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라빠르망 > 무섭도록 기괴하지만 숨막히도록 아름답다 [시각예술]
그녀가 있는 공간, L'Appartement
글 입력 2017.05.17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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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정의하기 어려운 인간의 감정이다. 약속이라도 한 양 오랫동안 상상했던 누군가에게 마음을 뺏기다가도, 이유없이 새로운 이에게 끌리기도 하는 것이 사랑이니까 말이다. 이 세상 살아가는 모든 생명의 본질과도 같기에 매우 심오하면서도 지극히 욕망에 충실한 단순한 감정이 아닐까. 이렇듯 사랑의 스펙트럼은 너무나도 넓기에 이 복잡미묘한 감정을 다루는 영화 역시 아주 다양한 모습을 지닌다. 일반적으로 많은 이들이 꿈꾸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인기를 끌곤 하지만, 그 반대편 언저리에 있는 사랑 영화들도 눈에 띄는 작품들이 참 많다. 최근 작품으로는 <라라랜드>가 떠오른다. 아름답지만 잔인할 정도로 현실적이었던 결말이었다. 조금 거슬러 올라가서는 <500일의 썸머>를 떠올릴 수 있다. 운명을 믿었지만 결국 새로운 사랑으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더욱 거슬러 올라가면 <라빠르망>이 있을 것 같다. 세 영화는 물론 이야기도 분위기도 무척이나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운명'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는 양 갑작스레 아주 뜨거운 사랑을 겪지만, 그 열기는 영원할 수 없었으며 관객들의 기대와 달리 다른 사랑으로 마무리된다는 점이다. 앞선 연인이 그려내는 아름다운 모습에 관객들은 마음을 빼앗겨버려 아쉬움을 느끼지만, 사실 사랑은 지극히 현실 속에 존재하는 감정이기에 낯설 것도 없는 것일테다.매혹적인 리자와, 사랑에 빠진 막스<라빠르망>은 조금은 느닷없이 반지 이야기로 시작된다. 단순하지만 기품있는 반지와 화려하지만 날카로운 반지, 그리고 소박해보이지만 빛이 나는 반지, 세 반지를 보며 '막스'는 모두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막스는 연인 '뮤리엘'과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옛 연인 '리자'의 흔적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고민할 틈도 없이 그 흔적을 쫓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건들은 놀라우리만치 세심한 복선들을 가지고 있다. 일종의 추리 영화처럼 그가 그녀를 쫓는 과정을 그린다. 하지만 어쩌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막스도 리자도 아닌, '알리스'일 것 같다. 무척이나 복잡한 관계도지만, 단순하게 표현하면 막스의 친구 '루시엥'은 알리스를, 알리스는 막스를, 막스는 리자를 사랑했다고 할 수 있겠다. 어쩜 이렇게 엇갈리는 인연일까 싶지만, 이 모두 알리스의 의지가 투영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막스를 사랑하다 못해 악을 품은 그녀에게 두려운 것은 없었다.막스, 우연히 리자를 발견하다모두에게 사랑받는 리자에게 동경을 느꼈을 것이다. 인간이란 참 사악하게도, 리자가 알리스에게 먼저 다가옴으로써 그 동경심은 얼룩진 동등감으로 타락하고 말았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알리스에게 남은 건 온통 거짓 뿐이었다. 막스와 리자를 엇갈리게 하고자 그녀가 했던 악랄한 행동들은 교활하기에 짝이 없고 도가 지나치지만, 영화는 그녀를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도록 만든다. 영화의 마지막, 진실들이 밝혀지는 순간 그녀는 말한다. '그 여자에 대해 뭘 아는데요? 전부터 당신을 사랑했을 수도 있어요. 어쩌다보니 방법이 잘못된 거죠. 사랑에 빠지면 판단력이 흐려져요.' 사랑받지 못한 여자의 잘못된 사랑이었다. 그녀도 분명 사랑받기에 충분하건만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를 사랑할 수 없는 그녀도 참 안타까웠다. 결국 그녀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휩쓸려 사람들을 다치게 했고, 사랑에 버림받음으로써 자신도 다치고 말았다.막스를 바라보는 알리스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말이기에 당혹스러움은 온전히 관객들의 몫이지만, 그만큼 사랑은 예측할 수 없이 자유로운 것임을 감독은 말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서로 사랑했든 일방적이었든 이미 떠나버린 옛 인연을 그리워한 적, 누구나 있을 것이다. 아주 가볍디 가벼운 풍선은 하나쯤 붙들고 있어도 어떤 무게감도 주지 못하지만 슬며시 놓치는 순간 다시는 잡을 수 없이 날아가버린다. <라빠르망>처럼 자의에 의하지 않고 손을 떠나게 될지도 모르지만, 영화 속 이들처럼 누군가를 미친듯이 사랑하는 감정을 인생에서 한 번쯤 느껴보아야 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면, 망설이고 있다면 사랑하기를 바란다, 지금 그와, 그녀와.무섭도록 기괴하지만 숨막히도록 아름다운 영화, L'Appartement[강우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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