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능성의 불씨를 기록하다, < 덩케르크 > [영화]

글 입력 2017.07.30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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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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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외출하는 길에 탄 엘리베이터에서 어떤 커플의 대화를 들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전작에 비해 단지 더 자세히, 사실적으로 사건을 그려냈다는 것 말고는 별로 주목할 거리가 없다. 캐릭터가 구체적이지 않다. 영국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 같다. 엘리베이터가 지상에서 지하 3층으로 내려가는 동안 오간 짧은 대화로도 화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이틀 전 봤던 영화 < 덩케르크 >였다.

 생각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나는 영화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의견들의 반대쪽 입장에서 변호(?)하고 싶어졌다. 우선 딱히 주목할 것 없다는 평은 역대급 입체적인 연출을 무시하는 발언이다. 영화는 세 개의 타임라인으로 구성된다. 해변에서의 일주일, 바다에서의 하루, 하늘에서의 한 시간. 각자 다른 시간, 다른 위치에 놓여 있던 인물들과 사건은 후반부에서 하나의 시공간으로 모이며 정점을 찍는다. 일주일은 7일, 하루는 24시간. 이처럼 결이 다른 시간들을 번갈아 진행시키면서, 긴장감을 완벽하게 유지했다는 점에서 놀란 감독의 연출력에 감탄했다. < 인셉션 >에서부터 키워 왔던, 시간을 다루는 감각이 빛을 발하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영화를 좋아하지만 분석적으로 보는 편은 아닌데, 그런 나조차 정말 끝내주는 연출이라고 느낄 정도였다.

 내 생각이지만, 이런 연출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는 감독이 상황 자체를 그려내고자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영화에는 그리 많은 대사가 나오지 않는다. 특정 인물의 사연을 설명하는 데 치중하지도 않는다. 일련의 사건들은 덩케르크에서 수행된 철수 작전의 일부로서 그려질 뿐이다. 주축이 되는 인물들은 세 개의 타임라인을 진행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전쟁 상황에 일어났을 법한 일들을 겪으며 특별한 사연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이런 장치들을 통해 어느 시간의 깊이에도 빠지지 않고 균형 잡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사실 이들은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군인들, 민간인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즉 그들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었으며, 실제로 주인공이었다. 이 메시지는 현실로 나아가, 덩케르크에서 철수 작전에 참여했던 실존인물들과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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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덩케르크 >의 소재가 된 실화, “다이나모 작전”. 프랑스의 항구 도시 덩케르크에서 독일군에 포위되었던 대규모의 연합군을 성공적으로 구출해 냈던 사건. 독일이 진격을 멈춘 틈을 타 몇 십만 병력의 철수를 결정했던 정부의 결단력, 조국의 미래가 될 청년들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며 배를 이끌고 나온 민간인들, 극한의 상황에서도 생존의 의지를 버리지 않았던 군인들이 이루어 낸 합작이다. 이 작전의 성공으로 연합군은 반격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살아 남는 것이 곧 승리다”라는 표어에서 알 수 있듯, 패잔병에 대한 이례적인 태도로서 작전에 참여한 모두를 승리자로 치하할 수 있었던 사건이기도 하다. 영화 < 덩케르크 >의 시선은 이 놀라운 실화가 내포한 인류애적 가치를 비추고 있다. 생존을 위해 극한의 상황과 갈등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토미, 깁슨, 알렉스, 폭격 후유증에 시달리는 병사, 군인이었던 아들을 잃고도 배를 이끌고 전쟁터에 나선 도슨, 목숨 걸고 적 전투기를 격파한 콜린스와 파리어 모두가 “주연”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좀 더 확장된 차원에서 < 덩케르크 >는 전장에 있었던 모든 군인들, 수많은 민간인 선박들도 이 이야기의 주연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놀란 감독은 그 벅찬 사건을 재현하는 데 있어 다이나모 작전에 참여했던 이들 중 누구도 빠지지 않기를 바란 듯 하다. 극중 한 군인이 “망할 공군은 어디 있어?” 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작전 당시 해변에서는 멀리 떨어진 공중에서 적 전투기를 견제하는 공군의 모습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목숨 걸고 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군은 어디서 뭘 하고 있냐”는 비난이 일었다고 한다. 세 타임라인 중 한 축으로 공군의 공중 전투를 배치한 것은 당시 폄하되었던 공군들도 함께 승리를 만들었던 영웅이었음을 영화로나마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실제로 놀란은 한 인터뷰에서, “2차 세계대전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폭격기 조종사여서 어릴 적부터 당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었다.”고 밝혔다. 그에게 전투기 조종사가 잊을 수 없는 영웅의 이미지로 남았던 것처럼, 덩케르크의 영웅들은 영화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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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관점에서 언뜻 보면 이 영화가 영국인들을 위한 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약간의 영화적 과장과 더불어 그런 느낌이 없지는 않다. 국적이 다른 나도 ‘영국 뽕’에 맞은 것 같다고 느낄 정도이니, 영국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부심을 가질 역사일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영국의 애국 전설 정도로 치부되기에는 이 이야기가 가진 매력이 너무 아깝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고, 끝나고 나서야 숨을 깊게 들이쉴 수 있었다. 그 이유는 흡입력을 극대화하는 연출과 촬영 기술, 당시 사용되었던 전투기와 민간인 선박 등을 통한 철저한 사실성, 놀란 영화와 찰떡 호흡을 자랑하는 한스 짐머의 OST 등 여러 영화적 장치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 바탕에 깔린 의도는 관객마저도 덩케르크 철수 작전의 일부로 끌어들이며 역사의 한 부분이 되는 기분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실제로 전쟁의 현장에 깊게 빠져들었고 마침내 33만의 군인들을 구하는 결말에서는 환호하는 군인들과 함께 벅찬 감동을 느꼈다.

 물론 배경이 우리나라였다면, 소재가 한국의 역사였다면 나도 한국인으로서 ‘한국 뽕’에 취하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본질적인 면에서 사람들이 감동을 느끼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영화의 진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역사를 공유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나눌 수 있기에 그 감정에는 보편적인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를 ‘영국 뽕’이라고 평가하기에는 그 가치에 담긴 인류애가 너무 묵직하다. “생존이 곧 승리다”라는 표어, 패잔병들을 환영하며 맥주를 쥐어주는 사람들의 표정을 볼 때 우리는 실패한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인간의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다. 이 희망의 불꽃은 극장에서 나오면서 서서히 사그라들겠지만, 2017년의 대한민국도 꺼진 줄 알았던 이 불씨 위에 최초의 역사를 만들어 내지 않았던가. 또 언젠가 그 불씨 위에 다시 역사가 만들어질 것이기에 잊지 말아야 하는 가치를, < 덩케르크 >는 기록하고 있다.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놀란 감독 인터뷰 참고: 씨네플레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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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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