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끝없는 이야기 [문학]

당신에게도 판타지를 선사합니다.
글 입력 2017.05.08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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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예고 없는 빗소식에 길 위의 사람들은 애써 하늘을 가리며 뛰어보지만 작은 손바닥으로는 하늘을 가리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한 여자는 그 사실을 이미 아는지 비를 피하지 않고 천천히 걸어가려 했지만 젖어가는 머리와 옷이 신경 쓰여 눈앞에 보이는 서점으로 뛰어들어 갔습니다.


  그녀는 짧은 뜀박질에도 숨이 차 헉헉 거리며 문을 벌컥 열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나가던 들어오던 문을 여는 사람에게는 모두 ‘어서오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는 전자 여주인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요란을 떨며 들어온 자신과는 대비되는 서점의 분위기에 입을 닫고 코로 숨을 크게 들이 쉬었습니다. 비와 바람에 바깥이 태풍 같다면, 서점 안은 마치 태풍의 눈처럼 무슨 일이 있냐는 듯 고요하였습니다.


  숨을 어느 정도 고른 여자는 언제나처럼 베스트 셀러가 놓인 선반을 지나쳐 소설이 꽂혀져 있는 벽으로 향했습니다. 위에서부터 책장을 쭉 훑어보던 눈이 천천히 내려오다 어느 한 곳에서 멈추었습니다. 그곳은 길게 늘어진 책장과 책장이 만나 하나의 모서리를 만드는 곳으로, 조명의 위치 때문인지 약간 어둡게 보이는 듯싶었습니다. 그대로 손을 뻗어 눈이 멈춘 곳에 닿기에는 약간 멀어, 책장에 가까이 다가가 작게 쪼그려 앉았습니다.


  눈이 멈추었던 그 책은 아주 두꺼운 책이었습니다. 옆에 꽂혀져 있는 다른 책들 3권이 차지하는 공간을 그 책 스스로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망설임 없이 책을 꺼내 든 여자는 책의 무게 때문에 양손으로 들고 보는 것은 금방 포기하고 무릎 위에 책을 올렸습니다. 겉표지는 두꺼운 자주색 종이로 되었고 책을 열어 후다닥 책장을 넘겨 보면서 활자가 서로 다른 두 가지 색으로 인쇄된 것을 보았습니다. 자주색과 초록색 글자라니! 무슨 책인지 영 알 수가 없으면서도 여자는 이 두꺼운 책에 묘하게 끌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어두운 책장 가운데에 책을 보았을 때부터였을지도 모릅니다. 여자는 표지를 다시 한 번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두 마리 뱀이 그려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끝없는 이야기



  특이하게 모음의 끝이 구불거리게 쓰여진 이 글씨는 꼬리와 꼬리를 문 두 마리 뱀이 하나의 타원을 이룬 모양 위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타원 안에는 아마도 다른 나라의 글자일 알 수 없는 말이 쓰여져 있었지만 여자는 대강 그 뜻이 ‘끝없는 이야기’일 것임을 대강 알고 있었습니다. 책의 옆쪽에는 ‘미하엘 엔데’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책을 꺼내어 안과 제목까지 모두 읽고 나니 마치 그 책이 이미 자신의 것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줄곧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모두가 잠든 새벽에 책을 읽어 내려갈 때 남아있는 책장의 수가 항상 아쉬워, 그 끝이 오지 않았으면 싶었습니다. 그런데 ‘끝없는 이야기’라면 새벽 내내 해가 뜨고 다시 질 때까지 언제까지고 읽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생각의 끝에 다다르자 그녀는 어느 새 구입한 책을 품에 껴안고는 전자 여주인의 ‘어서오세요.’를 다시 들으며 서점을 나서고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그녀는 혹시나 책이 비에 젖었을 까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아직 책을 읽기에는 이르다고 생각되어 새벽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는 누군가 가져갈 일은 없지만 왠지 옛날 이야기 속의 마녀의 마법 책을 가지고 있는 기분이 들어 배게 밑에다가 숨겨두었습니다. 새벽 1시가 지나고 가족 모두가 잠들어 그 누구도 그녀를 방해하지 않을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책을 읽을 때면 항상 함께하는 작은 전등을 켜고 방의 불을 껐습니다. 작은 전등이 비추는 빛에 의지해서 배게 밑에 책을 꺼내어 그 책장을 열어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 갑자기 유리문이 벌컥 열렸다. 그 바람에 문 위에 걸려 있던 한 묶음의 작은 놋쇠 종들이 세차게
울리기 시작하더니 한동안 그칠 줄 몰랐다.

이 소란을 일으킨 주인 공은 열 살이나 열한 살쯤 되어 보이는 작고 통통한 사내아이였다. 아이의 짙은 갈색 머리가 젖은 채 얼굴에 착 달라붙어 있었고 비에 흠뻑 젖은 외투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졌으며,
어깨에는 책가방이 메여 있었다. 아이는 약간 창백한 얼굴로 숨을 헐떡였지만 방금 전가지
서둘렀던 것과는 영 딴판으로 마치 못 박힌 듯이 꼼짝 않고 문턱에 서 있었다. ∙∙∙


  뭐지? 책을 읽던 여자는 아이의 등장이 마치 낮에 서점에 들어갔던 자신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 신기하면서도 무서운 감정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끝없는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하였기 때문에 서둘러 읽어 내려갔습니다.


∙∙∙ 바스티안은 안락의자에 다각 천천히 손을 뻗어서 책을 만졌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마치 덫에 걸린 것처럼 바스티안의 내부에서 뭔가 “찰칵” 하고 소리를 냈다.
바스티안은 책을 만짐으로써 뭔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시작되었고
이제 계속되리라는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 바스티안은 표지를 다시 한 번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두 마리 뱀이 그려진 것을 발견했다.
각각 어두운 색깔과 밝은 색깔의 뱀은 서로 꼬리를 물고 하나의 차원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 타원의 안에 특이하게 구불거리는 글씨체로 제목이 쓰여 있었다 ‘끝없는 이야기’ ∙∙∙


  책을 계속하게 읽어 내려갔지만 그녀의 머릿속에는 다른 생각도 함께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책방에 뛰어들어온 어린 아이 바스티안이 만난 책이 ‘끝없는 이야기’라는 것과 자신이 책에 이끌려 이렇게 읽게 된 것처럼 바스티안도 책에 이끌렸다는 것이 닮아있어 마치 거울로 비추는 듯싶었습니다.


  책을 살 수 없을 거라 판단한 바스티안은 책을 훔쳐 달아났습니다. 그리고는 학교에 가지 않은 채 책을 읽기에 아늑한 창고에 숨어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 한 그 창고 안에서 오랜 시간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책 속에 펼쳐지는 ‘환상 세계’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됩니다.


  바스티안과 함께 책을 읽어 내려가던 그녀는 어느새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있을까 걱정되어 휴대폰을 찾아 침대를 더듬거렸습니다. 찾은 휴대폰을 눈 앞에 가져와 켜니 갑자기 밝은 빛에 잠시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이내 익숙해졌습니다. 그보다도 휴대폰이 알려주는 3:26이라는 시간에 작게 놀라 서둘러 책을 덮었습니다. ‘끝없는 이야기’의 끝을 벌써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다음날 학교에 가야 할 것이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책을 머리 옆에 잘 두고는 작은 전등을 껐습니다. 눈을 감고는 ‘끝없는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상상해보았습니다. 자신이 마치 어릴 적 할아버지의 신비한 옛날 이야기를 들을 때로 돌아간 것 같아 설레는 마음에 잠이 올지 걱정이 되었지만 이내 잠에 들었습니다.





  위 글은 필자가 ‘끝없는 이야기’를 사서, 읽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약간의 각색을 거쳐 이야기로 만든 것입니다. 위 글 속 ‘미하엘 엔데’를 읽고 알아채신 분들도 있겠지만, ‘끝없는 이야기’의 작가 미하엘 엔데는 ‘모모’의 작가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신비한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불러 일으킨 ‘모모’에 비해 그의 ‘끝없는 이야기’는 책의 어마어마한 두께 때문인지는 몰라도 ‘모모’보다는 많은 아이들에게 읽히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모모’보다도 ‘끝없는 이야기’가 다 큰 우리가 읽기에 너무나 좋은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매일 비슷한 일상을 마무리 하고 잠들기 전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는 것이 아닌, 두꺼운 책 속에 펼쳐질 또 다른 세상을 기대하며 책장을 펼치는 그 행위 자체가 힐링을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현실적으로 살아가느라 낭만적이고 공상적인 세계를 등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통해 한번쯤은 그러한 세계로 건너가 즐겨보는 게 어떨까요? 찬란한 5월이 다 가기 전에 꼭 한번 읽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판타지를 다시 되찾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더 즐거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용 출처: 끝없는 이야기, 미하엘 엔데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정연수.jpg
 

[정연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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