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헌 책을 받아보는 설레임, '설레어함' [문화 공간]

글 입력 2017.05.08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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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과 홍대 부근에서 태어나 쭉 살아서 그런지, 어렸을 적부터 소위 ‘낡은 것’에 대한 노출이 잦았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할머니네 집은, 신촌 부근임에도 불구하고 밭이 있었어서 할머니가 직접 재배한 작물을 갖다 주곤 했었다. 살던 아파트에서 몇 블록 떨어진 작은 아파트로 이사 온 곳에서 현대백화점을 향해 걸어가다 보면 마주치는 글벗서점과 공씨책방도 어렸을 적부터 내 추억의 일부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존재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갔다. 목마레코드를 시작으로 하나 둘씩 사라져갔고, 공씨책방과 글벗서점도 주변의 서점과 대형 서점의 중고 서적 판매 지점으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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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https://brunch.co.kr/@netsgo0319/87


이러한 위기는 내가 사는 신촌 홍대 부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사실 이러한 위기는 헌책방거리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청계천 헌책방 거리가 가장 먼저 입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0년대 청계천에 상권이 형성되며 청계천 거리를 중심으로 생겨난 헌책방은 1962년 평화시장이 생긴 이후로는 1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1970년대에는 120개의 헌책방이 영업될 정도로, 일종의 청계천 아이덴티티로서 기능해온 청계천 헌책방들은 90년대 인터넷의 발달로 온라인 서점들이 생겨나며 하나 둘 접기 시작하더니 현재는 20여개의 헌책방만이 운영되고 있다.


 
설레어함?


그간 그렇게 사라져가는 헌책방들을 살리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그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연세대 인액터스의 프로젝트로 시작한 ‘설레어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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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설레어함 홈페이지


설레어함은 헌책방 사장님들의 지식과 노하우, 경험에서 시작되는 프로젝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빛나라 지식의 별’, ‘일상 속 여유 한 모금’, ‘새벽 2시 보다 더 짙은 감성’, ‘성찰과 사색 사이’, ‘영화를 보는 듯한 긴박감’, ‘안알랴줌’의 총 6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는데, 테마를 선택하면 사장님들이 그간 쌓아온 지식과 경험으로 그에 걸맞는 책 3권을 선정하여 ‘설레어함’에 포장하여 준다. 개인 요청 사항을 적어 내면, 사장님들은 그 또한 반영하여 구매자들에게 단 하나뿐인 설레어함을 보낸다.

이름도 참 잘 지었다. ‘설레어함’이라니. 어떤 책이 올지 모르는 설렘, 그래서 무슨 책이 들어있을까 두근대며 박스를 열어보는 설렘, 이 책들은 나에게 어떠한 감동과 지식을 선사할까 하는 궁금함에서 오는 설렘. 그러한 마음들이 종합적으로 다 담긴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그러한 설렘은 단순히 책을 받아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온라인으로 설레어함을 주문한 고객이, 청계천 헌책방 거리가 어떤지 궁금해서 찾아와 보기도 하고, 들어와서 사장님께 고유의 안목으로 책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하기도한다. 선순환인셈이다.
 
 
그 동안, ‘새 것’에 대해서는 찬양하고, ‘오래된 것’, ‘낡은 것’에 대해서는 은근히 거부감을 비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고 지속될 것이다. ‘새 것’이 주는 즐거움은 기쁘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낡은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헌 것, 낡은 것에는 그 것을 이용했던 사람들의 고뇌, 기쁨 등의 정서가 묻어나 있다. 단순히 작가의 생각만을 읽어내기 보다는, 그 책을 읽었던 사람의 생각의 흔적을 따라가보는 것도 독서가 아닐까.

설레어함 한 박스를 통해 ‘일상 속 여유 한 모금’을 느껴보고, 청계천을 걷다가 헌책방에 들러 사람들의 자취, 헌책의 냄새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설레어함 홈페이지: https://oldbookbox.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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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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