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찰나의 욕망도 얼룩이 된다. [시각예술]

그러나 반복되는 것들
글 입력 2017.05.20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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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에서 봄·여름·가을·겨울의 미토스가 있다. 죽음에서 회복으로 이어지는 봄의 미토스, 젊음과 행복, 나아가 결혼과 짝짓기의 여름 미토스, 행복에서 좌절에 이르는 가을 미토스, 좌절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아이러니의 겨울 미토스까지 이 영화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삶이 그러하다.

 영화는 봄·여름·가을·겨울로 챕터가 나뉘어있다. ‘봄’에서 동자승이 물고기, 개구리, 뱀에게 돌을 묶어 못 움직이게 했을 때 스님이 동자승 몸에 무거운 돌을 묶으며 해준 얘기가 참 마음에 박혔다. “어느 하나라도 죽었으면 너는 평생 동안 그 돌을 마음에 지니고 살 것이다.” 이 동자승만큼은 잔인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어렸을 때 새끼 달팽이들을 아무런 생각 없이 죽인 전과가 있는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가끔 불쑥 그 달팽이를 죽였던 날의 내가 생각이 나는 순간이 있다. 나도 마음에 돌을 지니고 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동자승은 뱀이 죽은 걸 발견하고 서글프게 우는데, 요즘 누가 울면 따라 우는 병에 걸린 나는 동자승의 서럽고 미안한 눈물에 덩달아 울먹였다. 여름이 되면 그 동자승이 커서 소년이 된다. 그리고 요양 차 온 소녀에게 이끌린다. 가을엔 그 소년이 청년이 되어있고 겨울에는 청년이 장년이 되어 나타나는데 이 장년의 스님이 재밌게도 김기덕 감독이었다.(대사는 없었지만 연기를 잘 하시더군요.) 그리고 다시 봄이 되면 겨울에 여인이 두고 간 아기가 동자승이 되어 있다. 그리고 이 동자승은 장년의 스님이 어렸을 때 했던 비슷한 죄를 똑같이 짓게 된다. 그렇게 삶들이, 죄들이 반복된다.(그런 의미에서 저 동자승 내일 아침 입 속에 돌 들어있겠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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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는 김기덕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평화롭다고 해야 할까, 자극적이지 않다고 해야 할까. 김기덕은 이 영화가 자기가 만든 것 중 가장 잔인한 영화라고 인터뷰한 바 있는데 나는 그 인터뷰를 보고 처음에는 ‘그럴 리가?’했지만, 영화를 보며 마음이 가벼워지는 동시에 무거워지는 것을 느껴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갔다. 가벼워졌던 데에는 아름다운 자연환경, 바람이 불고 풍경이 흔들리고 물결이 일어나는 모습이 한 몫 했다. 또, 스님이 하는 대사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영화를 다 본 후에는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계절의 반복처럼 인간의 생도 똑같은 죄를 짓고 뉘우치며 무한히 그 무지의 생이 반복되어 흘러간다고 생각하니 약간의 허무감이 몰려왔다. 마치 대단한 거라고 생각한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면서 ‘삶은 이런 거야.’ 라는 답을 봐버린 것 같았다.

 사실 이 영화는 예전에 추석(석가탄신일이었나,) 특집으로 텔레비전에서 해준 적이 있는데, 스님 나오고 조용해서 지루하겠다 싶어 급히 채널을 돌린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잔잔하지만 지루하지 않다. 사건이 없지만 있다. 마음속에 일어나는 수 만 가지의 생각과 변화들이 어느 영화보다 스펙터클하다. 마치 살면서 느끼는 ‘시간 진짜 빠르네.’라는 감정을 그대로 가져온 듯 약 두 시간의 시간이 후다닥 지나가 버린다.

영화를 보고 최승자 시인 특유의 음울한 시들이 읽고 싶어져서 시집을 펼쳤는데 이 영화가 떠오르는 시가 있었다.

……
달려라 시간아
꿈과 죄밖에 걸칠 것 없는
내 가벼운 중량을 싣고
쏜살같이 달려라
풍지박산되는 내 뼈를 보고 싶다.
뼈가루 먼지처럼 흩날리는 가운데
흐흐흐 웃고 싶다
……

찰나의 욕망도 얼룩이 된다.
그 속에 지쳐 눈과 귀와 입을 막고 ‘閉’를 붙이고 싶을 때, 이 영화를 보자.




*덧붙이는 말
영화에 나오는 멋진 암사는 경북 청송에 위치한 주산지인데 물 위에 떠 있던 절은 세트라고 한다. 영화를 보며 물 위의 절이라니, 언젠가 꼭 가보리라 다짐 했는데 내심 서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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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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