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존재의 속성에 관하여 [문학]

글 입력 2017.05.22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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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끌린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닌, 단지 그 제목 때문이다. 책의 제목은 익히 들어 왔지만, 제목의 의미가 이토록 궁금했던 적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존재한다는 것은 항상 무엇인가 숭고하고, 선한 것이라고 받아들여지는데 존재의 가벼움이라니. 우리가 그렇게 무게를 두던 ‘존재’라는 것의 의미가 사실상 굉장히 가벼운 것이고, 그것을 쉽게 용납할 수 없음을 이 책의 제목으로 나타낸 것인가? 머릿속에 제목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진 채, 책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영원 회귀와, 무거움과 가벼움의 관계


제목에서부터 ‘존재’를 다루고 있듯이 이 책은 니체의 영원 회귀라는 꽤나 심오한 철학적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영원 회귀는 우리의 삶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면, 새롭지 않은 영원한 것이라면, 어떠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계속해서 되풀이되는 한 사건은 그 의미를 가지지 못하고, 아름답지도 못하다는 것이다. 대신 영원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 하나하나가 ‘무거운 짐’이 되어 돌아온다. 글의 첫머리에 소개한 니체의 영원 회귀와 작가의 이야기는 단번에 나의 흥미를 사로잡았다. 마치 평소에 내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을 정리해 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의 많은 부분이 ‘순간성’ 에 기인한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영원 회귀는 이러한 아름다움의 의미를 소멸시키는 것으로 느껴졌다. 모란이 항상 피어 있다면, 꽃이 피기까지를 기다리는 모든 순간들과 모란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 모두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작가는 영원 회귀를 설명하면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 중에 무엇이 더 나은 것인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무거운 삶, 혹은 가벼운 삶


이러한 작가의 질문 안에서 이 책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밀란 쿤데라는 특이하게도 인물들을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것처럼 꾸며내지 않고, 대신 인물들이 몇몇 문장에서 태어난다고 적나라하게 밝힌다. 대표적으로 토마스는 창가에 서서 건너편의 담벽을 바라보고 곰곰이 생각하는 모습에서, 테레사는 뱃속이 편치 않을 때 나는 꾸르륵 소리에서 탄생한 것이다. 작가는 토마스와 테레사, 그리고 사비나와 프란츠의 관계를 중심으로 책의 첫머리에서 제기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어쩌면 그 실마리를 암시하고 있다.
토마스와 테레사, 그리고 사비나와 프란츠의 각 관계에 있어서의 공통점은, 아마 남녀가 각각 양극단의 사고방식, 혹은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토마스와 테레사의 경우 많은 차이점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사랑을 정의하는 방식에 주목하고자 한다. 토마스는 사랑을 단지 무수한 우연들에 의해 발생한 가벼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테레사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 역시 우연에 의한 것이며, 얼마든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테레사는 그녀 자신이 필연적으로 토마스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는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랑에 있어서만은, 테레사는 토마스에게 ‘무거운’ 짐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사비나와 프란츠의 관계 역시, 서로에게 이해될 수 없는 것이었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의 악보는 어느 정도 완료되어서 하나하나의 단어나 물건은 각자의 악보에서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기 마련’이다. 대표적으로 ‘진리’에 관한 그들의 관점은 상이한 차이를 보였다. 진리 속에서 살기 위해서는 사비나는 군중이 없어야 한다고 가정한 반면, 프란츠는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의 경계를 완벽히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프란츠가 돌연 사비나의 집에 왔던 행동은, 그녀에게는 완벽한 영역의 침해였던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각각의 언어들이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조금 더 많은 시간과 참을성이 필요했겠지만, 두 사람은 그러지 못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영원 회귀의 무거움


왜 작가는 이토록 극단의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설정했을까? 단지 몇 문장 속에서 태어났지만 극도로 다른 사람들의 관계,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작가가 글의 첫머리에서 밝힌 내용과 연결된다. 그는 파르메니데스의 말을 빌려, 이 세상은 반대되는 것의 쌍으로 양분된다고 한다. 작가는 그 양분된 것들을 하나로 연결시킴으로써, 반대되는 하나의 조각들을 다시 온전한 하나로 만들어 낸 것이다. 이는 <그래야만 한다!>로 대표되는 베토벤의 완벽한 필연이 사실상 가벼운 농담 한 마디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신’의 아들인 스탈린의 아들이 똥을 위해 목숨을 내놓았다는 이야기에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결국 인간 삶에서의 결말은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토마스는 직업상에 있어서 내면적 <그래야만 한다!>에 저항하며 무거운 것을 가벼운 것으로 바꾸고자 욕망했고, 스탈린의 아들이 목숨을 내놓은 이유 역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때문이었다. 글 속의 네 인물은 생의 내내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고민하지만 결국 ‘가벼움’으로 그 생을 맺게 되는 것이다. 계속해서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삶을 생각해 보았을 때, 이와 같은 결말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면서 주목하여 보았던 부분 중 하나는, 이러한 인물들의 가벼움과 반대되는 개 카레닌의 삶이었다. 계속해서 일직선으로 전진하는 인간의 삶과 달리, 카레닌은 순환하는 시간 속에서 살아갔다. 카레닌이 편안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똑같은 순간에 똑같은 방식으로 반복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작가가 글의 첫 부분에서 말한 영원 회귀의 삶이 아닌가. 생의 매 순간이 무한한 횟수로 반복되는 무거운 삶, 곧 생생하고 진실한 삶은 인간이 아니라, 개 카레닌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무거움’의 이미지를 생각해 본다면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카레닌은 이러한 무거움을 짐으로 생각하기는커녕, 반복되는 욕구 안에서 그의 행복을 찾아 나갔다.



그렇다면 어떠한 삶이 더 나은 것인가?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던 네 인물의 삶의 여정, 그리고 개 카레닌의 놀라울 만큼 반복되었던 생은 그 마지막 순간에서 각각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특징지어진다고 생각했다. 작가는 무거운 삶과 가벼운 삶, 어느 것이 더 나은 삶인지를 질문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결국,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다고 할 수 없다는 결론에 미치고 말았다. 네 인물의 삶과 카레닌의 삶은, 결국에는 그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욕구에 의해 그 막을 내렸다. 네 인물에게는 본질적인 욕구가 가벼움이었던 것이고, 카레닌에게는 일관적인 반복의 삶이었던 것이다. 곧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 자체보다도, 그것이 개인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책을 읽기 전 궁금했던 제목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책 속의 인물들은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삶을 끝내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그 ‘참을 수 없음‘은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고민했던 인간의 치열한 노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고민했던 삶인데, 가벼움으로 끝나는 것에 대한 허무함이랄까. 그러나 작가의 질문에 답한 바와 같이, 자신이 원하는 본질적 욕구가 ‘가벼움’이었다면, 삶은 적어도 그 자신에겐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곧, 인간 존재의 가벼움에 ‘참을 수 없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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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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