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류인, < 경계와 사이 > [시각예술]

확신을 거부한 조각가
글 입력 2017.06.30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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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난 작년 이맘때쯤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보았던 류인 개인전을 소개하고자 한다. <경계와 사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전시는 삶과 죽음, 개인적 인간과 사회적 인간 사이의 실존적 경계와 조각과 설치라는 매체의 경계 속에서 자리했던 ‘경계적 인물’로서 류인을 주목하고 있다. 류인은 권진규의 리얼리즘 계보를 잇는 구상조각가로 권진규가 흙을 통해 인물상에 생명을 불어넣었다면, 그의 흙은 자신의 강한 자의식을 드러내는 표현의 수단이자 더 나아가 당시 시대의 목소리를 반영하고자한 의지의 표식이었다. 또한 류인 역시 인간을 주 소재로 삼았지만 형상을 분절하거나 왜곡하고 마치 빚다만 인간상처럼 표현하면서 해체와 표현주의적 재구성을 거듭했다. 이 전시는 사회적으로 규정된 경계, 그 사이를 사유하고자한 작가의 특성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그의 후기 작업들을 전시하면서 그가 어떤 경계 속에서 고민했으며, 그 사이를 어떻게 점유했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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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2층에 올라가면 보이는 <사인Ⅰ>은 인물의 옆얼굴을 묘사 한 것 같지만 앞면은 얼굴을 옆으로 압축한 것처럼 표현하여 매우 비현실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그렇다하여 옆면이 완전히 온전한 것은 아니다. 얼굴의 뒷부분은 생략되고 마치 생선의 지느러미같이 ‘길쭉한’ 것이 얼굴 뒷면에 위치하여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처럼 그는 인물의 형상을 왜곡시키면서 대상의 연상 역시 모호하게 하고 있다. 앞모습과 옆모습에서 다른 시각적 경험을 하도록 만들진 이 작품은 관자가 조각을 특정 대상으로 인식하거나 확신하고자 하는 노력을 무산시킨다. 작가는 얼굴의 형태를 왜곡시키고 익숙하지 않은 형상을 만들어내면서 얼굴의 형태를 하고 있으나 결코 얼굴일 수 있으며, 무엇이라 단정 지을 수 없는 ‘애매한’ 대상을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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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층에서는 특히 나무와 흙의 조화가 도드라지는 작품들이 주로 전시되었다. 이 공간에서 가장 앞부분에 놓인 <작명미상>의 작품은 조각을 증명해주는 좌대와 조각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나무와 흙으로 조각된 형태가 나무판에 의해 구분되면서도 마치 이 나무판을 관통하여 나무와 흙이 하나가 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좌대는 대상이 예술적 기물로서 가치를 가지게 해주는 일종의 장치로 공간과 작품을 구분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작가는 이런 좌대 역시 자신의 작품의 일부로 인식하고 이 나무상자를 흙으로 나무와 연결하고 있다. 이는 조각과 일반 사물, 공간과 조각 간의 경계, 예술품과 대중 간의 심리적 거리감 등을 모두 무너뜨리고자 하는 노력으로 보인다. 또한 나무기둥의 일부와 작가가 흙으로 빚은 형태를 조합하면서 자연과 인위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있으며 이 흙으로 빚어진 형태는 인간의 신체를 연상시키면서도 자연목처럼 보이도록 표현해 그것의 정체에 대해 혼돈을 주어 어떠한 확신도 가질 수 없는 상태를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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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에서 가장 시선을 끌었던 작품은 몸 한 가운데에 나무가 관통한 듯한 조각품이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지하실에 이 작업을 매달아 놓고 흙과 나무 등을 작업실에 갖다 놓고 작업을 하다가 도중에 세상을 떠나 미완성된 것으로 개인적으로 그의 예술혼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인간인지 나무인지 알 수 없는 이 형상은 마치 나무로 깎아진 것 같지만 사실 상체는 흙으로 빚어진 것이다. 그의 후기 때 작업들은 대부분 인간을 흙으로 빚었는데 이는 그가 흙이라는 재료가 자신이 원하는 형태를 구현하는데 가장 적합하다 여겨서 일수도 있지만, 결국 인간은 흙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인간의 육체를 흙으로 빚은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혹여 그러한 의도가 아니라 해도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사고가 강하게 드러난다. 사람의 육체는 가루가 되어 흙으로 스며들고 이는 양분이 되어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킨다. 이런 연결고리처럼 그의 작품 속,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 역시 나무라는 자연의 일부로 변하고 있으며 그 밑에 깔려있는 흙은 마치 그 조각 속 인간이 누워질 혹은 심어질 자리와 같다. 이 인물상은 몸에 나무가 관통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저항도 느껴지지 않고 표정 역시 아무런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임종에 가까워진 작가 자신이 죽음의 고통이 밀려옴에도 불구하고 겸허히 자연의 순리에 따르겠다고 자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작업은 모든 인간의 죽음을 아우를 수 있는 도상이지만 결국 작가 개인의 상황 속에 기인한다. 그는 흙과 나무를 조합하고 이를 쇠사슬로 묶어 천장에 매달면서 조각도 아닌 설치도 아닌 기물이 되었으며, 완전한 구상도 완전한 추상에도 치우치지 않은 불확실한 형상을 완성했다.


류인은 흙이 곧 자신의 작업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말했다. 또한, 흙이 자신의 삶의 자유이자 돌파구라고 밝혔다. 즉, 그에게 흙은 자신의 생각을 가장 잘 드러내줄 수 있는 매체였으며,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자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활동하던 1980년대는 추상작업과 설치미술가 주도하던 시기로 흙은 당시 구식의 재료라고 치부되었다. 이러한 시대상황 속에서 그는 흙과 구상에 매료된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리얼리티적인 조각을 완성시키고자 한 것이 아니라 자연목, 철근, 돌, 시멘트, 하수구 뚜껑, 뼈다귀 등을 흙과 결합하여 조각과 오브제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구상과 추상 사이에 자리하는 독특한 형태들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그는 현대조각이라 해서 과거의 것을 완전히 제거하고 외국의 형식만을 추종하거나 집단적 미학의 논리에 쉽게 빠지지 않고 전통조각과 현대조각 그 사이에 놓인 자신의 환경을 작업으로 그대로 드러냈다. 자신의 감성이 그대로 나타나는 이 조각들은 80년대 독재체제에서의 사회적인 압박에 대한 개인의 고통으로도 이어지면서 자연스레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사회적인 미술로도 연결되었다. 이러한 경계와 사이를 보여주는 작업은 당시 일체화된 현대미술 추구와도 당연히 구별되는 작업이었으며, 정치적인 색을 완전히 지워버린 형식들이나 국가에 의해 전통을 연상하도록 강요된 작품들과도 구분되는 힘 있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작가 자신의 강한 자의식과 당시의 어두운 환경이 짙게 반영된 그의 작품은 비평가 조은정의 “극한의 인간상이자 실존의 조각”이라는 말로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김휘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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