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과 삶을 노래하는 보통의 존재들, '언니네 이발관'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05.18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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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오랜 시간 동안 한 분야에 매달린 사람의 음악들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사실 조심스러운 마음이 든다. 나보다 이 밴드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훨씬 많을 것이고(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사람도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몇 번을 다듬고 깎아서 완성해낸 음악을 혹시나 내가 오역하는 부분이 있을까 봐. 하지만 그런 무모함과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돌아오지 않을 마지막 여정을 떠나는 만큼 단지 하나라도 더 기록하고 싶다는 욕심에 쓰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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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가수는 누군가에게는 익숙할 수도, 낯설 수도 있는 이름, 밴드 ‘언니네 이발관’이다.

처음부터 거슬러 올라가보면 밴드의 탄생은 당시 음악 동호회에서 활동하던 보컬 이석원이 라디오에 나가 ‘자신은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밴드를 하고 있다’라고 무심코 내뱉은 거짓말에서 출발한다. 물론 지금이라면 ‘허언증’이나 ‘거짓 방송’으로 욕을 먹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이를 계기로 실제로 밴드의 멤버를 모집하게 되고, 음악을 만들어 1996년 <비둘기는 하늘의 쥐>라는 앨범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게 된다. 물론 지금이야 밴드 음악이 대중들에게 익숙하고 공연문화도 활성화되어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그들이 거의 록 밴드의 시대를 여는 시초와도 같은 존재였다. 당연히 처음부터 돈벌이가 될 리는 없었고, 그러던 새에 보컬 이석원은 결혼을 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 그는 이혼했고, 밴드의 원년 멤버이자 지주와 같았던 멤버가 지병으로 사망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친구의 죽음에 대한 혼란과 슬픔은 4집 앨범의 수록곡 ‘천국의 나날들’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리고 2008년, 5집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앨범이 발매된다. 마지막으로 4집을 발매하고 딱 4년이 지나던 무렵이었다. 나는 5집 앨범이 그들을 알지 못했던 많은 사람에게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이름을 각인시켜주고, 흐릿해져 가던 사람들에게는 또다시 선명하게 만들어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한국대중음악상에서 3관왕을 가져다주고, 전문가건 팬이건 입을 모아 명반으로 손꼽는다는 그 앨범. 특히 아이유가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5집 수록곡 ‘가장 보통의 존재’를 커버해서 불렀었는데, 팬으로서는 더 많은 사람이 이들의 음악을 알 수 있게 해줬다는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또한 이 앨범에서 처음 듣고 가장 놀랐던 노래는 ‘100년 동안의 진심’이라는 곡이었다. 떠난 사람을 향한 마음의 긴 여운을 ‘100년’이라고 말한 것도 새로웠지만, 그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누군가가 남기고 간 공허에 대한 표현이었다.
 
‘5월의 향기인 줄만 알았는데 넌 10월의 그리움이었어
슬픈 이야기로 남아, 돌아갈 수 없게 되었네.’
 
불과 네 줄에 불과한 가사가 이렇게 무거울 수가 있을까. 내려앉은 어둠이 유난히 길었고, 그 날의 나는 새벽을 꼴딱 새며 그 노래만 반복해서 들었더랬다.

그들이 스스로 ‘사랑과 삶을 노래해온 보통의 존재들’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언니네 이발관은 자신의 노래에 주로 ‘평범’에 대한 인식과 허무를 담고 있다. ‘나’라는 개인이 누군가에게 기억되지 못하고 금방 잊힐 존재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크게 슬퍼하지 않고 그의 목소리는 변함없이 담백하다. 마치 너만 그런 것은 아니라는 듯.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것도 그들이 깎아서 힘들게 만들어낸 음악이 끝이 아니라 앞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들려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20대 후반부터 음악을 시작한 청년은 ‘40대가 넘어서면 음악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고, 수년의 시간이 지나 어느새 40대 후반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이제 마지막 6집 앨범의 발매를 앞두고 있다.




6집 앨범 <홀로 있는 사람들>을 발매하기에 앞서 5월 17일에 공개된 신곡 ‘너의 몸을 흔들어 너의 마음을 움직여’ 이다. 마지막이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앨범 이름도, 신곡의 가사도 보면서 참 그들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가 잔잔하고 조용한 리듬은 아니었지만, 들으면서는 계속 쓸쓸한 가사 덕분에 인적이 드문 길을 목적 없이 혼자 끝없이 걸어 다니고 있는 느낌이었다.
 
앨범이 발매되는 6월이 지나면 5월의 향기 같았던 언니네 이발관이 나에게는 영원한 10월의 그리움으로 남게 될까. 요즘 나는 무언가를 손꼽아 기다리면서도, 될 수 있으면 차라리 최대한 멀리 미루고 싶은 그런 마음을 안고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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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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