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언제 들어도 좋은 말’, 나와 타인에 대한 그의 철학 [문학]

글 입력 2017.04.21 17:0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언제.JPG
사진 출처_ 네이버 책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친구가 추천해준 책이다. 휴학을 하고 책을 읽는 생활을 즐기던 와중, 너무 머리를 쓰면서 이해를 해야 하는 책들을 읽다 보니 조금은 가벼운 게 읽고 싶었다. 친구에게 소설책 한 권을 추천해달라 했고, 친구는 이석원 작가의 책들이 좋다며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꼭 읽어보라 했다. 노래를 들으며 읽으면 너무 좋다며.

사실 나는 이런 에세이 류의 책을 즐겨 읽지 않았던 터라, 맨 처음에는 ‘괜히 책을 추천 받았나’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한번쯤은 읽어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라니, 행복, 사랑 등의 추상적인 단어들을 작가 나름의 필치로 써내려 간 책이겠지, 요즘 힘들고 지칠 일들이 많았는데 읽다 보면 위로가 되겠지, 하면서.

그렇게 이틀 만에 책을 다 읽었다. 평소에는 책 한 권을 읽을 때 최소 2주는 걸리는 편인데 – 근무를 하면서 읽기 때문에 시간을 내기 어렵기도 했고 그 동안 어려운 책들을 읽어서 곱씹어보고 생각하며 읽느라 시간도 오래 걸렸다 – 그가 써 내려간 이야기에 정말 몰입되어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자기 고백의 글쓰기


그의 글은 왜 그렇게 나를 끌어당겼을까. 책을 다 읽고 나서, 책장을 덮고 생각해보니 그의 책은 놀라우리만큼 자기 고백 적이었다. 친구 사이에서도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만 자신의 저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이야기는 잘 꺼내지 않는데, 그는 그의 속 깊은 이야기를 덤덤하게, 언어로 풀어낸다. 마음이 하 심란하여 일기를 쓰려 했지만 정확하게 어떻게 말로 풀어내야 할지 몰라 일기장을 덮게 하던, 그런 이상하고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콕 찝어내서 언어로 풀어낸다. 자기 고백적인 에세이를 읽다 보면, 이 책을 홍보하는 보도자료 대로 ‘밑줄을 그어가며 읽고 싶어’진다. (사실 그래서, 실제로 개인 노트에 필사해 가며 읽었다. 내 책이 아니라 도서관 책이기에..)

그렇다 보니 어떻게 보면 ‘찌질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그의 고백이, 진솔하게 다가왔다. 연락을 잘 안하는 타입이니 연락 하지 않는다고 해서 보채지 말고, 연락은 자신만 먼저 할 수 있으며, 말을 놓아서도 안되고, 계속 ‘엔조이’식으로 만나더라도 연인이 되길 기대하거나 서로의 친구들에게 서로를 소개하여 그들의 사생활이 겹치는 영역이 넓어져서는 안 된다는,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는 여자의 요구를 수락하고, 간간히 오는 그녀의 연락을 받으며, ‘이것은 무슨 관계인가’ 끊임 없이 고민하고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에게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불편해진 관계의 엄연한 공범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왜 나는 병신같이 이런 관계를 받아주고 있는 것일까 고뇌하는 그의 모습은 어느 순간부터 찌질해보이지 않고 슬프게만 다가온다.



#이석원의 관계의 철학


1.jpg

2.jpg


철학이라고 이름을 붙이기엔 너무 거창한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사람이 어느 정도로 예민하고 생각이 많길래 사람의 감정과 관계를 이렇게 꿰뚫어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여 그가 쓴 문구들을 조금 소개해볼까 한다.


“참 신기하죠. 내 고민엔 갈피를 못 잡고 허우적대면서 남의 고민을 들으면 해답이 너무도 선명히 보이고 내 집 대청소를 할 땐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하기만 한데 남이 집 정리하는거 도와주러 가면 너는 어떻게 그렇게 정리를 잘하냐는 소리를 들으니 말이에요. 그러니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고 가르쳐 줄 수도 없으며 가르치려 든다면 오히려 웃길듯한 하여 결국엔 스스로 터득할 수 밖엔 없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 오롯이 나 자신과 마주보는 법. 자기 자신과 가능한 불화 없이 잘 살아가는 법.”


어떻게 인간의 저런 심리를 집 청소에 비유를 할 수 있을까, 이 문구를 읽고 감탄만 했다. 남의 연애사, 남의 진로 고민을 비롯한 그들의 고민을 듣고 명쾌하게 해답을 내려주는 해결사인척 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고민조차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건드리지도 못하고 있었을 뿐인데.


“好: 소설을 읽을 때 뚜렷한 이야기나 재미 없어도 글이, 즉 문체가 마음에 들면 몇 날 며칠이고 읽어 내려갈 수 있듯, 누군가의 목소리나 말투 같은 것들이 마음에 들면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유별나게 재미있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계속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비슷한 이치이다. 이미 내용과는 상관없는 단계로 돌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목소리와 말투를 좋아하는데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확률은 그리 크지 않다.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도 그렇다. 가끔 그럴 때가 있었다. 쟤는 특출난 것도 없는데 왜 마음이 계속 갈까. 왜. 특별하지 않아도 그의 사소한 한 부분이 인식되는 순간 그것이 크게 다가와서가 아니었을까.



#글을 마치며

이전 책들에 비해 가볍게는 읽었으나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책이었다. 나와, 타인과, 나와 타인 사이의 관계, 그 사이의 복잡미묘한 심리를 꽤 잘 풀어낸 책이기 때문이다. 그의 인생관, 자아관, 관계 철학관을 읽으며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과 그 관계를 되돌아 볼 수 있었다. 곱씹을수록, 좋다.

“인간은 결국엔 혼자서 살아갈 수 밖에 없고 혼자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의 질이 결정된다고 봤을 때 책의 가장 위대하고도 현실적인 효용성은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람들과 있을 때 못지 않게, 때로는 그보다 더욱 풍요로운 순간으로 만들어준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쉽게 말해, 바로 이런 순간에 책을 읽어야 한다는 얘기다.”라는 그의 말처럼, 이석원의 이야기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혼자 있을 때의 시간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그런 책이었다.


[김민경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