고 잔인하게 몰아붙인 것도 있었으나, 아마도 몰아붙이지 않았다면 그마저도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오죽하면 모차르트가, 당신이 내 음악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몰랐다고 혀를 내둘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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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리에리가 그 모든 체면을 내려놓고 진심이 되었을 때, 그는 그때서야 간접적으로나마 신의 은총 같은 곡을 가장 가까이서 접할 수 있었다. 몸싸움 하나 없는 영화에서 가장 역동적인 액션 같은 부분. 가장 긴박하고 가장 짜릿하고, 멋진 순간.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자신의 곡인 양 쓰겠다고 호기롭게 말했으나 기회가 있었다 해도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는 질투가 많을지언정 자신의 품위나 원칙을 버릴 사람은 아니다. 모차르트를 죽였다며 홀로 외친 35년간의 괴로움은 사실상 미수에 그친 그의 죄책감의 연장선이다. 살리에리의 사랑은 그를 사랑에 눈멀게 했다. 내가 갖지 못하니 아무도 갖지 못하겠다는 못된 마음으로 있는 힘껏 그를 괴롭히고 벼랑 끝에 서면 다시 그를 구하곤 했다. 영화 속의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망치기도, 구원하기도 하는 존재다. 그가 모차르트를 죽이는 데 많은 공조를 했지만 모차르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결국 본인 자신이다. 신의 은총이 음악에는 깃들지언정, 인간의 생애에 일일이 깃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물처럼 마셔대던 술, 물처럼 써대던 돈. 그러면서 몸을 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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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에리(좌)/모차르트(우)
 

  살리에리에겐 안된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는 오래도록 기억되고 있다. 모차르트의 음악만큼 누구에게나 기억되지는 못하지만, 인간적인 면모로. 자신보다 더 능력 있는 자를 동시대에 만났을 때 탄식했던 사람이 그 탄식 하나로 이렇게 애틋하고 비정한, 비틀어진 영혼으로 재탄생해서 길이길이 기억될 줄 누가 알았을까. 2인자 증후군이라는 '살리에리 증후군'으로. 사실은 모차르트의 아이들을 가르칠 만큼 그의 곁에서 누구보다 도움되는 친구였는데도. 참 못난 세상이다. 1등과 2등을 나누기 바쁜 짓도. 2인자는 늘 질투심에 불타는 연적처럼 그리는 것도. 솔직한 세상일 수도 있다. 살리에리도 모차르트랑 그랬대, 하면서 우리의 질투심을 보편적이고 익숙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픈.

  세상에는 늘 나보다 멋진, 나와는 다른 수많은 능력과 매력을 가진 사람이 넘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정말 부러운 순간, 부러운 사람은 정해져 있다. 어떤 이는 정말 잘 된 것 같아도 별로 부럽지가 않다. 그냥 멋지게 박수를 쳐줄 수가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렇다고 내가 부러운 사람이 없어지길 바라는 건 아니다. 그만큼 내가 멋지게 어깨를 견주고 내 실력대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가 다른 멋진 이와 함께 할 때 질투가 나듯이, 나는 그렇게 속좁게 인생의 많은 순간 내가 질투를 하고 있는 것뿐이다. 설령 살리에리의 기도대로 모차르트의 신의 은총 같은 재능을 대신 얻게 되었다 해도 그는 밀려드는 칭찬세례에 더 겁을 먹게 됐을지도 모른다. 그가 모차르트에게 한 것처럼 다른 이의 다른 능력으로 살리에리는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이 뭘 하건 결국은 늘 본인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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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 영화답게 3시간 내내 소리가 가득하다. 조각 같은 궁전, 나부끼는 가발과 화려한 복식에도 음악이 중심을 잡고 있다. 모차르트를 부르던 그의 아내의 '볼피'라는 소리가 떠오른다. 볼프강의 애칭처럼 볼피, 볼피, 하고 부르던 소리. 모차르트의 지문 같은 음악과 웃음소리. 그러나 살리에리에게서는 특유의 소리가 없다. 그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간, 소리없는 쓴웃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너무 많이 지어서 이제는 자연스러운 표정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은 그 얼굴의 주름.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나도 그의 얼굴에는 안타까운 사랑과 괴로운 속앓이의 흔적이 가득했다. 왜 신께서 그대에게 35년씩이나 데려가지 않고 괴롭게 했냐고 묻는다면, 살리에리에게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모차르트가 짧고 굵은 시간 소리를 남기고 사라진 대신, 그에게 모차르트가 가지지 못했던 더 많은 시간, 그를 세상에 기억하게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고. 귀를 흔드는 그만의 소리를 남기지 못한 건 바로 그 그 자신이라고. 그가 남긴 것은 그의 인생이 담긴, 쓴웃음이 만들어낸 얼굴이라고. 그의 격정적인 애증은 그의 몸에만 상흔을 남길뿐이었다.

  나는 바로 이 말을 쓰면서 나에게 너무 찔리고 있다. 살리에리에게만 할 소리가 아니다. 그만큼 오래 기억되지도 못하면서 습관이 된 양 씁쓸하게 올라가던 한쪽 입꼬리의 웃음이, 그와 마찬가지로 내 격정적인 애증의 끝이길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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