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한히 상상하라! 카림 라시드의 세계

글 입력 2017.07.0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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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전시가 열린 6월 30일. 한가람 미술관에 들어가니 입구 옆 크게 쓰인 문구가 눈에 띄었다. 카림 라시드의 확고한 디자인 철학이 담긴 글이었다.


“디자인은 인간을 진화시키고
더 아름답고 나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의 전시는 저 문구로 모두 설명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카림 라시드의 디자인 세계를 함축하고 있는 말이었다. 그는 아름다움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며, 우리가 일구어 놓은 세상을 미화시킴으로써 더 나은 현재에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카림 라시드에게 디자인은 현재 그 자체이다. 현재는 곧 지금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하므로 디자인은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다. 이처럼 분명한 우선순위는 아름다움조차 기능적 목적성을 갖추게 만든다. 그의 작품들은 부드러운 곡선이나 화려한 색상, 패턴 등 미적인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항상 기능성을 먼저 생각한 듯 하다. 전시장 곳곳의 작품들에는 어떻게 하면 더 아름답게, 더 낫게 만들지 고민한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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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낙 대규모 전시이기에 모든 작품들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을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인상 깊었던 작품들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우선 전시장에 들어가 몇 걸음만 걸으면 만날 수 있는 붉은색 의자가 있다. 다른 작품들처럼, 유선형의 몸체와 비비드한 색감을 가지고 있어 눈에 띈다. 스케치를 보기 전에는 편안해 보이는 넓은 의자라고 생각했는데, 의자 주변에 일거리들을 펼쳐 놓은 카림 라시드가 그려진 스케치를 보고 나니 어떤 상황에서는 굉장히 유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은 ‘넓은 공간’인 책상이나 바닥에 자료들을 펼쳐 놓는 경우가 많은데, 카림 라시드는 그 상황을 의자라는 새로운 형식의 가구에 통합해 버린 것이다. 디자이너가 발휘하는 상상력이란 이렇게 의외로 생각하기 어려운 발상의 전환으로 드러나는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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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카림 라시드의 스케치이다. 이 스케치들을 통해, 생각의 과정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같은 풍경을 봐도 그에게는 사물의 선과 색깔과 패턴이 보이는 듯 했다. 어김없이 부드러운 곡선과, 미래지향적인 패턴과, 비비드한 색깔이. 일상적인 풍경에 그것들을 입혀 놓으니 굉장히 특별해 보였다. 특히 다리를 묘사한 스케치들은 그 실제 장대한 스케일에도 불구하고 카림 라시드의 미니멀리즘적인 색채가 덧입혀져 작은 디자인 도안처럼 보였다. 그가 만드는 컵이나 의자 등 물건들에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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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케이프는 관객이 체험할 수 있다고 하기에 전시를 보기 전 가장 궁금했던 작품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나도 앉아 보기도 하고 누워 보기도 했다. 캐나다의 웅장한 자연 풍광을 설치물 형태로 옮겨 담았다고 하는데, 높은 산봉우리와 골짜기, 산맥 등을 형상화 하면서도 사람이 앉기 편한 구조로 만들어 냈다. 물론 제1의 목적이 의자가 아니기 때문에 의자처럼 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카림 라시드의 세계에 대한 인식, 세계관을 엿볼 수 있었다. 자연을 묘사한 이 스케이프처럼 그의 어떤 작품들은 종종 바닥이 이어져 있는데, 우리는 하나에서 시작했고, 곧 하나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그의 철학을 반영한 것처럼 보였다. 이 구조물 안에서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것처럼 세계에서도 그럴 것이라는 믿음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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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운뎃줄에 위치한 쓰레기통에는 긴 이야기가 있다. 카림 라시드에 대한 영상을 틀어 주는 전시장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던 영상에 그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아무도 디자인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던 투박한 “쓰레기통”이라는 물건에까지 디자인 철학을 담아 낸 카림 라시드의 사연이다. 그는 위대한 디자인이 꼭 비쌀 필요는 없다면서, 아무도 생각지 않았던 쓰레기통의 기능성을 몇 배로 끌어 올린다. 내부 바닥을 둥글게 만들고, 윗부분의 높이를 다르게 만들어 쓰레기가 바닥에 남지 않게 하고 쓰레기통 끝까지 채울 수 있도록 했다. 이 유선형 쓰레기통에서 시작된 고민은 거시적인 차원에까지 확대되어, 그의 디자인 철학을 견고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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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이 작품은 내가 가장 사고 싶다고 생각한 가구이다. 바로 보고는 무슨 용도인지 생각을 못했는데, 수납장 혹은 책꽂이로 쓸 수 있는 물건이었다. 무의식 중에 책꽂이는 마냥 네모나고 옆으로 크고 납작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렇게 돌려 가면서 볼 수 있게 만들면 작은 공간에 많은 책을 담을 수 있다. 디자인도 네모 책장보다는 훨씬 독특하다. 카림 라시드 특유의 비비드한 컬러와 곡선은 사물을 가리지 않는다. 책장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의 상상력이란 내가 짐작도 못할 정도로 뻗어 있다고 느꼈는데, 그 일상적이지 않은 상상의 영역이 일상생활이라는 게 놀랍다. 그가 말한, 이 전시의 제목인 “Design Yourself”란 다른 게 아니라 마음껏, 무한히, 아무 것에도 구애 받지 말고 상상하라는 게 아니었을까? 상상은 세상을 자기 식대로 디자인할 수 있는 가장 자유로운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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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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