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돌아가다, 게르하르트 슈타이들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05.30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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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복잡할 때, 서점에 가는 것만큼 좋은 일이 없다. 별로 대단한 일은 아닌데,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책 표지를 살펴보고, 제목을 하나하나 눈여겨 보며, 그 책들의 감촉을 느끼는 것은 나의 스트레스 해소법 중 하나이다. 하지만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요즘 동네의 작은 책방들, 학교 주변의 소소한 서점들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짐을 느낀다. 디지털 시대의 수많은 전자기기들에게 지쳐 버린 탓일까. 사람들은 아날로그적인 것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다.

아날로그적인 것에 대해 생각하던 중 떠오른 이름 하나는, 게르하르트 슈타이틀. 우리나라에서는 낯선 이름일 수 있지만, 그는 세계적인 아트북 출판인으로 인쇄인, 제작자, 디자이너 그 모두를 포괄하는 사람이다. 몇 년 전, 신문을 보던 중 슈타이들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전자책이 급속도로 증가해 종이책의 판매가 점점 줄어들고 있던 상황에서, “종이책은 죽지 않는다...지금부터 르네상스다”라는 단호한 헤드라인을 가진 기사였다. 당시 기사에서는 게르하르트 슈타이틀의 출판에서의 철학, 특히 그의 예술적인 출판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책이라는 ‘물질’에 대해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그의 생각이 꽤 흥미롭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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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하르트 슈타이틀은 책 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전자책의 종식을 예고하는 많은 사람들과 달리, 그는 종이책이 오히려 더 흥행할 것이라고 보았다. 종이책만이 가지고 있는 아날로그적 감성은 디지털이 아무리 발전해도 채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신념은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전자책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전자책은 책이 내게 가져다주는 무수한 느낌들 중에 단순한 ‘내용 전달’과 ‘편의성’의 기능밖에 제공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전자책이 아무리 발전해도 종이책이 사라지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슈타이들의 책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종이책만이 가질 수 있는 감성들을 극대화하여, 책을 마치 예술 작품과 같은 위치까지 끌어올렸다. 그의 책들을 통해, 나의 생각들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었다.

2013년 대림미술관에서는 ‘How to make a book with Steidl’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진행한 적이 있다. 당시 관람했던 전시에서 기억에 남았던 것은 그가 종이책 그 자체만이 아니라, 이를 만드는 모든 과정을 하나의 예술로서 표현했다는 점이다. 그의 출판사에서 종이책을 탄생시키기까지 벌어지는 회의, 디자인, 편집, 인쇄 등 과정 하나하나가 표현된 전시는 그의 열정을 잘 드러내 주었다. 단순히 책을 넘어서서, 관련된 모든 것들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슈타이들은 소소하고 작은 일도 모두 가치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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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들은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종이책이 전자책과 차별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명백히 드러낸다. 전자책이 단지 읽는 것, 책의 기능적이고 시각적인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었다면 슈타들의 종이책은 이에 더해 인간의 감각을 최대한으로 자극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책에서 지배적인 시각 이외에도, 후각과 촉각과 같은 감각까지 자극하면서 말이다. 스마트폰으로 전자책을 읽을 때는 단순히 ‘텍스트’를 읽는 것 이외의 별다른 느낌이 없다. 그러나 비오는 날 책장 끝에서 느껴지는 습기, 오래된 책에서 나는 냄새, 햇빛 가득한 날 책이 내뿜는 색채, 책장 하나하나를 넘길 때마다 각기 다른 촉감들은 모두 새로운 경험들, 모두가 그 자체로 소중한 경험들이라는 점에서 종이책의 가치가 드러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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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4년이 지난 오늘, 인쇄 형식의 종이책은 다시 그 진가를 인정받고 있다. 종이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전자책에서 느낄 수 없는 호소력을 가져다준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스마트기기에 대한 피로감으로, 책 그 자체를 느낄 수 있는 종이책 소비가 다시 회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슈타이들의 단호한 예측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다. 그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종이책을 전자책으로 대신한다는 것은 어쩌면 책을 ‘무시’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종이책을 전자책으로 만든다는 것은 책을 단순히 내용 전달의 수단으로만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책에 담긴 내용을 읽는 것에서 벗어나서, 책이라는 그 자체를 온몸으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그 모든 노력과, 마침내 탄생한 이 작품을 존중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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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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