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 관계의 따스함을 덮다, 무언극 '이불'

글 입력 2017.06.01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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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쯤 비가 쏟아졌다. 오랜만에 내리는 비는 봄과 여름의 경계에서 꽤나 싸늘하게 떨어졌다. 한껏 익어가던 여름의 대지가 다시금 시간의 경계를 뒤집었다. 춥고 쌀쌀한 날. 실제로도 따듯한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한 날이었다. 그래, 마치 이불같은.

연극 '이불'을 관람하기 위해 CKL 스테이지로 향했다. 종각역 인근이었는데, 처음 방문한 CKL 스테이지는 생각보다 넓었고, 다양한 공연을 위한 시설이 잘 마련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넓은 홀에 하나둘 사람들이 찬다. 연령대는 다양했다. 가족 단위로 온 손님도, 친구들끼리 온 대학생들도, 나이 지긋하신 노부부 분들도 계셨다. 다들 따듯한 이불 덮으러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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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극은 내게 조금 특별했다. 일전 연극 '심청' 때 뵈었던 마임이스트 이두성님의 주연으로, 무언극으로 진행되는 연극이기 때문이었다. 연극 '심청'을 볼 때 이두성님의 연기가 정말 아름답다고 여겼던 터라 더욱 기대가 컸다. 또한 그 떄 당시 스토리라인을 잡으신 이강백 작가님이 이번에도 함께 작업하셨다고 했다. 무슨 이야기일까 무슨 느낌일까 한껏 상상했는데, 부담스럽지 않은, 유쾌하고 담담하면서 따듯한 이불이겠다 싶었다.

입장 시간이 되어 입장하고 나니 무대와 관객석의 거리가 상당히 가까웠다. 맨 앞줄에는 좌식 방석을 두어 최대한 가까이서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높고 큰 공간이 한참 어둡다가 멀리서 조명이 떨어진다. 다른 세계로 온 것 같은 공간감이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으려니 한 아이의 등장과 함께 막이 올랐다.

연극 '이불'은 한 부부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관계가 성숙해지고 온전한 가족을 이루어 아이를 얻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마치 동화처럼 풀어낸다. 무언극이기에 배우들의 행동, 효과음, 간단한 나레이션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한 때 서로 멀찍이 떨어져 이불을 덮고 지내던 부부가 대 홍수를 만나 물에 휩싸여 어디론가 떠내려간다. 강을 건너 바다를 건너, 섬에서 생존기를 펼치기까지 그들은 동고동락하며 함께한다. 함께 해왔지만 각자 살던 그들이 정말로 함께 살아가기 시작한다. 함께 고난을 이겨내고 그들만의 작은 추억이 여럿 생겨나면서 그들은 한 지붕 아래 한 이불을 덮고 다시금 잠에 든다. 잃어버린 집도 되찾는다. 그리고 그 따듯함 속에서 아이가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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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에는 주제가 주제인지라, 어른의 동화이려나 하는 마음으로 관람했었다. 하지만 부부 사이의 관계에 대해 너무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표현으로 다루어 어른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함께 보기 충분했다. 동화같은 이야기다. 관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다툼과 해결의 과정, 그리고 시간이 흘러 관계가 단단해지는 모습을 그들이 이불을 타고 함께 여행한다는 이야기로 풀었다. 관람하면서 계속 정말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정말로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아이의 시선에서 스토리가 전개되기에 이런 동화같은 이야기가 자연스럽기도 했다. 액자식 구성과 같이, 부부 사이의 아이가 될 꼬마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으로 전개된다. 아이의 천진난만한 시선이 참 귀엽다.

동화처럼 다소 추상적인 이야기로 묶었지만 메세지는 확실했다. 고난과 역경을 함께 이겨내고, 함께 경험하고, 함께 추억하면서 그 시간을 거치며 그들은 온전히 하나가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라는 것,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들을 정말 말 없이, 무언극으로 풀어내었다.

그리고 확실히 무언극이기 때문인지 더욱 임팩트가 컸다. 대사가 차지해야 할 공백에는 악기 소리가 대화가 되어 채워지고, 행동과 눈빛, 작은 손짓 하나 하나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화는 없지만 행동을 이어갈 때마다 절묘하게 지속되는 효과음이 있어 전혀 허전하지 않다. 그 소리란 것이 빈 통 치는 소리, 우산 펴는 소리, 리코더 소리 등 소소하면서 독특한 것이라 듣는 맛이 있다. 무대 한 켠에서 직접 연주한다.

부부는 강을 건너고 바다를 지나고, 숲 속을 탐험하고, 집도 짓고 집에서 살고, 하늘도 날고 정말 다양한 곳을 여행한다. 모든 곳을 담아내기에 무대 장치가 화려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완벽했다. 그저 그 곳에는 빛과 그림자, 이불만이 있었는데, 빛과 그림자는 때때로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존재를 만들며 무대를 풍부하게 했고, 이불 한 장은 이야기 속의 모든 공간이 된다. 이불 한 장으로 그렇게 다양한 장면이 만들어질 수 있다니. 무대 위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더니 왠걸. 모든 것이 있었다. 모든 무대의 요소가 합쳐져서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엄청나게 확장되어 다가왔다. 보이지 않는게 보인다. 아주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상상하게 만든다. 표현이 참 멋지다.

얇은 이불 한 장으로도 돈독하게 감싸질 수 있는 관계. 가까웠다가 멀어지기도 하지만, 결국 아픈 시간도 행복한 시간도 모두 함께하게 되는 것. 극 중에서 등장한 이불이라는 것은 그들과 함께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위에서 함께하는 그들 역시 마음 먹기에 따라 정말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관계이겠지.

연극이 끝나고 30분 정도 배우님들과의 대화 시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마임과 소리가 절묘하게 맞아야 했기 때문에 서로 호흡을 맞추는 것에 중점을 두었고, 배우 분들에게 마임이 새로운 도전이었기에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자 했다고 전해주셨다. 대화 마지막에 이르러 한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너무 좋았다고 했다. 재밌고 즐겁고 그랬다고. 구체적으로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참 그랬다고 했다. 주위를 둘러 보니 다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흐뭇하게 웃는 얼굴들. 문득 이 따듯한 이야기를 이 곳의 모든 사람들과 공감하며 느꼈다는 생각이 확 다가왔다. 괜히 더 마음이 꽉 찬 느낌이 들었다. 참 좋고 따듯한 이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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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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