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모차르트 레퀴엠, 브루크너 테 데움, 서울오라토리오합창단.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글 입력 2017.06.02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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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 브루크너 [REQUIEM/ TE DEUM]
서울오라토리오 제67회 정기연주회

2017.06.13 화요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레퀴엠 중 하나인 모짜르트의 레퀴엠과 좀처럼 듣기 어려웠던 안톤 브루크너의 테 데움을 6월 13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대규모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서울오라토리오가 연주한다.

1991년에 창단된 서울오라토리오(감독 최영철)는 서울시지정 전문예술단체로서 ‘위대한 유산시리즈’를 이어가며 베토벤 [장엄미사], 드보르작 [레퀴엠], [스타바트 마테르], [테 데움], 베를리오즈 [레퀴엠], 베르디 [레퀴엠] 등 한국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대규모 걸작들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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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A. Mozart [Requiem] KV.626

모차르트 레퀴엠은 음악 역사상 가장 숭고하고 비극적인 진혼곡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기독교 신앙을 밑바탕으로 보편적인 인간적 감동을 표현하려 했다. 특히 이 작품은 레퀴엠을 예배용 음악에서 예술 감상용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는다.

흔히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의 그 레퀴엠 정도로 알고 있었던 모짜르트의 레퀴엠에는 모차르트가 1791년 12월 5일에 사망함으로써 결국 미완성이 된 이 작품은 작곡 당시의 정황 때문에 오랫동안 온갖 낭만적인 추측을 낳았는데, 모짜르트의 명성이 이 곡에서부터 실현되었다는 설이나 이 곡을 가로채고자 하는 사람이 존재했다는 이야기 등으로 모짜르트 레퀴엠에 대한 무성한 소문또한 음악을 듣게 만드는 흥미로운 요소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말년의 모차르트는 경제적으로 심한 압박을 받아 심신이 지쳐있었고 먹고살기 위해서 쥐어 짜내야 했던 창작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레퀴엠은 진혼곡, 즉 죽은 이의 넋을 달래는 곡이란 뜻이다. ‘Requiem’은 라틴어로 ‘안식’을 뜻한다. 가톨릭 미사는 엄격하게 치뤄진다. 그 중에서도 죽은 자를 위한 미사이니 얼마나 엄숙하고 예를 갖춰야 할지는 짐작이 갈 것이다. 베르디의 레퀴엠이나 브람스의 레퀴엠과는 다르게 모짜르트의 레퀴엠에서는 레퀴엠 본연의 엄숙함과 장엄미를 바로크해석적 기품으로 완벽히 살렸다고 평가하는데 부족함이 없을만한 곡이라 평가받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모차르트, 레퀴엠 [Mozart, Requiem In D minor K. 626] (클래식 명곡 명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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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ruckner [Te Deum] WAB.45

<테 데움>은 브루크너의 가장 잘 알려진 교회음악으로 네 명의 독창자, 8성부 합창, 대규모이 오케스트라의 편성으로 쓰여졌다.  브루크너는 "<테 데움>은 그토록 많았던 빈에서의 고통 가운데서 나를 안전한 길로 인도하신 신께 대한 무한한 감사의 표현이다" 라고 밝혔다. 악보의 앞 머리에는 'O.A.M.D.G(모든 것을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고 한다.  광휘에 차고 장엄한 브루크너의 <테 데움>은 신실하고 겸허한 인간이 전능한 신과 위대한 신비적 교의에 대한 헌신을 표현한 작품이다.

그는 생존시에는 동료 작곡가들로부터 존경과 이해를 받지 못했다. 브루크너가 본격적인 활동을 펼친 19세기 후반기에 독일의 음악계는 바그너를 지지하는 그룹과 브람스를 지지하는 양진영으로 나뉘어 반목을 거듭했고, 공공연히 바그너를 지지했던 브루크너는 한슬리크를 비롯한 브람스 진영의 극렬한 비난을 받았던 것이다. 신앙심(카톨릭)이 매우 깊었던 그의 조부와 부친은 브루크너에게 교회음악이 지닌 의미를 일깨워주었고, 오르간을 가르쳐주며 정진할 것을 당부하며 1861년에 브루크너의 음악생활에 결정적인 계기로 지휘자인 오토 키츨러(Otto Kitzler)가 린츠 가극장의 악장으로 부임하면서 베를리오즈와 리스트의 작품을 공부, 1863년에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접하게 되면서 이전까지 주로 교회음악 작곡에 전념했던 브루크너는 바야흐로 교향곡 작곡에 눈을 돌리게 된다. 이후 교향곡은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이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안톤 브루크너 - 대규모 교향곡 형식 (서양음악사 100장면, 2002. 7. 20., 가람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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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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