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초여름 밤의 꿈 < Opera with Jazz >

글 입력 2017.06.29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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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은 노블 아트 재즈 퀸텟의 “Turkish Rondo”로 시작됐다. 농염한 음색의 색소폰이 원래의 멜로디를 이끌고, 드럼과 콘트라베이스는 강약을 자유자재로 바꾸며 그를 뒷받침했으며, 피아노는 유려하게 움직이며 그 사이를 넘나들었다. 피아노 원곡이 날렵하고 재치 있으면서도 허리를 꼿꼿이 펴야 할 것 같은 깔끔한 느낌이라면, 재즈로 편곡된 “Turkish Rondo”는 같은 테마임에도 불구하고 몸을 흐느적거리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클래식을 재즈로 편곡하면 좀 단조롭거나 약간이나마 정적일 줄 알았는데, 이런 나의 예상을 비웃듯이, “이게 바로 재즈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연주는 생동감이 넘쳤다. 이 곡을 듣고 문화충격을 받아 돌아가면 꼭 원곡들을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적절한 첫 곡이었다.

 이어진 아리아들이 사실 오페라 위드 재즈의 진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가수들의 음성이 연주보다 압도적이어서 이 때 느낀 감흥은 사실 첫 곡과는 약간 다른 종류였다. 그렇지만 나는 오페라와 재즈가 대체 어떤 식으로 섞일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기 때문에, 두 장르가 굉장히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는 것도 못지 않게 놀라운 경험이었다. 재즈와 오페라를 비슷한 비율로 적절하게 잘 섞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말이 쉽지 이런 느낌을 내기는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다. 새삼 편곡자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한편 국내 최정상 급인 오페라 가수들도 세션들 못지 않게 연습을 많이 했다는 사실도 눈에 보였다. 무대가 오페라 대극장이 아닌 소극장임에도 아리아의 장면에 몰입하여 표정과 행동으로 연기하는 가수들의 무대매너가 프로다웠다.

 프로그램이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아리아로 구성되어 더욱 친숙하게 즐길 수 있었는데, 그 중 특히 인상 깊었던 무대는 테너 지명훈이 부른 오페라 투란도트 중 < 공주는 잠 못 이루고 >였다. 사실은 재즈를 위해 만든 곡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재즈에 잘 어울리는 곡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던 것이다. 분명 내가 아는 그 곡이 맞는데, 테너의 웅장한 음성도 그대로인데, 도입부의 꿈꾸는 듯한 분위기는 바이올린의 일자로 미끄러지는 현이 아니라 색소폰과 교차하여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피아노의 음정 위로 만들어졌다. 오페라 아리아가 공주와의 내기에서 자신이 이길 거란 확신에 찬 의기양양한 왕자의 기세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면, 앙상블 없이 재즈로 편곡된 아리아는 그 자신감에서 비롯된 설렘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반주만 들으면 마치 여름 밤에 카페에서 나올 법한 나른한 재즈였는데, 위풍당당한 테너의 목소리와 안 어울리는 듯 하면서 묘하게 조화되는 점 때문에 기억에 가장 오래 남았다.

 삼손과 데릴라 중 <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는 개인적으로 신비롭고 환상적인 분위기 때문에 좋아하는 아리아였는데, 이 곡도 재즈로 편곡했을 때 더욱 근사한 곡이 되어 마음을 울렸다. 느리게 한 음씩 짚는 피아노와 베이스, 옥구슬 굴러가듯 미끄러지는 목소리, 배경을 여유롭게 채우는 드럼과 안개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듯한 색소폰의 음성이 원곡과는 꽤 다른 분위기를 만들었다. 사실 재즈 편곡은 오케스트라가 빠져 여백이 많아진 만큼 내가 이 곡에 반한 포인트인 신비로운 구름에 싸인 느낌은 좀 덜 했지만, 그 대신 좀 더 각자 파트에서 화려해지고 느긋해진 아리아가 마음을 여유롭게 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오페라와 재즈의 다른 매력이 특히 두드러지는구나 싶기도 했고. 어쨌든 아주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오페라와 재즈의 조화가 가장 돋보였던 곡은 카르멘 중 < 하바네라 > 였다. < 오페라 위드 재즈 >를 오페라와 재즈 두 양대 산맥의 자존심을 건 대결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 하바네라 >는 각자 장르의 매력을 뽐내다 보니 경쟁은 뒷전이고 두 장르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탁월한 음악성이 최고의 무대로 승화된 느낌이었다. 곡 자체가 오페라로도 재즈로도 잘 표현될 수 있는 요소들을 갖추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역시 배태랑 음악가들과 연출가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같은 테마를 가지고 각자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연주하는 것은 세션들뿐만 아니라 보컬도 마찬가지였다. 느슨하게 풀었다가 조이면서도 멜로디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깔끔하게 맞아 떨어질 때에는 몸을 들썩이게 하는 쾌감이 느껴졌다.

 언급하지 않은 다른 무대들도 정말 훌륭하고 근사했다. 오페라와 재즈의 조화도 정말 아름다웠지만, 재즈라는 장르가 가진 인간적인 면모가 조금 더 와 닿기도 했다. 우선 평소 오페라의 마이크 없는 웅장함을 대단하면서도 약간 답답하게 여긴 사람으로서, 대형 무대에서 내려와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는 가수들이 훨씬 가깝게 느껴졌고, 멀리서 관망하는 느낌이었던 오페라보다 좀 더 아리아에 몰입할 수 있었다. 나처럼 뻣뻣한 사람을 들썩이게 하는 것 역시 재즈만이 가진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악보가 아닌 사람에게서 나오는 리듬을 듣고 있으면 무대 위의 사람들과 한 마음이 된 것 같기도 하고 그 음악에 빠져들면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재즈라는 장르에 오페라라는 정 반대 타입의 장르를 혼합한다는 건 굉장한 도전이었을 텐데, 결과물은 두 배의 감동이었다. 가는 길은 멀고 더웠지만,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음악의 향연 덕에 소극장 안에서 공연을 보는 시간만큼은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오페라와 재즈의 크로스오버는 아직 생소하게 취급되지만, 이 감동을 더 많은 사람들이 느꼈으면, 그래서 앞으로는 더 쉽게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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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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