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연극, 가해자 탐구_부록: 사과문 작성 가이드 [공연예술]

글 입력 2017.05.07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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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이었다. 틈을 비집고 간신히 터져 나온 피해자들의 고백이 줄을 지었고, 나는 시집을 버렸다. 아름다운 것을 쓰는 사람이라면 아름다운 사람일 거라는 믿음,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좋은 사람일 것이라는, 그 아주 당연하고 쉬운 믿음이 몇 권의 시집과 함께 묶여 버려졌다. 곧 문단뿐 아니라 다양한 예술 장르들도 똑같이 불려나왔다. 썩어빠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연극 <가해자 탐구_부록 : 사과문 작성 가이드>는 이 예술계 성폭력 사태를 다룬다. 이 일을 말하기도 어려워하는 우리의 면전에 아예 ‘사과문 작성 가이드’까지 내놓는다. 가해자를 어떻게 탐구할 것인가, 피해자를 어떻게 보호하고, 어떻게 이 썩은 세계를 다시금 들어올릴 것인가. 우리는 아직 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는 연극적으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 것인지가 궁금했다.

  이 연극은 책의 형식을 따른다. <가해자 탐구>라는 도서의 저자들은 ‘이 세계’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개인들이다. 세상에서 가장 긴 추천사로 시작해 사과문 작성 가이드까지, 그들은 그들 스스로를 비하하고 비판하며 증오하는 동시에 동정하고 절망하고 욕망한다. 끝끝내 그들은 모두가 가해자라는 사실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로, 독자이자 관객 모두를 기만한다.

  연극을 본 뒤 기분이 너무 나빠졌다. 사실 연극을 보는 중에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소리를 지르거나 공연장을 아예 빠져나오고 싶은 충동이 여러 번 들었다. 같은 날 공연을 본 다른 사람들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왜 기분이 더러워졌는지에 대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혼자 생각했다. 그 이유는 현실의 가해자들과 연극 속 인물들이 완벽하게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나쁘다. 범법자이며 권력을 이용하는 비열한 자들이며 무엇보다 예술을 이용해 먹었다. 하지만 이 나쁨들은 온갖 이유들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우리는 자칫하면 우리는 그 나쁨을 그저 나쁘다는 단어 하나로 축약해 버리는 오류를 저지를 수 있다. ‘그 새끼는 개새끼’라고 씹어댈 뿐 그 이상의 비판은 하지 못하고, 그들의 이름을 내 입에 올리는 것조차 더럽다고 느끼며 이 역겨운 이야기를 멈추고 다른 산뜻한 이야기로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가해자를 뭉뚱그려 미워하는 것 이상의 행동은 이끌어낼 수 없다. 이 문제를 만들어낸 개인들을 처단할 뿐 아니라 체제를 갈아 치우고, 법을 만들고, 악취의 원인을 찾아 뿌리를 뽑아야한다. 그게 이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사태로부터 우리가 믿어왔던 예술의 근본을 되찾는 일이기 때문이다.

  연극 <가해자 탐구>가 불쾌하고 더러운 동시에 가치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뻔뻔하고 증오스러운 가해자들이 직접 가해자 스스로를 탐구하게 만들면서, 그들의 나쁨을 낱낱이 드러내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의 ‘나쁨’을 다양한 층위로 인식하고, 정확한 방식으로 증오할 수 있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우리는 연극을 보며 그들의 나쁨을 아주 직접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불쾌감이 당연하게 발생했던 것이었다.

  가해자들이 더는 자신들을 스스로 탐구할 수 없는 세계가 오기를 바란다. 그들이 그들 스스로를 나약하고 불쌍한 처지에 놓인 인간으로 동정하거나, 피해자들의 고통을 함부로 가늠하며 피해자들의 고백에 부차적 의도가 있다고 떠들어대지 못하는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모든 차별과 폭력에 반대한다.


[김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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