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로의 단독자 [문화]

평범하고 사소한 것에서
글 입력 2017.05.11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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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단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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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전시를 보고 나와 오른편으로 난 작은 골목길을 걸었다. 짧은 골목길 벽에는 갖은 글씨들로 지나가는 행인의 솜씨인지 누구의 글인지 모를 글귀들이 잔뜩 적혀 있었다. 우스갯소리부터 절절한 외침까지 다양한 글귀가 다양한 글씨체로, 정성들여서 혹은 휘갈겨서 가득이었다.
글귀 한 번, 서로를 한 번 쳐다보며 우린 왠지 모르게 잔뜩 신이 났고 “뭐랄까, 춤을 춰야 할까봐.”, “노래를 틀자.” 그리고 그는 신나는 노래를 틀어주겠다며 young, wild & free를 틀었다. 눈은 서로를 향해, 귀는 노래를 쫓아서. 차갑게 공기가 식어가는 시간, 어두움과 밝음이 섞여가는 시간. 그와 나는 노래를 듣고 서로를 마주 보고 손을 잡고 글귀를 읽고.
 
“근데 난 이 노래가 너무 비싸서 싫어.”
 
그가 그런 말을 꺼냈을 쯤(그의 목소리는 마치 소년 같았다.) 우리는 잔뜩 차오른 신남에서 한 발짝 비껴 나와 조금은 차분하게, 그리고 다정하게 손을 맞잡았을 때였다. 그는 너무 화려한 것들로만 가득 채워진 노래보다는 소소하거나 사소한 것들의 노래가 좋다고 했다. 그런 그의 손을 잡고 걸으면 몇 개의 사소한 노래들이 귀에 닿는 것만 같았는데, 그 때의 그 기분과 떠오르던 노랫말들이 내내 맴돌아서 이렇게 글을 쓰는 가 보다.
 
우리의 노래는 young, wild & free로 시작했고 잔뜩 신이 난 우리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가사를 따라 읽었지만 우리가 끝내 만나게 되는 노랫말은 사소했고 다정한 것들이었다. 가령 <회전목마_ 김사월×김해원>라거나 <평범한 사람_ 이랑>이라거나. 
 

우리 늘 같이 먹던 소프트아이스크림의 맛이 나는 저녁 빛깔 정다운 나의 그대는 내 손을 꼭 잡고 수많은 인파 저 멀리로 걷고 있네요 난 한참을 더 바라보고 싶어 그대만 좋다면
<회전목마_ 김사월×김해원>

 
평범한 사람이 나는 좋아요 평범한 커피점에서 만나요 평범한 옷과 신발을 입고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지 말아요 평범한 사람이 나는 좋아요 평범한 일상을 함께 보내요
<평범한 사람_ 이랑>
 

평범한 그와 나는 항상 걷던 길, 늘 같이 하던 사소한 습관들을 함께하며 결국에는 그런 것들을 찾아내고, 다시 그 곁으로 돌아오며 그 날에도 그렇게 손을 맞잡고 걷는다.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아버린다. 결국에는 그렇게 평범하고, 무색하리만큼 사소한 것들로 다다르는 우리는 서로에게 단독성을 부여하고 서로가 한없이 특별하고 유일해서 무엇과도 대치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린, 가장 평범한 것, 사소한 것을 찾는 우리는, 나의 단독자, 대체 불가능한 유일무이의 것이 되어버리고 만 너를 찾는 것이다. 

너는 나에게 어떤 순간보다 일상이고 어떤 일상에도 속할 수 없는 단독자이어서. 우린 평범하고 단순한, 사소한, 그러나 다정한 것으로 돌고 돌고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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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나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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