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공.감.대] 공간06. 엄마의 영원한 나라, 쌍율

글 입력 2017.07.04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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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영원한 나라, 쌍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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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나는 동생과 함께 엄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좋아했다. 심부름을 하지 않아 외할머니에게 호되게 혼난 경험들처럼 가족들과 얽힌 소소한 이야기, 비극적인 역사와 가정사로 미쳐버리거나 마을을 떠나야 했던 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 종종 출몰하던 무서운 귀신 이야기 등등. 아직도 머릿속에서 생생한 걸 보면 우리 엄마는 정말 훌륭한 이야기꾼이다. 그래서 엄마의 고향을 방문할 때면 꼬마였던 내 눈 앞으로 그녀가 알려준 것들이 굼실대며 실감나게 펼쳐지곤 했다.


으으, 이 다리를 건널 때 저승사자가 있었다고 그랬는데!
이 많은 빈집들이 다 슬픈 사연이 있는 걸까?


  그 나이 때, 엄마의 고향 쌍율마을을 방문한다는 것은 도시아이였던 내겐 전설적이고 아득한 곳으로 들어서는 묘한 체험이었다. 집안 행사 혹은 명절날에나 이따금 찾아가는 게 전부라 외가댁이 있다는 것 말고는 언제나 낯설었던 곳이기도 하고. 뭐, 그 정도. 꿈결 같고 아득하고 동화 같은. 머리가 커가면서는 그런 정도의 감수성마저도 퇴색하여 어느 정도 밋밋해진 감도 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전라남도 순천시 외서면에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인 쌍율을 방문할 때마다 엄마의 고향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고향이라니. 우리 세대에겐 그런 근원적이고 원형적인 그리움이 존재할까? 내겐 그리워할 집은 있지만 그리워할 고향의 모습은 딱히 선명하지 않다. 그저 인상주의 그림처럼 빛나고 흔들리는 어린 시절 정도가 있을 뿐이지. 도시에서 태어났고 도시에서 성장했고 적어도 몇 년 간은 계속 도시생활이 예정된 나. 어쩌면 엄마에게서 고향집 가는 기분은 내가 가끔 서울 자취방에서 광주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느끼는 것보다 더 특별할 것이다. 몇 십만 명이 모여 사는 대도시에서 시골로의 이동. 그것은 ‘이곳’과 ‘저곳’이라는 굉장히 단절적인 느낌을 배로 안겨준다. 생의 오랜 시간을, 그것도 생의 가장 첫머리라는 특별한 시간을 살았던 곳이 이젠 어쩌다가 방문하는, 도시적인 삶 저 뒤편으로 밀려난 다른 차원의 공간이 된 것이다. 그런 ‘고향’을 돌아와 방문한다는 것.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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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학을 맞아, 오랜만에 방문한 쌍율마을은 여전했다. 여름의 시골답게 무덥고 푸르고 조용하다. 누군가는 여전히 이웃이고, 누군가는 죽어 없고, 누군가는 암에 걸려 잠시 집을 비웠고, 누군가의 개는 언제나 그랬듯 왕왕 짖어대고. 누군가의 텃밭에선 고구마 줄기가 자라난다. 이젠 노인들만 남은 마을이지만 눈이 먹먹해질 정도로 짙은 녹음이 가득하다. 쌍율은 푸르렀다. 논밭과 산. 600년이 넘었다고 전해지는 당산나무들. 모두가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르고 사는 존재들 같았지만 이 푸른 땅과 하늘을 망연히 보고 있자면 정말 여기선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 줄 몰라도 될 것도 같다.

  외가댁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하얀 개 흥구가 짖고 외할머니가 반갑게 맞이해주신다. 재작년 외할아버지가 폐암 투병 끝에 돌아가시고 당신은 홀로 남았다. 그러나 그녀는 자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두 분이 살던 집에 남아 여전히 작은 농사를 지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신다. 매일 왔다갔다 사람이 오가는 낡은 마룻바닥, 한쪽 벽면에 무심하게 걸려있는 농기구, 장화와 고무신 등이 흐트러져 있는 디딤돌. 그 가운데 아직 외할아버지의 흔적이 있는 것만 같고.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이 모든 중첩된, 겹겹의, 뒤엉킨, 한결같은 ‘사람’의 것들이 마치 ‘고향’을 완성시키는 퍼즐 조각들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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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집에 오면, 이렇게나 배불러서 가네.” 잘 익은 참외를 베어 물며 엄마가 말한다. "그랴." 외할머니가 웃는다. 몇 마디 담소를 나누면 언제나 그렇듯 다시 떠나야 할 시간은 온다. 외할머니는 딸래미에게 챙겨줄 것들을 싸기 위해 분주해지셨다. 향이 그윽해 국에 넣기 좋은 방앗잎, 살얼음이 얼어 시원한 열무김치, 여러 종류의 콩, 시장에서 장 봐온 조기 생선 등. 뭘 어떻게 보관하면 좋은지, 뭘 어떻게 만들어 먹으면 맛있는지 하나하나 알려주시는 것을 엄마는 끄덕이며 듣는다. 나에게서 엄마는 나를 낳아준, 나를 있게 한 가장 근원적인 존재인데 그녀에게도 고향이 있고, 그 고향에 ‘엄마’가 있다. 그 ‘엄마’는 쌍율에서 여전히 똑같이, 똑같은 차림으로, 똑같은 일을 하며 살고 계신다. 그래, 내 외할머니는 그토록 두터운 삶을 살고 계신다. 그런 삶에 대한 기억이 누군가에겐 ‘영원’이 되나보다. 내 엄마가 영원히 내 엄마이듯, 엄마의 엄마 역시 그리고 그녀들의 고향 역시 그런건가보다. ‘고향’이 무엇인지 얼핏 알 것 같기도.
  
  우리는 그렇게 이어지는 존재다. 기억으로. 너무나도 아득한 실로 배꼽과 배꼽이 연결된 존재들. 그것들의 고향.

  쌍율 마을을 빠져나온다. 다시 엄마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넘어간다. 600년 된 당산나무는 모든 찰나의 만남과 이별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많은 경우 고향을 찾는다고 한다. 몸이 아파 움직이는 게 불가능한 순간에도 말이다. 내 외할아버지도 그러셨다. 눈물을 그친 엄마의 코끝이 여전히 빨갛다. 처음으로, 함께 기억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엄마의 영원한 나라, 쌍율. 나는 언제나 도시 이방인이었지만 그녀들이 살았던 곳을 두 눈에 가득 담고 싶어진다. 엄마와의 현재, 엄마와의 미래 뿐 아니라 그녀의 과거와 그녀의 기억까지 모두. 흘러 들어오는 강한 ‘고향’의 물결이 너무 아득하고 버거웠지만 그래도, 잇고 싶다. 내게도 아름다울 나라, 쌍율.




[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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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Hoolo
    • 순천에서 나고 자랐는데도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는 지는 몰랐네요!
      평생 시골에서만 살다 서울로 와서 크게 잃어버린 게 있다면, 밤산책이에요.
      서울은 밤에 한적하게 걸을 만한 곳이 별로 없어서.. 생각없이 걷다보면 쿵쿵 부딪치더라고요
      위험하기도 하고..

      글을 읽다보니 고딩 때 친구들이랑 학교에서 몰래 여름밤에 수박 먹던 기억도 나고,
      선생님한테 들켜서 한 조각 드리던 기억도 나고
      완벽하진 않았지만 행복했던 곳이었죠..

      서울에 올라오니 평생 도시에서만 큰 친구들이 많은데,
      걔네는 제가 고딩 때 얘기만 하면 신기하게 생각하더라고요!!
      고향이라는 게 뭔지 모르는 것처럼..

      덕분에 친구들을 더 이해할 수 있었어요.. 한 번 초대 해야겠네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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