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유산진흥원] 궁 밖에서 만나는 왕들의 발자취 (2)

글 입력 2017.05.07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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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마을은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사이에 위치한 지역으로
조선시대 중인과 일반 시민의 삶의 터전 이였으며
세종대왕의 얼이 살아있는
문화예술의 공간입니다.

궁 밖에서 만나게 되는
조선시대 왕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해설을 듣고 역사문화유적지 보존에 앞장서
주변을 깨끗이 청소합니다.


이동경로
경복궁역 출발 →
통의동 백송 터 (김정희 생가 터) →
창의궁 터 (영조의 잠저) → 세종대왕 나신 곳 →
쌍홍문터 → 청와대 사랑채 →
김상헌 집터 → 무궁화 동산



효자동의 유래

시아버지에게 아들을 맡겨놓고 일하러 갔다 온 며느리는 자고 있는 아들과 시아버지 모습에 혼절할 뻔 했어요. 시아버지께서 과음을 하시고 어린 손자를 깔고 누워있는데 깔린 손자는 이미 죽어 있었던 거예요. 아들과 며느리는 아버지가 손자를 죽인 것을 알까봐 쉬쉬하며 죽은 아들을 데리고 뒤뜰로 갔어요. 아버지는 "이 불효자식아, 네가 어찌 할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니." 하면서 뺨을 때리니 죽었던 아들이 깨어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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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놀라운 이야기가 임금님에게 알려져서 그 동네를 효자동이라 이름 했다고 전해집니다. 요즘과는 너무 다른 이야기라서 놀랍기도 하지만 이야기 속에 나오는 효에 대한 가치관은 우리를 반성하게 하고 큰 교훈을 주는 것 같습니다.



쌍홍문 터

위치: 효자동 100번지

쌍흥문은 효성이 지극한 조원(1544~1595)을 기려 나라에서 정문을 세웠던 터를 말합니다. 조원의 아들 희신, 희철도 이름난 효자여서 쌍흥문이라고 했고 효자동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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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원의 아들 희정과 희철은 모친과 어린 조카들을 데리고 강화도에 피신하였는데 왜적이 들이닥쳐 그의 모친을 능멸 하려하자 이를 맨손으로 제지하던 큰 아들 희정이 왜적의 칼에 맞아 죽었습니다. 곧 이어 작은 아들 희철이 달려들어 왜적의 창과 칼을 꺽어 싸워 이긴 후 모친을 산속으로 피신시켜 초근목피(풀 뿌리와 나무 껍질. 먹을 것이 없어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먹었다는 뜻)로 봉양 하였으니 왜적과 결투하다 생긴 상처가 악화되고 굶주려서 숨을 거두었어요. 주변 사람들은 이 두 형제의 효행을 칭송하고 조정에 효자문을 세워 줄 것을 요청하니 조정에서는 조원의 본가 앞에 쌍흥문을 세워 갸륵한 효성을 널리 알렸다고 해요.



청와대 사랑채

청와대는 조선 시대(1392~1910) 왕의 정궁으로 사용된 경복궁과 인접해 있습니다. 그 당시 현재의 청와대 자리는 경무대로 불렸는데, 문과시험과 무술대회, 군사 사열 같은 각종 국가기능이 펼쳐졌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청와대 뒤로는 옛 왕도였던 서울을 동서남북으로 에워싸 보호하고 있는 4대 주산의 하나인 북악산(342m)이 우뚝 서 있습니다. 북악산을 기점으로 이들 4대 산의 능선을 따라 옛 성곽들이 축조되었고 조선조 시대의 성벽 일부는 아직 원형대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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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북악산 산기슭은 왕궁과 가까울 뿐 아니라 빼어난 경관 때문에 근처에 왕족들과 양반사대부들이 많이 자리 잡고 살았습니다. 이 일대의 절경을 묘사한 시, 그림, 문학작품을 접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김상헌 집 터

청음 김상헌(1570~1652)은 선조 3년 6월 3일 한성에서 태어나 이 곳 청풍계에서 대대로 살았다고 합니다. 21세에 진사에, 27세에는 정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임진왜란 중에 출사 했습니다.

병자호란 때 김상헌은 전력의 열세에도 끝까지 청나라와 척화를 주장했습니다. 싸우자는 뜻을 굽히지 않았어요. 그러나 결국 청나라의 항복 화의가 성립되고 고향인 안동에 내려와 은거했습니다. 김상헌과 형 김상용의 후손들은 조선 후기에 권력을 잡습니다. 바로 '안동 김씨의 60년 세도 정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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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용은 인왕산 기슭 청풍계에 살았어요. 김상헌은 백악 기슭,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 살았고요. 김상헌의 집 이름을 무속헌이라 했습니다. 김상헌의 후손들은 그 시대 정치와 문화를 이끌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의 등장으로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는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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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鄭敾), 청풍계(淸風溪)


청풍계는 식민시대에 미쓰비시 재벌에 의해 사들여 졌고 지금은 청운 초등학교와 그 뒤의 집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무속헌 터는 일제 강점기인 1925년부터 조선총독 관저와 여러 시설들이 차지했습니다. 조선총독 관저는 지금의 청와대로 바뀌었고 그 중 일부분은 박정희 시대에 안가가 차지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무궁화 동산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한국문화유산진흥원]
임지원 엮음





[한국문화유산진흥원]
소공재 소개

'소통, 공감, 재미'의 머리글자를 딴 '소공재'는 우리 문화유산을 통해 소통하며 공감을 나눔으로써 재미를 추구하는 사단법인 한국문화유산진흥원의 산하 봉사단체입니다. 우리 고유 문화에 대한 애호사항을 고취하고 회원 간의 친목과 이해를 증진시키며 문화유산 진흥을 위한 봉사활동을 통해 공익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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