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mina] 여성혐오가 농담이 되는 사회

글 입력 2017.05.02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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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가 농담이 되는 사회


선거 기간이 되면 후보들의 말과 행동, 정책, 과거의 행적은 모두 검증대상이 된다. 나라의 리더를 뽑는 대선의 경우, 그 중요도는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때문에 후보들 역시 선거 기간에는 근언 신행한다. 좋은 이미지를 고수하기 위해 한껏 몸을 사리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란 무엇인가. 발화자가 지닌 가치관과 세계관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거울과 같다.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내뱉은 말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원고 없이 생중계로 치러졌던 대선 토론회는 나에게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나 다름없었다. 평소와 가장 가까운 후보들의 모습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1.
홍준표 후보는 17일 당시 한 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설거지는 여성의 몫. 남자가 하는 일이 있고 여자가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하늘이 정해준 것" 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그가 했던 발언은 2차 대선 토론 당시 도마 위에 오른다. 이에 대해 심상정 후보는 "여성을 종으로 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말" 이라며 홍준표 후보를 향해 거듭된 사과 요청을 했고 결국 그는 여성들에게 사과했다. 느물거리는 웃음과 함께. 
홍후보의 발언은 여성을 가사, 남성을 생계부양자로 성별화해 고착화시키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근거한다. 가부장제가 그 어떤 체제보다 견고한 것은 사실이나 여성이 사회 진출을 하고 맞벌이가 늘어가는 세상, 페미니즘이 주목받고 4차 산업혁명을 떠드는 세상에선 참으로 낡고 후줄근한 가치관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의 발언만큼 나를 참담하게 만든 것은 다른 후보들의 반응이었다.


2.
웃음이 나올만한 발언이었나? '웃자고 한 말' 이었다며 홍준표 후보가 저토록 한심한 발언을 할 때 세 명의 남성 후보들은 정말로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날카로웠던 토론회의 열기를 잠시 환기 시켜줄 코너 인 양 남성 후보들 간의 분위기는 훈훈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 자리에서 웃지 않았던 이는 여성인 심상정 후보 단 한 명이었다. 그녀만이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하며 홍후보의 사과를 종용했다. 45년 전 친구에게 돼지 흥분제를 구해주며 강간모의를 했던 남성들, 대학 내 단톡방에서 여학우를 성희롱하는 현재의 남성들, 성차별과 성희롱적 언행을 일삼는 남성들은 모두 똑같은 변명으로 일관한다.

장난으로. 농담 삼아. 그냥 웃자고.

그리고 그것을 방관하거나 묵인 또는 옹호하는 다른 남성 집단. 내가 분노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홍후보와 그의 여성혐오 발언이 웃음으로 소비되기 때문이다. 수용자의 입장에선 지독한 모멸감과 주체성이 훼손되는 문제지만 그저 농담으로 치부되는 것이다. 이처럼 여성혐오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남성들 간의 유대 관계는 45년 전과 현재가 전혀 다르지 않음을 반증한다.


3.
차별이 만연한 사회일수록 폭력과 혐오에 둔감하다. 홍후보는 성범죄 모의범이자 여성혐오, 소수자 혐오를 대중 앞에 드러낸 사람이다. 이미 많은 단체에서 사퇴를 요구했지만 그는 여전히 대선 후보로서 활동하고 있다. 지지율은 무려 15%에 육박한다. 혐오와 차별이 용인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리라. 더 이상 이와 같은 혐오가 웃음, 농담으로 희화화 되는 꼴은 보고 싶지 않다. 그에 동조하거나 함께 웃는 이를 보는 것 또한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러한 젠더폭력과 차별 없는 분위기 형성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 어느 때보다도 심후보가 보여주었던 태도가 필요하다. 차별을 가볍게 여기거나 방조하지 않는 것. 침묵하지 않는 것. 분노하는 것. 그렇기에 나 역시 분노하며 그의 사퇴를 외친다.


[장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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