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블루베리와 크랜베리 사이에서 [문학]

블루베리와 크랜베리 사이에서 그 사이만큼만 사랑하고 즐겨요
글 입력 2017.06.30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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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베리와 크랜베리 사이에서


_ 블루베리와 크랜베리 사이에서
그 사이만큼만 사랑하고 즐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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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무리 크랜베리보다 블루베리를 더 좋아해도 당신은 내 취향이 아니야, 라고 말한 적 한 번도 없듯이 나는 사람들의 취향이 제각각인 게 참 좋아요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 무너진 세상을 견디고 이 확신 없는 세상을 참아내겠어요 나는 취향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것 중 가장 아름다운 방어벽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비극도 환상으로 무마할 수 있고 감쪽같이 숨길 수 있는
 
그러니 우리 아무 말 말고 블루베리와 크랜베리 사이에서 그 사이만큼만 서로를 사랑하고 즐겨요
  
잘 익어가는 블루베리와 크랜베리 사이에서 마음놓고 우리들 취향대로 아주 작은 왕국을 만들어요 두 켤레 신발이 뜨거운 햇볕 아래 반짝이는!
 
김상미,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中 「블루베리와 크랜베리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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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언제나 그러했듯 앞으로도 영원토록 난해한 수수께끼일 것이다. 그를 잘 알아보려 해도, 그 마음을 헤아리기는 어려운 지문을 해독하는 것만 같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한 줄들은 처음 듣는 외국어 같고,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으면 어쩐지 그와 나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듯하다. 그래서 난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알아보려고 얼마나 무던히 애를 쓰는지 모른다. 그가 좋아하는 것들, 그러니까 그가 즐겨 찾는 것. 즐겨 먹는 음식, 즐겨 듣는 노래, 또 보고 또 보는 영화, 매일같이 입는 옷. 그런 것들을 눈여겨 봐 두었다가 언제고 그의 취향들과 만날 때면 반가운 마음으로 하나씩 내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러니까 나도 그의 취향 중 하나가 되고 싶은 마음일지도.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방어벽이라는 취향, 그는 어떤 아름다운 방어벽 뒤에 숨어있을까. 어떤 아름다움이 그를 보호하고 있을까. 내가 그의 취향이 되어 그가 내 곁에 숨을 수 있도록 난 그의 취향이 되고 싶다. 크랜베리보다 블루베리를 더 좋아하는 그에게 단 한 번도 내 취향이 아니야, 라고 말하지 않으며 난 그저 그의 취향들을 묵묵히 바라볼 뿐이다.
 
가끔은 그가 그의 방어벽 뒤에 숨어버리고 난 나의 방어벽을 찾아 걸어가야 할 때 그 사이 거리만큼 온통 마음이 흔들리고 무너져 내리지만 사실 난 알고 있다. 이 무너져 내리는 세상에서 우리의 마음은 결코 무너지지 않고 서로의 곁으로 비틀대며 걸어가고 있는 중이라는 걸. 크랜베리와 블루베리 그 둘의 사이에서만 발생하는 애틋함으로 우린 무너져 내리는 세상에서 둘만의 방어벽을 쌓으러 서로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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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블루베리와 크랜베리 사이의 거리만큼, 그 사이에서만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서로가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방어벽을 쌓고, 비극을 환상으로, 무너지는 세상 속 무너지지 않는 마음으로.





사진 출처, 인스타그램 zzee_wonn


[양나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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